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약국 약사 윤복순

거침없이 전국적으로 비가 내린다고 한다. 특히 제주도와 남해안엔 많은 비가 예보되었다. 문제는 바람이라며 빗속을 뚫고 출발했다. 딸네는 새벽 2시, 우리 집에선 4시에 나섰다. 비는 여전히 오락가락이고 과연 출항할 수 있을까 비와 바람을 예의주시 하며 갔다.

코로나 전 거문도 등대체험에 당첨되었었다. 딸이 애들이 다섯이나 되니 아마도 우선권이 주어지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그때는 명절 다음날 이어서 우리 집에서 출발했는데 지리산 주변을 지날 때 “강풍주의”라는 도로 안내가 떴다. 바보인 나는 그걸 보았음에도 배가 출항하지 못한다는 것을 몰랐고 지리산 주변이라 해발이 높아 바람이 쌘 모양이라 생각했다.

여수 여객선터미널에 도착해서야 배가 출항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 가보는 거문도, 미리 공부도 다 해 놨고 명절 끝 손자손녀들이랑 들뜰 대로 들떠있었는데 많이 황당했고 석이 떨어졌다. 여수 주변을 구경할 수도 있었는데 바로 집으로 되돌아 왔다.

그리고 오늘 다시 거문도에 간다. 등대에서 하룻밤을 무료로 묵고 등대에도 올라가고 거문도 등대에 대한 설명도 듣는다. 그런데 또 이렇게 비가 온다. 과연 이번엔 갈 수 있을까. 5주 연속 일요일 마다 포도밭에 일을 하러 갔기에 많이 지쳐있어 갈 수 있으면 좋겠다. 쉼이 필요하고 여행이 많이 고프다.

거문도와는 인연이 좋지 않은지 사위가 못 가게 됐다. 모시던 상사분이 퇴직을 해 퇴임식이 일요일에 있어 토요일 여수까지 태워다 주고 일요일 행사를 하고 다시 여수로 데리러 온다고 한다. 운전을 얼마를 해야 하나 걱정을 했는데 여수엑스포역에 차를 두고 KTX로 이동한다고 해 걱정을 덜었다.

여수 쪽으로 내려갈수록 빗발이 굵어진다. 출항한다고 해도 거문도 까지 2시간 30분 걸린다는데 아무 일 없을까, 긍정 100%인 나도 나이를 먹었는지 걱정이 앞선다. 까지 것 못가면 다음에 가면 되지 그런 마음은 없고 이번에도 못 가게 되면 거문도는 끝이다, 이런 오기심이 생긴다.

여객터미널엔 사람들도 많고 활기찬 느낌이다. 승선권은 출발 1시간 전부터 발행한다고 해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하고 배표를 받았다. 가기는 간다.

10시 반쯤 거문도 여객선터미널에 도착했다. 비가 억수같이 내린다. 바닷바람 까지 더해 덜덜 떨게 만든다. 터미널 안에서 밖에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같이 배를 탔던 사람들은 하나 둘 다 떠나고 우리만 남았다.

거문도는 나에게 호락호락 하지 않다. 가까운 식당에 가는데도 추워서 비옷으로 간신히 보온을 했다. 설상가상 식당마다 예약 손님이 많아 일반손님을 받을 수 없다고 한다. 등대는 오후 2시 이후부터 입실 가능이다.

바닷바람은 우산을 날라 가게 하고 밥도 먹을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산악회나 이런저런 모임에서 왔고, 예약한 식당이나 민박집 호텔 등 연관 있는 곳에서 차를 가지고 와 모셔가는 것 같았다.

네 번째 식당에서 밥을 먹을 수 있었고 다행히 갈치조림은 입에 딱 맞았다. ‘감사합니다.’가 절로 나온다. 저녁 내일 아침 식사 준비물에 옷 세면도구 배낭이 무겁다. 터미널에 물품보관함이 없다. 남편이 짐을 지키고 있겠다며 딸이랑 손녀들이랑 구경하고 오라고 한다.

거문도 역사공원에 갔다. 비는 여전히 쏟아 붓는다. 고종 22년 거문도를 점령한 영국군의 흔적인 영국인 묘지다. 그들로 인한 우리나라 최초의 테니스장이 있다. 전기도 제일 먼저 들어왔다고 한다.

등대입실 시간에 맞춰 택시를 탔다. 거문도 택시는 큰 차로 간이의자 까지 있어 여러 명이 탈수 있고 요금은 인원수로 받는다. 마을버스도 1인당 2000원이고 택시도 같다. 목넘어 에서 내렸다. 이곳부터는 걸어서 간다. 비는 오지 배낭은 무겁지, 그런데 경관이 끝내줘 괜히 택시를 탔다는 생각이 들었다.

등대직원은 친절하다. 하나라도 더 보여주고 더 설명해 주고 싶은데 비가 오는 게 마치 자기 잘못이라도 되는 양 미안해한다. 거문도등대는 남해안 1호 등대다. 빛을 밝히는 유리는 그때 당시의 것으로 박물관이라고 한다. 비가 오지 않으면 제주도 한라산도 보인다는데 바로 옆의 백도도 보이지 않는다.

숙소는 깨끗하고 아담하다. 배에도 gps가 있어 등대의 필요성이 약해져 직원 수가 줄고, 직원숙소가 오늘 우리가 자는 곳이다. 식기류 침구류 냉장고 에어컨 세탁기 까지 완벽하다. 한 팀만 받기 때문에 조용하고 온천지가 다 내 것이다.

다음날 용케 비가 그쳤다. 세상은 맑고 밝다. 관백정에서 바라본 바다는 어제완 천양지차다. 백도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이고 주변경관은 내가 아는 어떤 찬사의 말을 다 대동해도 부족하다. 바닷바람은 풍욕을 즐길 수 있고 몸도 마음도 힐링이다. 청정지역 아니 산소통에 들어갔다 나온 맛, 모든 오염물질이 다 빠져나간 기분이다.

등대에서 내려올 때는 걸어서 왔다. 해안의 절벽과 동백나무 숲길이 아름다워 한없이 걷고 싶은 길이다. 물멍을 하기도 하고 처음 보는 풀이름을 찾아보며 내려오니 1시간 넘는 길도 금방이다.

마을버스를 만났다. 어느 산악회에서 불렀다고 한다. 합승을 했다. 다음 버스는 2시간 뒤에 있다고 한다. 서도 끝에 있는 녹산등대에 간다. 산악회 회원들 먼저 올라가라 하고 동도와 서도를 잇는 거문대교를 건넜다. 중간쯤에서 바다를 내려다보았는데 멸치인지 까나리인지 물고기들이 반짝반짝 뛰어올랐다.

녹산등대 가는 길은 인어 “신지끼”전설이 살아 숨 쉬는 거문도 인어를 테마로 한 해양공원이다. 중앙에 청동 인어상도 있다. 등대까지 이어지는 산책로는 확 트인 바다를 보며 녹색 잔디 위를 걷는다. 이국적 풍경, 바다 위를 걷는 것 같다.

어제 손녀들에게 등대직원이 준 등대여권에 녹산등대 스탬프를 꾹 눌러 찍었다. 자유여신상 포즈를 딸과 손녀들과 잡아 보았다.

여수에 도착하니 사위가 마중 나와 기다리고 있다. 여행도 못하고 운전만 하는 사위를 위해 멋진 횟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집에 오니 밤 10시 반이다. 딸네는 자정이 넘어서 들어갔을 것이다. 걱정 많았던 거문도 등대여행 이렇게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