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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도 아름답다

윤복순/윤약국 약사

사소한 실수는 삶에서 양념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실수 때문에 웃게 되고, 때로는 반성도 하고, 진심을 담아서 사과도 하고, 남들과 사귀게도 된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실수는 잘못된 생각이나 행동이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는 것과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실수가 있다. 전자는 치명적일 수 있으나 후자는 손해를 보지만 치명적 까지는 아닐 수 있다.

주말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책을 뒤적여 치악산 쪽의 형편을 대강 가늠해 두었다. 잡동사니들은 어제 챙겨두었으니 오후에 출발하기만 하면 되었다.

출발할 때는 비가 내렸다. 조심스럽게 호남고속도로에서 중부고속도로로 진입 하였다. 나는 조수석에 앉아도 조수 노릇을 못 할 때가 많다. 순발력이 떨어지고 눈이 나빠서 빨리빨리 도로 안내판을 읽어내지 못한다.

영동고속도로로 들어가야 하는데 잠깐 해찰했을까. 호법 IC를 지나친 것 같았다. 남편은 강릉이라고 쓰여 있었단다.

“그러니까 그쪽으로 갔어야지”

“원주라고 안 쓰여 있는데”

원주 거쳐서 강릉 간다고 하니까 왜 원주는 안 쓰여 있냐는 것이다. 대전 갈 때 서울 방향으로 가야지, 대전 안 쓰여 있다고 광주 쪽으로 가냐고 하니까 그때서야 남편은 실수를 인정한다.
“당신은 똑똑해서 좋겠다” 왠지 떫은 목소리다. 30분 이상 손해를 봤다.

다음날은 비가 오지 않았다. 햇빛이 강하게 내려쬐었다. 모자를 찾았으나 모자 대신 우산을 들고 왔음을 알았다. 모자 타령하다 장갑도 차 안에 두고 산에 올랐다. 이런 것이 중년의 실수일까.

구룡사의 유례를 읽으면서 이곳에도 실수가 있었음을 알았다. 대웅전 자리가 예전엔 연못이었고 그곳에 아홉 마리의 용이 살았단다. 그래서 九龍寺였단다. 조선시대에 들어 절이 쇠락하였는데, 절 입구의 거북바위 때문이라고 해 거북의 혈을 끊었단다. 그 후 더 쇠락해 졌고, 혈맥을 끊어서 그렇다고 해 거북을 살리는 뜻에서 龜龍寺로 바뀌었다고 한다.

새벽마다 운동을 한 덕분에 힘들지는 않았다. 내가 좀 지쳐 있을 때 남편이 왜 치악산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까치와 선비에 얽힌 상원사 얘기를 했다. 치악산은 너무 악산이라서 이를 악 물어야 올라갈 수 있다고 해서 치악산이란다. 치字가 이빨 치字라나.

정상 비로봉은 하늘과 가까워서인지 더 따가웠다. 얼굴에선 열이 났다. 봄 햇빛은 며느리한테나 쏘인다는데.

나는 즐겁게 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오늘도 등산을 통해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어서 눈이 즐거웠다. 계곡 물소리 새소리로 귀도 즐거웠다. 숲의 냄새로 코도 즐거웠다. 운동을 하니 몸도 즐겁고 마음도 즐겁다. 단 하나 얼굴 피부만 괴로웠다.

집에 오니 밤 10시가 넘었다. 샤워를 하고 막 누우려는데 “잠깐 대기”한다.

남편이 냉장고에서 오이를 꺼내와 깎아 얼굴에 붙여줬다. 모자를 안 가지고 가서 호강을 하는 것이다. 이런 실수라면 종종해도 괜찮을 성 싶다.

오래 전이다. 새마을 열차가 다니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다. 여 약사 몇 명이 서울에 갈 일이 있었다. 전주에서 오는 선배가 늦어졌다. 출발시간이 다 될 때까지 익산역에 도착하지 않아 차표를 환불 받고, 정신 없이 지하도로 뛰어갔다. 마침 서울행 열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허겁지겁 열차에 올랐다.

한 숨 돌리고 좌석을 찾아갔다. 내 자리에 다른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도 어리둥절했다. 마침 그 때 승무원이 지나갔다.

“새마을 표 사가지고 무궁화호 타는 사람은 아주머니 밖에 못 봤어요”

새마을을 먼저 보내기 위해 역에서 대기하고 있던 열차에 올랐던 거다. 졸지에 나는 한글도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좌석이 없어 서울까지 서서 가야 할 신세가 되었다. 부끄러워 그 칸에 있을 수 없어 다음 칸으로 이동 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듯 차분하지 못한 성격 탓에 나는 실수를 잘 하는 편이다. 실수는 삶을 재미있게 한다. 또 추억거리도 만들어 준다.

살아가면서 실수가 없다면 웃을 일도 반으로 줄 것이다. 또한 실수는 사람을 보다 인간적으로 보이게 한다. 실수 하나 없이 완벽하다면 그 사람에게 쉽게 다가서기 어려울 것이다. 치명적인 실수가 아닌 소소한 실수는 각박하고 삭막한 생활에서 우리의 삶을 즐겁게 하고, 조금은 여유롭게 하는 탄산수 같은 것이 아닐까.

실수도 하면서, 손해도 좀 보면서, 지청구도 들어가면서, 있는 그대로 나의 현실을 받아들이며 , 크게 웃으며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