황만길 지역농업연구원장

승천하겠다며 대권을 향한 정치인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야권인 민주통합당에서 문재인, 김두관, 정세균, 조경태, 김영환, 박준영 등의 예비 후보군이 자웅을 겨루고 있다. 야권 성향이랄 수 있는 안철수 교수 역시 출마를 고민하고 있다. 여권인 새누리당은 당을 장악한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의 독주 속에 김문수, 김태호, 안상수, 임태희 등 5인의 후보들이 경선에 뛰어 들었다.

현재 새누리당은 대선 후보 선출과 관련해 매우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을 향해  당을 완전히 장악하고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사실상 게임이 끝난 경선을 하려 한다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정몽준, 이재오 의원 등이 새누리당은 공당이 아니라 완벽하게 박근혜의 사당이 되었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현재처럼 박근혜의 독점적 권한이 보장되는 당 구조 하에 전개될 경선에 참여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불출마를 선언했다. 애초 정몽준, 이재오 의원 등은 당이 박근혜 사당화 되었기 때문에 대선후보는 국민들이 폭넓게 참여하는 공정한 게임의 룰을 적용해 선출하자는 주장이었으나 메아리 없는 외침에 불과했다. 그 만큼 새누리당은 박근혜 사당화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친정체계가 구축된 모양새다.

이것이 당내의 현실이라면 정수장학회 문제와 독재자의 딸이라는 원죄가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을 둘러싼 외부적 환경이다.

아직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박정희가 독재자인 것은 역사적으로 국제사회에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막걸리를 마시며 소탈한 것처럼 포장되었지만 박정희 정권의 도덕성은 형편없었다. 주지육림의 주연이 수없이 이어졌고 남의 재산을 온갖 회유와 압력 등으로 강제 헌납하도록 했다. 정수장학회가 대표적인 사례로 박정희 정권이 부산일보 등의 사주였던 김지태 씨의 부일장악회 재산을  강제 기부하도록 한 것이다.

부일장악회는 5.16쿠테타의 이름을 따 5.16 장학회로 개정되고 추후 박정희, 육영수의 이름을 따 정수장학회로 바뀐 후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이 10년 동안 이사장직을 유지하다 여론의 질타가 있자 이사장직에서 물러났다. 사실상 독재자인 아버지가 강압적으로 빼앗은 재산의 관리인을 그 딸이 10년간 했다는 얘기이고 지금도 사실상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미 2005년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위원회는 부일장학회 재산헌납은 국가재건회의 의장인 박정희의 언론장악 기도에 따라 강제로 이뤄진 것이라는 조사결과를 발표해 그 부당성을 국가기관이 확인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정수장학회 문제만 나오면 자신과 무관하다고 하는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을 바라보는 시선은 따갑다. 이제 이 문제를 털고 가야하고 5.16쿠테타와 박정희 독재에 대한 진정성 있는 입장을 표해야 한다. 당내 상황도 그렇고 박정희의 유산도 그렇고 진정성 있는 조치가 없는 한 박근혜는 교만하다는 이미지가 덧씌워질 수 있다. 본인은 아무리 아니라고 강조해도 국민의 눈에 교만하다고 보이면 대권가도에 치명적인 장애물이 될 수 있다.

교병필패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전한의 선제는 선정을 베풀었다. 왕실에서 자라지 못하고 어린 시절 고난을 겪었지만 당시 절대권력을 휘두르던 곽광의 도움으로 국가를 안정화 했다. 본인의 영향력이 커지고 실권을 완전 장악한 선제는 독재권력을 휘두르던 외척 곽광 일족을 몰아냈다. 곽광 일족의 교만이 하늘을 찔렀기 때문이었다.

선제는 서역의 차사국을 정복하려고 시랑 정길과 교위 사마희에게 군사를 주어 명을 내렸다. 차사국의 왕은 이 소식을 전해 듣고 위협을 느껴 이웃한 개노국에게 구원병을 요청했다. 개노국이 이를 거절하자 전한의 군대를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 차사국의 왕은 싸우기도 전에 항복하고 말았다. 이렇게 되니 개노국의 입장이 곤란하게 되었다. 차사국을 정복한 전한의 군대가 곧장 개노국을 침략할 수 있다는 위협을 느꼈기 때문이다.

개노국의 왕과 대신들은 전한의 군대가 차사국을 쉽게 정복해 축제분위기에 방심하고 있을 테니 지금 출병해 전한의 군대를 습격하면 승리할 수 있다고 판단해 기습공격을 감행했다. 아무리 강한 전한의 군대였지만 차사국을 쉽게 정복해 방심과 교만에 빠져 있는 사이 기습공격을 당하니 속수무책이었다.

다급한 나머지 정길이 조정에 구원병을 요청했지만 변경지역의 경제상황이나 백성의 삶이 고단한 것을 간파한 승상 위상이 대국이 힘만 믿고 소국을 함부로 침범하며 위세를 부리는 것은 교병이라며 교병은 반드시 패한다며 출병을 반대했다. 선제가 위상의 말이 옳다며 구원병을 보내지 않았다는 고사성어가 교병필패다.

박근혜 새누리당 전 비대위원장은 교병필패의 고사를 새겨야 할 것 같다. 지지율이 높지만 당내외에서 제기되는 문제를 진정성을 갖고 풀어간다면 승천해 대권을 거머쥐겠으나 그렇지 못할 경우 교병필패가 재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권력을 남용하는 지역의 정치인들이나 시민운동가들조차 역시 교병필패의 교훈을 새길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