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학 박사

김성중

영화 <더웨일>에서 272kg 거구를 연기한 브렌든 프레이저가 2023년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브렌든 프레이저의 복귀작인 <더 웨일>은 세상을 거부한 채 살아가는 대학 강사가 9년 만에 만난 10대 딸과 쓰는 마지막 이야기를 담은 작품입니다.

주인공인 찰리는 글쓰기 강의에 재능이 있는 대학 강사이며 온라인으로만 학생들을 만납니다. 카메라가 고장 났다는 이유로 매번 끄지만 사실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찰리의 체중은 소파에서 일어나기 버거울 정도여서 남들에게 자신의 체형을 숨기고 싶었고 고도비만은 실패한 자신의 삶을 상징한다고 여깁니다.

비만 때문에 심부전증에 시달리는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고등학생 딸 엘리를 만나려고 합니다. 8년 동안 연락이 끊겼던 딸이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는 좋은 수필 하나를 써내면 자신의 모든 재산을 주겠다는 조건을 내걸며 딸과 함께 시간을 보냅니다.

‘더 웨일’은 구원에 대한 영화입니다. 새로운 사랑을 위해 가족을 버렸던 찰리가 인생 마지막 5일 동안 힘겨운 과정을 거쳐 안식을 찾는 모습을 전합니다. 삶에 아무것도 남지 않고 살덩이로만 존재하는 찰리의 사연은 남다른 감정을 만들어내기 충분합니다.

원작인 연극의 느낌을 살린 이 영화의 구성은 단순합니다. 장면 대부분이 집 거실에서 펼쳐집니다. 과거에 대한 회한과 몸무게와 사투하는 찰리의 모습이 압권입니다. 일어나기조차 힘든 찰리가 생의 끝자락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기 위해 애를 쓰는 장면에서 우리 자신들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잔잔한 영화입니다.

첫째, 이 영화는 커다란 고래가 등장하는 소설 ‘모비딕’이 중요한 소재이며 고도비만을 뜻하는 ‘고래’라는 표현이 타이틀입니다. 새 생명이라는 이단을 통해서 종교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으로 감독은 사람을 구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라는 얘기를 하고자 합니다.

영화 속에서 사랑으로 자신을 극복해내는 인물은 찰리뿐만 아니라 교회의 기금을 훔쳐 달아난 선교사 토마스도 가족의 사랑을 통해 고민과 방황에서 벗어납니다. 엘리 또한 아빠의 사랑을 깨닫고 세상을 둘러싼 불만과 공허함에서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둘째, 영화는 이렇게 우리 곁에 사람이 필요한 이유를 알려줍니다. 사람은 우리에게 상처를 주고 우리의 마음속을 괴롭히는 존재이지만 우리의 상처를 들여다보게 해주고 용서와 사랑을 나누는 대상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삶에 의미가 없었던 찰리에게 살아있는 순간이라도 의미를 찾고 싶은 열망을 전달해준 것 또한 사람이기 때문에 다시 한번 사람과 사랑을 믿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영화뿐만 아니라 연기 인생 30여 년 만에 아카데미 첫 후보 지명에 이어 수상까지 한 브렌든 프레이저의 인간 드라마가 감동을 줍니다.

‘미이라’ 시리즈의 흥행을 이끌며 90년대 스타로 군림했던 브렌든 프레이저. 그러나 촬영 중 거듭된 부상과 수술, 이혼으로 막대한 위자료 지급, 자폐 증세가 있는 아들의 치료 등 여러 어려움이 겹치면서 그의 연기 인생에도 제동이 걸립니다.

무엇보다 골든글로브 시상식을 주관하는 기자협회 회장에게 성추행을 당하는 사건을 겪으면서 피해를 폭로했다가 오히려 영화계 블랙리스트에 올라 출연 기회를 잃고 스크린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러던 중 애로노프스키 감독이 우연히 그가 출연한 영화의 예고편 영상을 보고 '더 웨일'의 ‘찰리’ 역을 제안하면서 그의 부활이 시작됐습니다. 감독은 이 영화 시나리오를 10년 동안 묵혀두었다고 합니다. 찰리 역을 완벽히 연기할 배우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하니 참으로 인생은 모를 일입니다.

브렌든 프레이저의 수상소감은 우리에게 힘을 줍니다.
 
“찰리는 후회의 뗏목을 타고 있지만 희망의 바다에 있는 인물입니다. 이 이야기는 사랑과 구원에 관한 영화이며 어두운 곳에서 빛을 찾는 이야기입니다. 자신을 믿으시고 한 발 한 발 내딛다 보면 언젠가는 가야 할 곳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용기를 내십시요."

사랑하는 여러분, 혹시나 절망의 늪에 계신다면 태풍이 무사히 지나가고, 반드시 오고야 마는 사랑과 구원이라는 순풍의 돛을 조만간 펼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