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주
익산시 사회복지협의회장
사단법인 삼동인터내셔널 이사장

우리가 왜 살까?
앞날을 예측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약 탄생에서 죽음까지 삶을 알 수 있다면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그래서 우리는 그걸 모르기 때문에 살아가는 거다.

묵상해 보자. 길이 끝없이 뻥 뚫려 있다면 어떻게 될까?
현실적으로 그럴 수는 없지만 그런 길이 만약 있다면 질려서 우리는 그 길을 가고 싶지 않을 것이다. 얼마나 무료할까? 아마도 졸리거나 사고가 나기 마련이다. 처음 서해안고속도로가 생겨서 한동안 사고가 많았다 한다. 다른 고속도로에 비해서 직선이 많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인생길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의 손으로 빚어진 문명은 직선이다. 그러나 우리의 눈에 펼쳐진 그대로의 자연은 곡선이다.

흐르는 강을 보라. 굽이 굽이의 산맥을 보라. 해와 달을 보라 다 곡선이다. 사람이 만들어 놓은 좋은 집이라든지 그 밖에 다른 구조물은 거의 직선이다. 직선은 냉혹하고 조급하고 비정하다. 그러나 곡선은 여유가 있고 인정이 있고 운치가 있다.

우리는 곡선의 묘미에서 삶의 지혜를 터득할 수 있어야 한다. 존경받는 성자들이나 선각자들은 그렇게 살아왔다.

주변을 보면 목적만을 위해 인생길을 달려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과정을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러한 직선의 삶은 인생의 의미도 없고 맛도 없다. 흔히 우리가 차를 타고 어디를 간다고 할 때 도착할 시간을 정해 놓으면 도중을 거쳐 가면서도 도중에 관심이 없다. 그 시간에 도달해야 한다는 목적 때문에 도중에 보이는 사물에는 관심도 없다.

삶은 목표보다도 거기에 이르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왜 그럴까? 그와 같은 과정이 곧 우리의 일상이고 순간순간의 삶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삶은 미래가 아니다. 과거도 아니다. 지금 이 순간일 뿐이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이 내 삶의 역사이다. 순간순간의 쌓임이 세월을 이루고 한 생애를 이룬다.

2022년도에 자살률 통계가 나왔다. 깜짝 놀랐다.
한 해에 13,000명이 자살한단다. 특히 남자가 더 많고 연령대가 높을수록 더 많다. 물론 허락받은 세월을 반납하고 도중에 뛰어 내릴만한 이유가 당사자한테는 있을 거다. 그러나 목숨을 끊는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자살은 혼자서만 죽는 것이 아니다. 가족과 이웃과 친지들에게 커다란 상처를 주게 된다.

자살의 내면에는 “조급함”이 있다. 조급함은 문제를 빨리 해결하려는 마음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무엇이든 그 자리에서 끝장을 보려고 한다. 참고 기다릴 줄 모른다. 왜 그럴까? 사각 컴퓨터 앞에서 인터넷을 통해 모든 것을 즉석에서 확인하려는 문화가 이런 현상을 오게 하지 않는가 생각이 든다.

우리 사회가 예전에 비해서 여유롭지 않다는 것은 사실이다.
남·여가 사랑을 하더라도 서로가 길들일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필요하다. 어떻게 그 자리에서 사랑이 익는가? 세월을 동반하지 않고서는 사랑이 성숙 되지 않는다.

하나의 씨앗이 움터서 꽃피고 열매를 맺기까지는 봄 여름 가을이 받쳐주어야 한다. 어떻게 뿌리자마자 그 자리에서 열매를 거둘 수 있는가. 뜸 들일 시간이 필요하다. 모든 것을 즉석에서 해결하려는 마음 때문에 뜸 들일 시간이 없다. 참고 기다릴 줄 모르기 때문에 성스럽고 신비한 삶까지도 바로 그 자리에서 끝장을 내는 것이다.

세상을 자기중심으로 살려고 하면 그 길이 막힌다. 이유가 있다. 여럿이 어울려 사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처지를 살피게 되고 관계의 이웃을 고려하게 된다. 우리는 그 관계 속에 자신을 찾고 닦아야 한다.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사회이기 때문이다. 가족이건 친구건 직장이건 관계 속에서 형성이 된다. 홀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다른 표현으로 하자면 직선적인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 곡선적인 사고로 전환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보다 앞서간 선인들의 느긋한 생활 태도를 우리는 배워야 한다. 목표를 향해 줄곧 달려가지만 않고 때로는 천천히 돌아도 가기도 하고, 가다가 여기저기 눈을 팔면서 어정거리기도 하고, 때로는 길을 잃고 헤멜 수도 있어야 한다. 이건 삶의 기술이다. 살아가는데도 기술이 필요하다. 이와 같은 기술, 일종의 지혜가 아닐까. 이러한 지혜는 자기 자신을 극복하게 하고 또한 남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아량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래서 인생으로서 그 저력이 쌓이는 거다.

자살로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 업으로 인해서 스스로 자기 목숨을 버린, 또 그 업으로 이다음 세상에서도 참고 이겨내지 못하고 도중에 뛰어내릴 업의 힘이 쌓이게 된다. 이것은 자살만이 아니다. 모든 행위가 그렇다. 우리의 모든 행위도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연쇄적이다. 그걸 업력(業力)이라고 한다.

우리가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곧 업이 된다. 왜 그럴까? 우리의 마음속에 그러한 씨앗을 뿌리기 때문에 그런 거다. 그러니까 말 한 마디하고, 걸음 한 걸음 걷고, 어떤 생각을 갖는 것은 그것에 그치지 않고 끝없는 파장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현재 상태의 내 몸은(몸무게 얼마, 어떤 건강상태, 어떤 기능, 어떤 감성 등) 지금까지 축적해 온 결과이다. 좋던, 좋지 않던 간에 내가 그렇게 행위를 해서 스스로 그런 결과를 만들어 놓은 거다. 누가 그렇게 한 것이 아니다.

아름다운 세상은 꽃이 만발하고 단풍이 곱게 물든 세상이 아니다. 삶은 지나간 과거나 미래에 있지 않다. 바로 이 순간을 잘 살 줄 알아야 한다. 순간순간 그날그날 내가 어떤 마음으로 어떤 업을 익히면서 사느냐에 따라서 내 삶이 달라진다. 내 개인의 삶만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나와 관계되는 이웃, 가족들의 삶도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