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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여행

윤약국 약사 윤복순

중국여행은 이곳저곳 열 번 넘게 갔지만 백두산은 처음이다. 20여 년 전 금강산길이 열렸고 백두산도 중국이 아닌 북한을 통해서 갈 수 있겠거니 기대를 해 보았다. 희망사항으로 끝나고 중국을 통해서 간다.

백두산여행을 예약했는데 개미 태풍이 중국 쪽으로 간다고 한다. 우리나라 장마도 개미 때문에 언제 끝날지 끝나봐야 안단다. 내 노력과는 상관없으니 더 마음을 졸인다.

연길 공항에 도착했다. 현지가이드 말로는 어제부터 백두산 천지길이 열렸다고 한다. 7일 동안 막혔고 개미로 백두산도 피해가 심했고 조금만 위험해도 바로 폐쇄한다.

서파부터 구경했다. 관광버스는 티케팅 하는 곳까지만 가고 백두산 셔틀버스로 이동한다. 다시 한 번 작은 버스로 환승해 계단입구 까지 간다. 계단은 1442개고 가파르진 않다.

문제는 날씨다. 해발 2744미터, 우리니라 인천 앞바다 기준이다. 북한은 원산 기준으로 2750미터, 중국은 대련 기준 2749미터란다. 천지는 1년 중 100일만 녹아있고 6월 초부터 9월 말까지다. 그중 70일은 비가 온다. 천지 구경은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 백 번 오면 두 번 볼 수 있다고 해 백두산이다, 수많은 사람이 오르지만 못 보고 가는 사람이 천지라서 천지라고 한다, 이런 말들이 있을 정도로 신비감이 있다. 단판에 보기 어렵다고 하니 더 간절해지고 행운을 기대하게 된다.

서파는 하루에 5천명으로 입장 인원을 제한한다. 셔틀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날씨는 변화무쌍이다. 안개가 가득해 바로 앞도 잘 보이지 않다가 해가 나고 금방 먹구름이 덮치고 비가 쏟아질 것 같아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백두산고원은 천상의 화원이다. 야생화의 재롱잔치가 벌어졌다. 녹색 평원들도 뒤질세라 최고로 뽐을 내고 있다. 입이 벌어지고 아이고 이뻐, 야! 좋다, 입이 구시렁구시렁 한다. 소백산의, 지리산의 평전 수십 개 이어져 있으니 내 마음도 한없이 넓어진다. 이런 길을 걸어서 올라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계단을 오르는 길은 인산인해다. 5000명이 이리 많은 줄 몰랐다. 앞사람 따라 한 발 한 발 올라야지 추월도 쉽지 않다. 천지 주변은 인의 장막이다.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천지를 보는 것은 대목 장날은 저리가라다. 어찌어찌 겨우 비집고 천지를 알현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천지의 날씨는 10분도 동일하지 않다 하니 기다리고 있었다. 거짓말 같이 서서히 전체가 다 보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여기저기서 와!와!와! 박수가 터졌다.

차츰차츰 조금씩 가려져 가고 또 아주 조금 한 쪽이 보이다가 다시 안개가 덮이고 사람들은 마구마구 올라와 자리를 잡으러 밀치고 비집고 야단법석이다. 사진 다 찍은 사람은 자리 좀 내달라 외쳐보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다. 나도 천지의 변화무쌍함에 넋이 빠졌다. 멍하니 천지의 시시각각 변화에 취해 있었다. 아름다운 곳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감사합니다가 나왔는데 막상 천지 앞에선 그런 말도 하지 않은 것 같다.

천지와 내가 일체가 되다 시간을 보니 가이드와 만나기로 한 시간이 되어간다. 그때서야 남편을 찾으니 없다. 기다리고 있다 잘 보일 때 사진 찍는다고 잡고 있던 손을 놓았는데 많은 사람들이 밀치고 자치는 바람에 거리가 멀어지고 만 것이다.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다. 이름을 불러도 대답이 없다. 옷이 비슷해 가까이 가 보면 아니다.

