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숲교회 담임목사

강남웅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한 ‘고르디우스의 매듭’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고대 프리기아의 왕이 된 고르디우스는 자신이 타고 온 수레를 신전에 바칩니다. 그리고 나서는 수레를 성전 기둥에 복잡한 매듭으로 묶고, 이 매듭을 풀고 수레를 끌어 내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아시아를 정복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이 매듭이 어찌나 단단한지 그 아무도 매듭을 풀지 못했습니다. 이후 ‘고르디우스의 매듭’은 영원히 풀지 못할 난제란 의미로 쓰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아시아 원정길에 이 지방을 지나가던 마케도니아 알렉산더 대왕이 이 소문을 듣고 매듭을 풀겠다고 나서게 됩니다.

알렉산더는 매듭을 푸는 것이 생각처럼 여의치 않자, 칼을 뽑아 매듭을 단숨에 싹둑 잘라버립니다. 이제 예언대로 매듭을 풀었으니, 아시아의 왕이 될 것이라는 자신감으로 가득 찼던 그는 원정을 계속하여 당시 대제국이었던 페르시아와 인도까지 정복하면서 아시아를 제패한 왕이 되었습니다.

이후, 고르디우스의 매듭(Gordian Knot)은 평범한 사람은 감히 하지 못할 해결책을 제시한다는 의미, 대담한 방법을 써야만 풀 수 있는 문제라는 뜻으로도 쓰이지요. 매듭을 풀지 않고 칼로 잘라버린 것은 ‘발상의 전환’이나 ‘과감한 결단’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일수록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이 최고(Simple is the best)라는 말로 각 분야에서 회자하고 있습니다.

고르디우스의 매듭과 알렉산더의 결단은 요즘 다르게 해석되기도 합니다. 복잡한 일을 간단하게 해결하면 결국에는 실패한다는 의미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건설한 대제국은 그의 사후 바로 해체되었는데, 매듭을 풀지 않고 잘라버렸기에 예언이 실현되다가 말았다는 설명입니다. 매듭은 자르기보다는 천천히 푸는 게 맞는다는 의견입니다.

동양에는 이 비슷한 뜻으로 ‘쾌도난마(快刀亂麻)’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날랜 칼로 복잡하게 헝클어진 삼을 벤다는 뜻인데, 곧 어지럽게 뒤얽힌 일이나 정황(情況)을 재빠르고 명쾌하게 처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인간관계나 일의 정황이 복잡하게 얽혀 있을 때는 칼로 베듯이 끊는 것도 한 가지 방법입니다. 하지만 그로 인하여 관련된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와 원망이 남게 된다면, 그것은 결코 바람직한 해법이 아닐 것입니다. 엉킨 실타래는 당기면 당길수록 조여지니, 한 올 한 올 느슨하게 해서 풀라는 선조들의 가르침 또한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이 명심해야 할 경구입니다.

파리올림픽에서 28년 만에 배드민턴 여자 단식 금메달을 딴 안세영 선수의 말이 사회의 전반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스포츠에서는 결과가 중요하다 보니 "결과가 과정을 이기는 경우가 너무나 많았다"라며, "지금까지 참아왔지만 더는 참을 수 없다"라고 여러 가지 시정 요구를 했습니다.

금메달 선배와 대한체육회장 임원은 이에 대한 개선과 반성에 앞서 ‘안세영이 잘못했다, 경솔했다’라는 발언을 먼저 내놨습니다. 홀로 선 안세영이 최악의 경우,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뛰기를 포기할 수도 있을까 우려됩니다. 이는 비단 안세영이나 배드민턴계의 문제만이 아닐 것입니다. 안세영 이탈이 현실화한다면, ‘청년의 조직 이탈’이 사회 현상화되고 있는 대한민국에 또 다른 상처를 남길 것입니다.

28년 전엔 옳았어도 지금은 바뀌어야 하는 것들은 수없이 많고, 또 바뀌고 있습니다. 이러한 꼬인 매듭을 풀려면 모두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부동의 세계 1위 안세영에겐 그를 품을 만한 그릇을 가진 ‘어른’이 없어 보입니다. 대한민국에 남는다면 (경기 외적인) 도전으로 가득할 것’이라는 중국 매체의 예언이 현실화하도록 내버려 둬선 안 될 것입니다.

아직도 우리나라의 곳곳에 얽히고설킨 심각한 고르디우스의 매듭이 있습니다. 고착된 시스템의 수혜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너무도 교묘하고 촘촘한 매듭과 그물망에 우리의 현실과 미래가 갇혀있다는 생각에 참으로 마음이 아픕니다. 이러한 문제를 제대로 풀려면 매듭이 상하지 않도록 하나씩 풀며, 그물망을 해체하는 게 정도일까요? 그동안 결과를 중시하며 그 과정을 생략하거나 무시했던 과거의 문제를 한칼에 잘라내야 하는 것일까요?

 문제 상황을 건설적으로 풀어가는 대신 문제를 제기한 당사자를 찍어내는 문화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라 안이 온통 물과 기름 같은 형국입니다. 지켜보고만 있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나부터, 우리 지역부터,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단칼에 끊어낼 수도 없는 이 그물 사슬을 우리는 지혜롭고 진지하게,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풀고 끊어나가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