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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듯함

하늘숲교회 담임목사

강 남 웅

“뿌듯함, 오늘 아침 제가 느끼는 이 감정의 이름은 바로 뿌듯함입니다.”

올해에 매회 가슴에 와닿는 메시지로 돌풍을 일으키며,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왔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나왔던 마지막 대사입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변호사 ‘우영우’가 주인공인 이 드라마의 마지막은 ‘뿌듯함’이었습니다. 비단 주인공뿐 아니라 드라마 시청자 모두가 함께 느낀 감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생각을 나의 삶으로 끌어들여 봅니다. 우리는 얼마나 이 ‘뿌듯함’이라는 감정을 자주 느끼며 살고 있을까요? 저는 일반적 시선으로 보면 ‘고상하고 차원 높은 일’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목회자입니다. 그런데 그런 내가 누리는 ‘뿌듯함’의 빈도는 얼마나 될까요? 2022년을 되돌아보며 다시금 삶의 태도를 바로 잡아봅니다.

‘뿌듯하다’라는 의태어 형용사는, 주머니가 불룩할 정도로 꽉 들어찬 모양을 묘사하는 데서 기원해 꽉 찬 느낌을 표현하는 추상적 단어로 발전한 것입니다. 우리말은 참으로 아름답고도 깊이가 있습니다. 성취감 자랑스러움 행복감 만족감 등과 동의어로 쓰이지만, 그 단어들이 품지 못하는 뜻을 ‘뿌듯함’은 가지고 있습니다.

자폐인에 대한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편견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도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큰 희생이 아닌 작은 배려가 필요하다는 점이 참 좋았습니다. 작가가 꼭 집어서 ‘뿌듯함’이라 표현한 뭉클한 감동과 깨달음을 우리도 느끼려면 다음 두 가지가 충족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첫째, 내가 꼭 있어야 할 자리, 내가 할 일,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해야 합니다. 신앙적인 언어로는 내 인생의 소명(召命)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처한 역사적 상황에서 꼭 이루어야 하는 과업을 발견하고, 최선을 다한 후에 주어지는 선물이 바로 뿌듯함일 것입니다. 이 느낌은 사람이나 세상으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차원 높은 하늘나라의 영광이 나의 삶과 가슴에 임하는 숭고한 감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류 대학에 들어가고 대기업에 취직하면 성취감을 느끼겠지만 그렇다고 뿌듯함을 느끼는 것은 아닙니다. 권력을 잡아 아랫사람을 멋대로 부리고 사람들 위에서 우쭐댄다고 해서 꽉 차오름을 느끼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사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발견하지 못한, 감당 못 할 무거운 왕관을 쓴 나르시시스트에 불과합니다. 마치 구약성경 사사기 9장 15절에 나오는 가시나무처럼, 레바논의 백향목에게 자기 그늘에 와서 피하라고 큰소리치는 것과 같습니다.

둘째, 뿌듯함은 공동체 안에서 마음을 나눌 때 찾아오는 정서입니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발견하는 것은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는다는 뜻입니다. 우영우가 뿌듯함을 느끼게 된 것은 함께 일하는 팀이 마음을 열고 힘을 합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마음을 열기 위해서는 각자의 마음에 뿌듯함이 있어야 하고, 반대로 마음을 열 때 각자가 공동체 안에서 비로소 자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뿌듯함은 대인관계의 기술이나 소통의 방법을 배운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드라마 속 우영우는 뿌듯함도 느끼고 미래도 보장되고 사랑도 얻게 됩니다. 그러나 현실은 마냥 해피엔딩만은 결코 아닙니다. 상처가 깊은 사람, 냉소적인 사람, 감당하기 힘든 강적을 만나게 되고, 내가 정나미가 떨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뿌듯함이라는 천상의 기쁨에 대한 기억과 도전은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동력을 제공합니다.

드라마가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는 사이, 드라마의 주인공과 그를 지켜보는 시청자들은 모두 함께 성장했습니다. "제 삶은 이상하고 별나지만, 가치 있고 아름답습니다"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며,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는 모습, 우영우가 끝내 혼자 힘으로 회사 회전문을 통과한 그 순간, 시청자들도 갇혀있던 편견을 깨고 뿌듯함을 함께 느끼며 한 뼘 자라난 것입니다. 아마도 성장이 안겨준 뿌듯함이 아닐까요?

하루 또 하루를 보내며, 단순한 반복처럼 느끼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곁의 사람들의 다름을 인정하고 성장하기까지 서로 바라보는 시선들이 좀 더 따뜻해지고, 우리 사회가 다양한 사람들이 공존하며 어울려 살아가는 곳이 되어 가기를 소망해 봅니다. ‘뿌듯함’은 마태복음 13장에 소개하는 예수님의 비유에서처럼 자기 소유를 다 팔고서라도 사야 하는 보화와 진주 같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