길은 하나니 걱정은 없다. 약속시간에 맞춰 내려가면서 흘끔흘끔 주위를 둘러보지만 남편은 보이지 않는다. 설상가상 비까지 쏟아진다. 비옷은 남편이 맨 배낭 속에 있다. 남편은 또 얼마나 애가 탈까.

비 때문에 서둘다보니 약속시간보다 10분 쯤 먼저 도착했다. 남편은 내려왔다 내가 안 왔다고 하니 나 찾으러 다시 올라갔다고 한다. 어찌 찾겠는가.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라 시간 맞춰 오겠거니 기다렸다. 10분이 하루 같다. 중간에서 딸네를 만났고 손녀가 할머니 내려가는 것 봤다고 해 안심했단다.

남편이 “excuse me”를 백번은 했을 거라며 그 많은 사람들을 헤치며 오르고 내리기를 하며 찾았단다. 백두산에서 달리기를 한 사람은 자기밖에 없을 거란다. 어련히 시간 맞춰 올까, 내가 어린 애도 아니고. 천지에서 이산가족 될 뻔 했다고 앞으로 자기 손 놓으면 가면 두지 않겠단다.

처음 와서 천지를 완벽하게 보았다. 참 복된 날이다.

다음 날은 북파코스다. 북파는 하루 3만 5천명으로 제한한다. vip 입장이라 기다리지 않고 한 차로 계속 오른다. 천지 입구까지 가고 A코스와 B코스가 있다. 차에서 내리니 비가 내린다. 제법 굵다. B코스가 더 잘 보이고 비가 오니 애기들을 데리고 다니기에도 덜 위험하다고 한다. 5천명도 많은데 3만5천명은 그야말로 인간 띠가 3겹 아니 5겹으로 둘러쳐진 것 같다. 그 모습도 장관이다. 비속에 천지는 볼 수 있을까.

어제 서파에서 워낙 잘 봤기에 못 본다 해도 크게 미련은 없다. 오르는 사이에 비는 그쳤다. 어디로 어떻게 비집고 들어가야 볼 수 있을까. 잠깐 사이 구름이 벗겨졌고 까치발을 하고 후딱 얼굴을 디밀었다. 다 볼 수 있었다.

남편이 A코스로 가서 또 보자고 한다. 올라가는 사람 내려가는 사람 뒤죽박죽이다. B코스에서 내려와 다시 A코스로 올라야 한다. 앞사람에 막혀 못 올라가고 있는데 와!와! 소리가 들린다. 또 순간 완벽한 모습이 보였나 보다. 마음만 달음질친다. 얼마를 서 있는데도 천지는 보여주지 않는다.

여기저기 사진 찍는 사람들 때문에 잘 찍는다고 찍어도 사람들의 뒷머리가 나온다. 사진 찍기를 포기하고 보이는 대로 눈에 더 많이 담았다. 다행히 딸이 사위가 완벽하게 찍어 그걸 공유하기로 했다. 어제 나 혼자 내려가게 한 게 미안했는지 딸네도 내 곁을 잘 지켜주고 사진도 많이 찍어줬다.

백두산 천지는 개인적으로 트래킹이나 등산은 할 수 없다고 한다. 모두 백두산 셔틀버스를 이용해서만 가능하다. 그 많은 중국 인구에 자유 개방 한다면 유네스코 자연 보존구역으로 남아있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정책이 천지 볼 수 있는 확률을 조금이라도 많게 만든 것 같다. 서파 북파 모두 천지를 볼 수 있어 운수대통이다.

중국 여행을 여러 번 했지만 이번 백두산여행을 하면서 처음으로 중국이 부럽다는 생각이 살짝 들었다. 이곳이 고구려 발해의 땅으로 지금도 우리의 영토라면 이런 생각이 계속 맘속에 있었기 때문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