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중 범죄학박사

2003년 노무현 정부가 출범하면서 경찰청 인사에 전대미문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폐쇄적으로 운영되었던 경찰청 특수수사과 팀장 자리를 모두 비우고 전문가로 구성된 심사위원회를 구성하여 공모로 선발 절차를 진행한 것입니다.

몽글몽글한 마음으로 경찰 수사의 한 단계 도약을 믿었던 저는 고민 없이 지원하여 가까스로 팀장이 되었습니다. 이런 배경으로 청와대 사정팀과의 회의 자리에서 처음 이성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말이 없고 겸손하였으며 상대의 이야기를 먼저 경청할 줄 알았습니다. 검·경 수사권 조정에 대하여 조직 논리보다는 국민을 위한 결단이 필요하다는 데에 뜻을 같이하면서 “참 검사스럽지 않은 검사구나.”라는 생각까지 하였습니다.

암 환자 가족이 있는 동료에게 총경 승진을 양보하겠다는 제 말에 인간적인 격려와 걱정을 함께 해 준 그의 따뜻한 눈망울과 표정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자기표현보다는 상대를 위한 배려가 큰 사람.

그런 그가 며칠 전 오마이뉴스에 나왔습니다. 평소처럼 쑥스러워하면서도 작심 발언을 한 2시간 인터뷰. ‘도대체 무슨 말을 할까’라는 호기심으로 방송을 끝까지 지켜보았습니다.

첫째, 이성윤은 윤 대통령을 '윤 전 총장'이라고 지칭하며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위해서 검찰 조직 전체를 제물로 팔아먹었다고 했습니다.

대통령 윤석열은 검찰에서 배운 지식, 상황, 경험을 가지고 정치를 하고 있는데, 과연 진짜 국민을 배려하고 생각하는 정치를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며 여론조사 수치보다 실제 민심은 더 안 좋은 것 같고 앞으로도 회의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검사들끼리 '윤은 꼭 부잣집 중2 같다' 평가하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가까이서 지켜본 '인간 윤석열'에 대해 화를 많이 내는 편이며 화를 낼 때 그 화를 참지 못해서 크게 언성을 높이는 일이 자주 있었다고 합니다.

둘째, 이성윤은 문재인 정부의 검찰 개혁은 실패했으며 그 증거가 ‘대통령 윤석열’이라고 말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검찰에 너무 많은 힘을 실어줬고 윤석열 사단에 의해 포획돼 있었다고 했습니다.

윤석열 사단은 특수통 패거리 문화가 강했고 언론을 활용하면서 목표를 정하면 끝까지 가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무지막지하게 수사한다는 분석도 흥미롭습니다. 자신도 사냥과 같은 수사를 당해봤다면서 섬뜩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토끼몰이를 당하는 느낌이었다. 수사 상황이 언론에 계속 보도가 되면 나를 믿었던 지인들이 의심을 시작하게 된다, 심지어는 아내까지도. 아, 이래서 이런 수사를 당하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구나."

셋째, 이성윤은 조국 수사를 ‘검찰개혁론자와 검찰주의자의 대결’이었다고 평가했습니다. “검찰을 건드리려 하니 선빵을 날렸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윤석열 전 총장은 검찰주의자이고, 검찰주의자는 검찰 권력이 단순히 형사처벌을 위한 권력이 아니라 사회를 변혁하고 정화시키는 정의로운 권력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이유로 검찰은 최고의 엘리트 집단으로 선악을 판단할 때 웬만하면 오류를 범하지 않고 적은 인원으로도 무한대의 능력을 낼 수 있는 집단이라고 스스로 생각한다고 합니다. 이러니 국민이 검찰 개혁을 요구하더라도 당연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끝으로, 이성윤은 정치적 중립을 훼손한 검찰조직이 앞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볼 것이라며, 검찰이 거듭나기 위해서는 인권을 말살하는 피의사실 공표를 철저하게 금지해야 하고 검찰도 제도적으로 견제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대변약눌(大辯若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평소 품성을 잃지 않으면서 어눌하기에 더욱 진솔한 말투에서 많은 부분을 공감하였습니다. 현직 검사가 오마이뉴스 인터뷰에 응하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데도 방송 출연에 대하여 아내와 상의는 했냐는 사회자의 마지막 질문에 어색하게 웃는 모습이 압권이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정치 선진국임은 확실합니다. 인격이 모자라면 시스템 정치하면 되고, 개인적 성향으로 빗나가는 일이 생기면 임기 마치고 추스르면 되니까요. 하지만, 잃어버린 세월과 잘못 간 길을 어떻게 메꿔 나갈지는 우리가 풀어야 할 시대적 과제로 남겨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