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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있어 고양이 목에다 방울을

전통적 인문가치의 퇴조가 탈문화로 나타나고 있다. 문학과 역사와 철학의 인문정신은 이제 고리타분한 옛 시절의 유품 취급을 받고, 인류정신사를 면면히 이끌어온 영광스런 자리를 기술과 상업의 찰라문화에 고스란히 내어주고 말았다. ‘digital 문명’의 위력 앞에서 ‘analogue 문화’는 도무지 맥을 못 추는 세상인 것이다. 대학의 가곡이 객장의 순수 오페라가 통속성 뮤지컬 속으로 사라졌다.

정보통신의 속성은 ‘눈깜짝할 사이에 대용량의 지식을 네티즌들에게 보낸다’는데 있다. 빠른 속도, 풍부한 정보지식의 전달은 초고속 정보사회의 핵심기반이다. 그런데 기독교 서적에는 이것을 “말세에 이르면 많은 사람이 빠른 지식을 얻으려고 빠르게 오고갈 것이다”라고 언급되어 있다. 오늘날처럼 많은 사람들이 세계 곳곳을 빠르게 왕래하며 방대한 지식을 사고파는 시대도 없었으니, 지금이 혹시 말세가 아닐까 하는 걱정하는 이들도 없지 않을 듯하다.

요즘 보통사람도 옷 몇벌쯤은 있어서 어떤 옷을 입고 나갈까? 고민한다. 선택도 어렵지만 선택을 해도 하루에 옷 한 벌만이다. 중년을 넘은 부부라면 빈방 한두개에 옷걸이가 꽉 차있다. 대개 2-3년 지나도 걸쳐 보지 못하는 의상들도 많다. 매일 빠르게 양산되는 정보를 풍부하게 접촉만 할 수있으면 끝인가! 또 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회적 비용을 앞으로도 증가시켜야 하는지! 우리 4인가족도 매월 통신비용만 70만원이 넘는다. 기름값 등살까지 가세하면 민초들은 이런 등살에 멍들어 간다.

인문학이란 ‘이성적이고 자연적인 질서, 또는 生命의 도리를 실현하고 체득해 가는 ’삶의 지혜’이자 ‘인격적 품성의 바탕자리’다. 그 인문학이 돈벌이가 안 된다는 이유로 대학에서마저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하고 있는 것이 오늘 우리사회의 반인문적 현실이다. 우리는 불과 3~40년의 짧은 기간에 조국근대화의 기치를 높이 들고 산업화와 민주화에 매진한 결과, 세계 10대의 교역국이 되었고 국민이 자유롭게 정부를 선택하는 민주국가를 이룩하는 찬란한 성과를 이뤄냈다. 그런데 중동의 여러 정치적, 경제적 현실들을 안방에서 본다. 인권이 유린된 상황에서도 저렇게 오랜 기간 동안 침묵과 굴종의 암흑기를 버티어 왔을까! 리비아도 시리아도, 이집트도 불가항력이었던 것이다. 이는 그들 나라의 인문학적 질서의 부재에서 기인하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는 所得不平等指數가 0.35에 가까울 만큼 불평등의 현실이 심각하다. 중산층은 엷어지고 실질소득이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극빈층이 날로 늘어가는 가운데, 산업인력을 기계자동화가 대체하여 고용이 수반되지 못하는 성장이라는 산업화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있다. 맨손으로 쟁취한 민주화 역시 populism과 파당, 무엇보다도 지역분수령을 극복하지 못한 채 극심한 成長痛을 앓고 있는 중이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나 영남권 신공항 문제가 지역이기주의와 정치적 포퓰리즘의 덫에 걸려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세종시 문제도 국가발전의 차원이 아니라 선거 때의 票의 향배라는 저차원의 수준에서 마무리되고 말았다. 문제는 공약을 했으면 지켜나가야지 이제 와서 공약을 지키는 것은 국익에 이롭지 못하고 윤리적이지도 않다면 공약은 왜 했는가 말이다. 목민들은 요즘 세태에 가끔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우리의 산업화, 민주화는 ‘이제부터 시작이다’라는 말이 대체적인 진단이다.

왜 그럴까? 여러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나는 그 원인을 ‘人文化의 실패’에서 찾는다. ‘物量主義와 상업주의의 대중사회’가 되어가는 동안 우리는 알게 모르게 物神의 노예가 되어 서서히 인문의 가치에 눈감아 왔다. ‘문화의 대중화’라는 이름으로 성악가들은 유행가를 부르기 시작했고, Fashion show는 ‘의상쇼’가 아니라 ‘nude show’가 된 지 이미 오래고, 스크린 속 여배우의 裸身은 더 이상 관능의 호기심조차 불러일으키지 못한 그 무엇이 되어 버렸다. 내가 아직껏 풀지 못하고 있는 의문 중 하나가 자동차회사들의 新車 발표회장, 멋지게 전시된 최신형 승용차 곁에는 늘씬한 아가씨들이 半裸로 야릇한 자세를 취하고 있으니 기자들의 카메라도 자동차 바디보다도 아가씨 쪽을 향하는 경우가 많다. 새 자동차를 사면 그 아가씨도 함께 태워 보내준다고 광고를 하기라도 한 것인지 맥없이 보고 흘려버릴 일만은 아닌 것이다. 그 무엇인가가 무너져내리고 있는 것이다. 절대 물러 설 수 없는 심리적 저항선이 무너진 참기 어려운 가벼움을 일상에서 무심코 만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다녀 온 미국대학의 코아 퍼포스는 ‘사회의 이익을 위해서 생명을 진화시키는 것’이라고 쓰여져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인문적 가치관과 사회과학적 지향을 이렇게 적절히 압축해낸 교훈도 없을성 싶다. 인문 없이 사회 없고, 사회의 전제 없이는 인문도 영락한다. ‘개인의 인문’과 ‘사회의 공리’를 이어주는 연결고리는 다름 아닌 문화에 있다. 문화(culture)는 땅을 갈고 밭을 일구는, 즉 자연 친화의 자연스런 삶의 결실에 있다. 그러나 인문학의 본류에는 역류한 채 속도와 방대함, 경박스러움까지 함께하는 문화는 아직은 문명의 수준일 뿐이라고 일축해 버려야 한다 문화와 문명은 그 뿌리가 다름이며 문명이 지식이라면, 문화는 지혜다.

설령 그렇다 한들 중등과정에서 미술, 음악이 사라지고 대학에서 인문학이 왜소화되어 가는 현실을 누가 있어 고양이 목에다 방울을 메어달 것인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