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애

얼마 전에 저녁 뉴스를 보다가 한숨이 절로 나오는 소식을 들었다. 아나운서의 말을 듣고 보니 우리 아이들의 문해력이 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수준 이하였다. 길가에 가로등이 세로로 서 있는데 왜 가로등이라 부르냐고 말하는 아이들. 사흘과 나흘도 구분을 못해서 검색어 순위에 사흘이 올라온 적도 있었다. 문해력의 문제는 초등학교부터 시작을 해서 대학생들조차도 단어의 뜻을 몰라서 전혀 다른 뜻으로 받아들이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을 했다. 
이런 아이들을 위해 교사는 날마다 수업 시간에 단어의 뜻을 설명하느라 진땀을 뺀다. 이렇게 교사가 진땀을 빼는 시간이 차라리 국어 시간이라면 그나마 이해가 될 테지만 언어영역이 아닌 과목을 가르치는 시간에도 아이들은 교과서에 나오는 단어의 뜻을 몰라 진도를 나갈 수가 없다고 한다. 한 어린이집 교사가 가정통신문을 보냈는데 학부모의 질문이 참 가관이다. 우천시가 어디에 있는 도시인지 궁금해서 선생님에게 물었다. 우천시에는 장소를 변경한다는 공지에 이런 질문을 한 것이다. 가정통신문과 관련된 웃지 못할 사연은 또 있다. 한 초등학교 교사가 전학을 가는 학생에게 교과서를 도서관의 사서 선생님께 반납을 하라고 쓴 가정통신문을 읽고 학생의 부모가 교과서를 직접 사서 반납을 했다고 한다. 사건의 시발점이라는 말을 선생님이 왜 욕을 하냐고 아이들이 물었다는 뉴스는 아마 독자들도 이미 들어서 알고 있을 것이다. 이 뉴스들을 처음 듣고 나서 실제 교육 현장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궁금해진 나는 문해력과 관련된 수많은 예들을 검색해 보았다. 인터넷에 나온 실제 사건들은 정말로 이 나라의 미래가 암울하게 느껴질 만큼 참담한 수준이었다. 세종대왕께서 살아 계시다면 땅을 치고 통곡할 일이다. 이런 예를 이 지면에 일일이 다 열거를 할라치면 나의 글이 신문의 한 면을 빼곡하게 다 채워도 모자랄 것 같아서 관련된 사건들을 더 알고 싶은 독자가 있다면 ‘문해력’이라는 검색어를 쳐보면 수없이 많은 일들을 통해 우리 교육의 현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문해력의 저하는 아이들의 문제로만 볼 일이 아니다. 위에 예를 들었던 것처럼 학부모조차도 가정통신문에 쓰여있는 문구를 이해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웃지 못할 일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이 학부모들은 아마도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에 태어난 아이들이 부모가 된 경우일 것이다. 문제는 해가 지날수록 학부모들의 문해력도 점점 낮아진다는 것이다. 그 원인을 꼽는다면 긴 문장을 읽어야 하는 독서보다는 영상물에 더 익숙해진 세대의 영향이 가장 큰 것으로 매체에서는 분석을 한다. 그러나 나는 이 문제에 대하여 조금은 다른 분석을 내리고 싶다. 문해력 저하의 원인은 인터넷이 가장 큰 원인이라기보다는 한자교육의 부실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여기에는 독서의 부재도 큰 영향을 차지한다. 문장의 전후 맥락을 파악해서 인간관계에 원활한 의사소통을 가능케 하는 도구로써의 기능은 독서만한 것이 없다. 그런데 우리가 독서를 할 때에도 문장에 나와 있는 어휘의 뜻을 알고 읽었을 때와 모르고 읽었을 때의 효과의 차이는 엄청난 것이다. 한자는 바로 이때 필요한 것이다. 우리말은 거의 절반 이상이 한자어로 되어있다. 한자의 뜻을 모르면 어휘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게 되고 더군다나 우리말에는 동음이의어가 많아서 한자는 필수로 알아야 한다. 한자교육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이 자라서 성인이 되어 직장생활을 하고 더 어려운 내용의 글을 읽고 이해하고 더 나아가 자신의 이야기를 멋진 글로 표현하는 일을 해내려면 한자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람은 무언가를 배울 때 밟아야 하는 과정이 있다. 가장 낮은 단계부터 말을 하자면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도 모르는 단계가 있다. 그 다음으로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아는 단계이다. 그리고 다음은 모르는 것을 배워서 실천하는 단계이며 마지막으로는 내가 알고 실천해 본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단계이다. 그래서 그 앎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그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이렇게 지성의 선순환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그 사회의 밑바탕에 언어에 대한 지적 수용능력이 잘 다져져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빠르게 변해가는 시대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그 시대의 문명을 신속히 배우고 익혀서 일상 속에 적용해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라의 언어를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채 시대상황에만 적응하려고 하는 것은 결코 전인적인 인간의 발달을 위해 권장할만한 방법은 아니라고 본다. 정부에서 내년에는 AI교과서를 도입한다고 하는데 과연 지금 교실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제대로 파악이나 하고서 시행하는 정책인지 정말 우려스럽다. 적어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가를 배출한 나라의 교육 현장에서 이런 통탄할 일이 벌어진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임과 동시에 지금 우리 교육의 전면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증거이다. 아마도 우리 아이들에게 ‘문해력’이라는 단어를 말하면 이런 질문을 하는 아이가 나올 것만 같다.

 선생님, 문해력은 새로 나온 달력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