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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국민들에게

하인애

나는 지금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서글프고도 아름다운 선율을 들으며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 곡을 듣고 있으니 지금 전쟁 중인 나라의 고통이 온 몸으로 느껴지는 것만 같아서 마음이 많이 아려옵니다.

나는 전쟁이 끝난 지 20년 후에 태어난 한국의 평범한 주부입니다. 나의 부모님은 이웃 나라가 우리를 침범했던 시절과 그 이후 또다시 전쟁의 아픈 기억을 모두 가지고 계신 분들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겪는 고통 중에 가장 참아내기 어려운 고통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비록 나는 부모님이 겪은 일들을 귀로 전해 들었지만

그 참혹했던 순간들의 이야기는 마치 내가 경험한 일처럼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나의 어머니는 피난 중이던 어느 날 밤 강제로 적군에게 끌려간 아버지를 평생 동안 그리워하며 살아야 했고 나는 낡은 흑백 사진 속에 담긴 외할아버지의 얼굴을 어슴푸레 기억할 뿐입니다.

알지도 못하는 다른 나라 사람이 늘어놓는 넋두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지금 당신들이 침묵하고 있는 사이에 이웃 나라의 국민들이 겪고 있는 현실일 수도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지금까지 셀 수 없을 만큼의 전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쟁이 끝나고 난 후에 겪어야 할 상처는 누가 가해자인지 그리고 누가 피해자인지 구분을 하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전쟁은 가해자도 피해자도 똑같이 상처가 남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가 어떻게 해야 이 전쟁을 끝낼 수 있을까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무기나 폭력을 쓰지 않고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주장하는 뜻이 올바를 때만이 가능할 수 있습니다. 나의 조국 대한민국의 역사가 지금까지 그것을 증명해 왔습니다.

적군이 쳐들어와서 임금은 백성을 버리고 도망을 쳤어도 백성들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웠고 차가운 겨울날 꽁꽁 얼어붙은 손으로 들었던 촛불이 결국 민주주의를 지켜냈습니다. 그리고 오 년 후에 우리는 당당히 선진국의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침범하게 되면 눈에 보이는 것들만이 파괴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지금 전 세계의 문화를 이끌어가고 있는 대한민국이 과거에 다른 나라의 침략을 받지 않았다면 21세기가 돌아온 지 이십 년이 지나서야 겨우 선진국이 되었을까요?

찬란했던 오천 년의 역사는 온 세상을 호령하고도 남음이 있었지만 우리의 운명 또한 모질고 거칠어야만 했는지 고통의 시간을 참 길게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땅에서 다른 나라는 감히 넘볼 수 없는 일들을 해내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가능했던 이유는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온 국민이 떨쳐 일어나 한 마음으로 나라를 지켜냈기에 가능할 수 있었던 겁니다.

내 나라를 자랑하기 위해 이런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이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나라가 평화와 안녕을 누리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으로 쓰는 것입니다.

지금 우크라이나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내 부모 내 아이 내 형제가 전쟁으로 인해 아무 죄도 없이 가족들 품에서 떠나야 합니다. 이런 일들이 만약 당신들의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상상을 해보세요. 우리 모두는 지금 우크라이나의 난민들이 얼마나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을지에 대하여 공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이 세상을 살리는 길이고 인류가 공생으로 가는 첫 번째 길입니다.

역사 속에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이 정치가가 되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당해야 했는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을 만큼 병들어 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가치는 온 지구인이 다 같이 잘 사는 방법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한 나라의 이익을 위해 다른 나라가 희생을 당해야 한다면 결국 그 희생의 대가 또한 그냥 지나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을 향해 미움과 분노를 가슴에 품지 마세요. 눈으로 보이는 선한 결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선한 마음이 존재할 때 나타나는 것입니다. 당신들과 우리가 오직 해야 할 일은 이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따뜻한 마음을 품고 광장으로 나요세요. 그리고 손에는 촛불을 들고 고통에 몸서리 치고 있는 우크라이나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촛불이 아닌 장미꽃이어도 괜찮습니다. 그대들의 마음이 진정으로 이 전쟁을 멈추어 주기를 간절히 원한다면. 러시아의 아름다운 여인이 연주하는 ‘쉰들러 리스트’의 주제곡이 지금 제 마음의 간절함과 진정으로 맞닿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