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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산 지킴이 김현대

왕궁면장

채수훈

조선 영조 때 익산군수 남태보가 1756년에 발간한 『금마지』에 따르면 도순산(都順山)은 “문수산 한줄기가 남쪽으로 달리다가 다시 꺾이어 서쪽으로 뻗어 이 산이 되었다. 세속에서는 시다산(施茶山)이라고 부르는데, 고을 동쪽 5리 제석면에 있다.”라고 했다.
이 산은 현재 시대산(始大山)이라고 불리고 있다. 족장이 사는 산이라 하여 ‘우두머리뫼’라고 부르면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예전에는 도순산, 시다산이라고 불렸는데 어찌 된 연유인지 시대산이라 부른다. 이 산 밑에 시대 마을이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
시대산은 익산 최고봉인 천호산에서 뻗어 내려왔다. 용화산과 미륵산을 연결하는 중간지점의 능선이기도 하다. 어엿한 왕궁의 주산이다. 최고봉이 229m이고 동서로 평탄하다. 정상에는 무인 산불감시 카메라와 돌탑인 천일탑이 있다. 남쪽에는 호남평야인 왕궁과 익산, 완주, 김제의 넓은 들녘이 바둑판처럼 펼쳐져 있다. 저 멀리 서해가 잡목 사이로 손에 잡힐 듯한데 나뭇가지 때문에 아름다운 풍경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이 산 등산로는 화곡, 시대, 용남, 서벌 마을과 원불교중앙훈련원 등 동서남북에서 자유롭게 오를 수 있다. 시민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인적이 드문 산이라서 그런지 호젓하다. 예전 동용리 주민들은 금마장, 학교 다닐 때 시대산을 넘어 다녔다고 한다. 지금은 주민들이 산책길로 이용하고 있다. 천호산 일대에 무리 지어 사는 멧돼지가 시대산 남쪽 마을까지 출몰해 농사를 망치기도 한다. 시대와 화곡 마을과 경계인 북쪽에는 1970년대까지 27연대의 영외부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포병의 사격훈련은 가좌마을에서 이루어졌고, 각개전투 훈련은 신탄마을의 야산에서 이뤄졌다.

한편 『금마지』에 따르면 “기우단(祈雨壇) 한 곳은 사자암 동쪽 절벽 정상에 있고, 또 하나는 도순산 위에 있다.”라고 하였다. 도순산 즉 시대산의 기우단은 우제봉(雨祭峰)을 일컫는다. 정상에서 용남마을 쪽으로 내려오면 중턱 봉우리이다. 조선 때 익산군에서 기우제를 지낼 때마다 빠지지 않고 제사를 지냈던 곳이다. 시대산보다 한 급 낮은 161m에 불과하지만 왕궁평야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어서 신성시 한 곳임을 알 수 있다. 그 산 밑에 도순사지(都巡寺址)가 있다고 전해 내려온다.

시대산 지킴이 김현대(84세)씨는 고령자이다. 익산시 중앙동에 거주하고 있다. 작년 12월에 여산면 쪽에서 4명이 시대산을 올랐다. 어르신은 제일 앞장서서 주변의 잔 나무들을 정리하며 올라갔다. 허리협착증 때문에 2년 전부터 시대산에 오지 못하셨다는데도 가볍게 산행하는 걸음걸이가 가벼워 보였다. 산을 오르면서 휴식 시간에 간간이 어르신 사진을 찍었다. “내 사진 신문에 내지 말아요”라고 연신 말씀하셨다.

어르신과 시대산의 인연은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왕궁면 양동마을에 딸이 살았는데 딸을 보러 다니면서부터 산에도 오르기 시작하셨다. 교통수단은 초창기에 시내버스를 이용하였고, 산악회 회원들과 다니면서는 자가용을 타고 다녔다. 한때 등산을 좋아하여 산악회에서 국외 등산도 했다. 말레이시아 키나보고산(4,101m)과 대만 옥산(3,997m)을 등산하였다.

시대산에 오르다 보면 낯선 돌탑을 만나게 된다. 어르신이 2006년부터 2009년까지 4년 동안 매년 1개씩 쌓은 돌탑이다. 그 후 6개를 더 쌓아서 10개의 돌탑이 등산로에 있다. 서낭당에서 소원을 빌듯이 산에 널려있는 돌들을 하나하나 주워서 돌탑을 쌓았다고 한다. 산에 오르는 자체가 좋아서 돌탑을 쌓을 때 힘들거나 어렵지 않았다고 한다. 처음에 혼자 시작했던 것이 일행인 동우리산악회와 화목산악회 회원들이 거들어 주었다. 공들여 쌓은 탑들이라서 그런지 한 번도 무너진 적이 없다고 한다.

돌을 쌓으면서 그 주변에 편백 나무 묘목 300여 주를 심었다. 정상의 나무들은 햇볕을 잘 받아 어른 키 넘게 훌쩍 자라있었다. 어르신은 나이가 들수록 키가 작아졌는데 그가 심은 편백 나무는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등산로의 나뭇가지들도 잘라내어 정리하고 쓰레기통을 설치하여 쾌적한 환경보호를 해왔다. 산에 오르면서 휴지 한 조각도 찾을 수 없었다. 등산객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중간중간에 나무 의자도 설치해 놓았다. 쉼터 주변은 깨끗이 청소하여 가볍게 쉬어가기에 편안하였다.

올가을에 시대산을 다시 찾았다. 인적이 드문 곳이라 나무, 새, 바람 소리와 한 몸이 된다. 정갈한 산길이다. 어르신의 산사랑의 체취가 느껴졌다. 길옆에는 떨어진 밤과 상수리가 발걸음을 멈추게 하였다. 등산객이 드물어서 사람 손이 덜 탄 듯하다. 줍는 재미도 쏠쏠하다. 시대산과 김현대 옹이 산과 사람, 사람과 자연사랑을 이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