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약국약사 윤복순

6월 중순이면 장마가 시작되는 시기다. 만일 그날 비가 온다면 어떻게 대체해야 할까. 그냥 따라다닐 때는 회장단이 알아서 하겠지 무사태평이고 남에게 피해주지 않으면 되니 나만 잘 챙기면 되었다.

내 능력에 맞지 않는 회장이란 직함을 얻었다. 전주까지 매달 가기가 쉽지 않아 1년에 두어 번 정도 참석하니 회칙도 회무도 잘 알지 못한다. 졸업하고 조그만 약국을 혼자 한다. 상관을 모셔본 적도 부하직원을 데리고 있어 본 적도 없어 대인관계도 상하관계도 잘 모른다.

참석하지도 않았는데 나를 회장으로 선출해 극구 사양했다. 내 차도 없어 차를 몇 번 갈아타야 하고 또 약국 문도 닫아야 한다. 약국 문 닫는 것도 버스 택시 갈아타야 하는 것도 괜찮은데 내 능력이 문제다.

격년으로 일본을 가고 또 일본 회원들이 우리나라에 온다. 문화교류를 하는데 매년 도에서 보조금을 받기 위해 프로젝트를 짜야하고 그게 통과 될 때까지 도청에도 여러 번 가야한다. 한 번도 해 본적이 없고 어떤 아이디어를 내서 보조금을 받겠는가. 나는 도청이 어디에 있는 줄도 모른다. 아무 걱정 없이 사는 나에게 왜 이런 어려움을 줄까.

개미 쳇바퀴 돌 듯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나 보라고, 안 해 본 것도 해봐야 한다고,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100% 잘 하려고 하지 말고 80%만 해 보자는, 맨 날 남들에게 받기만 했는데 갚을 땐가 보다고, 용기를 내 보았다.

전임 회장에게 회원 명단을 받으니, 사실 나는 회원들도 잘 모른다. 모두 전주 사람들이고 나만 익산에 산다. 작년 일본에 다녀 온 후로 5명이 탈퇴를 했고 몇몇은 이름만 올려놓고 있다. 일일이 전화로 물어보니 이런저런 이유로 빠질 수밖에 없다고 한다.

회원 5명으로 무슨 모임을 할 수 있을까. 대외적인 행사보다 회원들끼리 단합하고 재미있어야, 한 번 가입하고 일본 한 번 다녀와서는 빠지는 일이 없을 것 같다. 도에서 보조금 받아 가나다라클럽과 교류행사 보다 회원 간의 친목이 우선이어야 한다는 마음이 앞섰다.

회원 5명, 준회원 전북 거주 일본인 3명, 식사비를 보조해 주고 의견도 보태주는 남자 자문위원 5명이 총 자산이다. 회원들의 면면을 알아보니 일당백이다.

2월 회장 이취임식이 있었고 3월 올 계획표를 가지고 나갔다. 처음 해 보는 거라 모두들 갸우뚱 했다. 밥 먹고 수다 떠는 것이 운동보다 더 몸에 좋다고, 정신건강에도 좋다고 하지만 그런 중에 새로운 것도 하자고 했다.

4월 한자 1급 자격증이 있는 회원으로부터 한문 인문학 강의듣기, 5월 애송시 낭송회, 6월 창립기념 단합대회, 7월 휴대폰 사진 콘테스트, 8월 휴회, 9월 일본인 회원에게 일본어 배우기, 10월 일본 가나다라회원 맞을 준비, 11월 가나다라 회원들과 각기 다른 한복을 입고 한옥마을 구경, 나는 이도령 한복을 입어볼 생각이다. 한지공예로 브로치 만들기, 백제 왕궁국립 박물관 미륵사지 국립박물관 왕릉구경(2박 3일), 이곳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일 뿐만 아니라 백제의 문화가 일본으로 전수되었기에 일본인들에게도 관심분야 일 것 같다. 12월 결산 및 송년회로 계획을 세웠다.

죽으란 법은 없어 전북 거주 일본인 모임에서, (우리의 준회원이다) 전주시로 부터 보조금을 받았다고 우리 모임과 공동 작업을 하겠단다. 박물관 견학 갈 때 필요한 버스 대절비, 가나다라 회원들과 같이 할 한지공예 체험비, 한 번의 식사비를 담당하겠다고 한다. 천군만마를 얻었고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회비도 적고 도에서 지원금도 받지 못해 돈이 부족했다.

한문 인문학 강의는 우리 모임의 격을 높여주었다. 책자를 만들고 그날 공부하자고 볼펜까지 챙겨오는 열과 성을 보여 준 회원 덕분에 우리는 자존심이 살아났다.

5월 시 낭송을 준비하며 회원들은 시 읽은 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다, 회장이 시집 한권 씩 사줘라, 엄살을 떨기도 했다. ‘시를 읽으면 상처도 꽃이 된다.’ 언제 우리가 일본 시를 들어보겠느냐, 처음 해 보는 것도 우리끼리 해보는 게 낫지 다른 사람들 앞에선 더 힘들다, 좀 못하면 어떠하랴 우린 모두 아마추어인데, 등등의 대화로 진행했다.

낭송할 시 제목과 시인이름을 총무 휴대폰에 올려 달라고 했다. 당일까지 나를 포함해 3명이 올렸다고 한다. 그리고 그날, 다른 회원들도 시를 준비해 왔다. 계절의 여왕 5월 온 산하가 녹색인 소양, 가든 발코니에서의 시 낭송은 분위기가 100점이었다. 나름 멋을 살리려 노력했고 모두 만족했고 신선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 여세를 모아 6월 창립기념 단합대회 얘기를 꺼냈다. 여러 토론 끝에 고창으로 결정되었는데 해수온천은 못하게 돼 아쉽다. 그곳이 여름 비수기를 맞아 내부수리중이라고 한다. 일본 준 회원이 11월 가나다라클럽과 같이 부를 수 있는 일본 노래 악보를 가져와 가르쳐 주겠다고 한다. 그녀는 성악과 출신이다.

나는 치자스카프를 만들어 갈 생각이다. 드레스 까지는 못 맞춰 주더라도 검정바지 검정윗도리에 치자스카프로 멋을 내면 단체복장을 해야 할 때 충분할 것 같다.

간호대학 교수 출신인 회원이 치매예방에 관한 책을 가져오고 강의도 해 주겠단다. 나 혼자는 못할 일을 둘이 아니 여럿이 하니 못할 게 없다. 사람이 하는 일 서로 마음을 맞추면 뭔들 못할까.

7월 사진콘테스트 때는 상금이 있냐고 묻는다. 있다, 1등 2등 그리고 모두는 3등으로 참가상이다. 주제는 무엇이냐고 의욕을 보인다. 주제없이 자기 얼굴만 나오지 않으면 된다고 하니 “풍경”으로 하자고 한다. 회원들의 투표로 등수는 결정 된다.

처음 시작할 때 걱정이 조금씩 재미로 바뀌어 간다. 회원도 한 명 늘었다. 나도 모임이 있는 날은 약국을 하루 쉰다고 맘먹으니 조급하지 않고 편안하게 다녀올 수 있다. 회원들의 지혜와 대책 없이 긍정적인 내 마인드가 합쳐진다면 그까짓 장마가 문제이겠는가. 매달 무슨 이벤트로 회원들과 재미있게 할까, 골치는 아프지만 이렇게 머리 쓴다면 서울대도 갈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