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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나의 채점 기준

김영주(도영)
(사) 삼동인터내셔널 이사장
익산시 사회복지협의회 회장

어느덧 노인에 진입했다. 동사무소나 상점에 가면 ‘어르신’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이니 노인이 아니겠는가. 마음은 청춘 같은데 생물학적 나이가 그리되었다. 사람들은 세월이 참으로 빠르다고 한다. 세월은 빠른 것이 아니다. 그냥 그대로이다. 아마도 그 말은 그만큼 인생의 삶이 오래되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약간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살아온 인생의 점수를 매겨야 할 것 같다.

친구들을 만나면 일상적으로 묻는 것이 있다.
“요즘 어떻게 사는가?”
“건강은 괜찮은가?”
“자식들은 잘 있는가?”
별다른 뜻이 없는 듯한 안부 인사로 시작하지만, 필자는 이런 말을 들으면 가슴이 답답하다.
그냥 “그래, 잘있어” 하면 그만이지만 선뜻 대답할 수가 없다.

이유가 있다.
삶의 희로애락(喜怒哀樂)은 한시도 머물러 있지 않고 수시로 변하기 때문이다. 즉, 늙었지만 인생의 과정이기에 정답을 말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하루를 살다 보면 100% 기쁠 수도 없고, 100% 슬플 수도 없다. 60% 행복하면서 40% 괴로울 수도 있고, 90%는 기쁜데 10%는 눈물이 날 수도 있다. 상가(喪家)에서도 웃음이 나오는 순간이 있고, 꿈을 이룬 순간에 하염없이 눈물만 흐를 수도 있다. 그렇게 인간의 감정은 그런 복합성을 가지고 있다.

명배우를 흔히 ‘천(千)의 얼굴을 가진 배우’라고 부른다. 그만큼 희로애락의 복잡하고 다채로운 감정을 잘 표현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런 배우에게 열광한다. 왜냐고요? 파란고해(波瀾苦海)의 세상에서 실제 우리의 삶이 그러하니까.

어찌 보면 인생은 하나의 커다란 문제집이다.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 동안의 온갖 상황과 문제들이 페이지마다 담겨 있기 때문이다. 친구 문제, 가족 문제, 교육 문제, 돈 문제, 직장 문제 등 종류도 다양하다.

그런 문제 앞에 섰을 때 우리는 ‘정답’만 너무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정답만 찾고, 정답만 묻고, 정답에만 매달린다. 문제를 풀다가도 막히면 곧장 답지부터 들춘다. 우리 사회는 정답이란 결과물을 최고로 치니까.

찬찬히 따져보자. 필자가 생각한 삶의 정답에는 두 종류가 있다. 남이 만든 정답과 내가 만든 정답이다. 둘은 다르다. 달라도 엄청나게 다르다.

상대가 “너 행복하지”라고 말했을 때 “그래” 하고 답을 했다면 어찌 될까? 상대는 나의 정답을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리고 100% 기쁜 표정을 짓겠죠. 그런데 거기에는 과정이 없다. 좌충우돌하는 오답의 과정이 없다. 남이 만든 정답만 따라 할 뿐이다. 그런 사람에게서 삶의 슬픔과 기쁨이 버무려져 줄을 타는 표정이 나올 수 없다.

지혜로운 사람은 “너도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네가 ‘직접’ 한 번 생각해 보라”고 말할 것이다. ‘직접’ 이것은 지혜를 연마하고 인생의 생활 전투에서 꼭 필요한 키워드(key word)이다.

예를 들어 보자. 아이에게 방 청소를 시켜 봐라. 처음으로 청소하는 아이가 청소기를 제대로 돌릴 수 있을까. 걸레질을 제대로 할까. 금마에 있는 삼정원(三精院, 사회복지시설)에 있을 때 중학생들이 봉사활동을 와서 강당 청소를 시켰는데 엉망진창이어서 직원들이 청소를 다시 한 적이 있다.

이때가 중요하다. 이때 필요한 키워드가 발동되어야 한다.
깨끗한 청소를 원하는 부모는 “됐어. 이리 줘. 너는 대체 제대로 하는 게 뭐야!”라며 자신이 직접 해치워 버린다. 아이에게 다시 기회를 주지 않는다. 왜 그럴까. ‘깨끗한 방’이라는 정답만 중시하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부모는 다르다. 기다린다. 깨끗한 방이 정답이 아니니까. 방을 깨끗하게 치울 수 있는 아이의 힘이 정답이다. 그 힘은 한 번에 길러지지 않는다. 좌충우돌과 시행착오를 거쳐야 한다. 그걸 반복하며 아이는 청소기와 걸레, 그리고 먼지의 촉감과 성질을 조금씩 알아차리는 거다. 걸레를 빨고, 빗자루로 쓸면서 사물을 접하고 이치를 터득하는 거다. 그게 아이의 근육이 된다. 그때는 깨끗한 방이 정답이 아니다. 아이의 시행착오가 정답이다. 마음 급한 부모가 보는 오답이 그때의 정답이다.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도 똑같다. 거울을 보면서 희로애락의 표정 만들기에 엄청난 노력을 한다. 기쁜 것, 화내는 것, 슬픈 것, 즐거운 것. 그렇게 그렇게 오답의 언덕을 넘고, 또 넘다가 스스로 키우는 것이다. 만들어진 천의 얼굴이 아니라 천의 얼굴을 만드는 근육을 말이다. 정답이 아니라 정답을 만드는 힘을 말이다. 그런 힘이 진짜 정답이 아닐까.

이 글을 쓰면서 다시 물어본다. 인생에서 나의 채점 기준은 뭔가. 만들어진 정답이 정답인가, 아니면 정답을 만들어 가는 힘이 정답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