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필성/칼럼니스트
민주통합당 한명숙(68)대표가 취임 후 처음으로 1월 17일 국회에서 새누리당 박근혜(60)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났다.
“여야가 새로운 정치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치를 한 단계 도약시키는 혁신 작업을 같이 할 수 있게 돼 참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들은 10분간의 만남에서 개방형 국민경선제도를 도입하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에 공감대를 이뤘으나 웃음뒤엔 긴장감이 팽팽하게 흘렀다.
사상 첫 ‘언니’들의 만남은 한국정치를 이끄는 대표들의 회동보다 정치 최전선에 여성리더들이 나섰다는 점이 뉴스였다.
또 여성으로서 동질감을 갖는 두 대표의 대화를 부각시켰고 바지정장의 드레스 코드도 같다고 보도했다.
박 비대위원장은 “공천이 힘 있는 몇 사람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국민에게 돌려드려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고 ,한 대표도 “국민 뜻에 맞는, 국민 눈높이에 맞는 공천혁명이 이뤄질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회답했다.
여성시대가 바야흐로 우리 정치권에 도래했다. 박 비대위원장과 한 대표 외에도 이정희(43) 심상정(53) 통합진보당 공동대표에 이르기까지 여성이 전면에 나서서 대한민국 정치를 사실상 주도하고 있다.
여성 정치인이 전면에 나선 이후 대립과 갈등의 정치가 아닌 화합과 포용의 새로운 정치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졌다.
새누리당 한 초선의원은 “개발과 성장이라는 거대담론 중심의 정치를 펴오는 과정에서 양극화가 심화됐고, 이로인해 소외된 국민이 적지 않았다”며 외여야에서 여성 정치인이 전면에 나선만큼 우리 사회 구석구석까지 따뜻함이 스며드는 섬세한 배려의 정치가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민주통합당의 한 예비 후보도 “권위주의 문화가 깨지면서 우리 사회에서 더는 일방통행식 주의나 주장은 통하지 않게됐다”며 “공감 능력이 있고 쌍방향 소통을 잘하는 지도자를 찾는 과정에서 여성 지도자가 전면에 나서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여성 당수시대의 도래에 대해 “ ‘여성’이라는 이유로 지도자에 오른 것이 아니라, 당 대표에 오른 여성 정치인이 그동안 선보인 리더십이 인정받았기 때문”이라며 “부드러운 카리스마와 성실성을 갖춘 여성 지도자가 국민의 지지를 받아 자연스럽게 정치 전면에 등장했다”고 말했다.
박근혜, 한명숙 두 지도자는 여성이라는 성 정체성에 앞서 ‘정치력’을 검증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 정치컨설턴트는 이명박 정부 후반기에 심각한 민심이 반으로 침몰위기에 처한 새누리당이 또다시 박근혜 비대위를 출범시킨 것은 2004년 총선을 앞두고 대선자금 ‘차떼기 정당’이라는 오명과 대통령 탄핵 장본인이라는 두 난관을 홀로 뚫는 박 비대위원장의 강단 있는 정치력을 새누리당 사람들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며 지도자의 리더십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명숙 대표도 박 비대위원장과 견줘 손색 없는 이력을 자랑한다. 박 비대위원장이 박정희 대통령의 딸로 한동안 퍼스트레이디 구실을 했다면, 같은 시대에 한 대표는 권위주의 정권에 맞서 싸운 민주투사의 경력을 쌓았다.
이뿐 아니라 한 대표는 풍부한 국정운영 경험도 갖췄다. 김대중 정부에서 여성부 장관을 지냈고 노무현 정부에서 환경부 장관을 역임한 뒤 여성 최초로 국무총리를 지냈다.
2010년 지방 선거에서 서울시장에 도전했다가 근소한 표차로 낙선한 그는 지난 2년간 뇌물수수 혐의를 두고 검찰과 지루한 법정공방을 벌인 끝에 무죄판결을 받았다.
여성 당수시대가 열린 이후 우리 정치권에는 변화 바람이 조금씩 일고 있다. 박 위원장은 당이 위기에 처했을 때, 또 화합과 통합, 설득이 필요할 때 전면에 나서 인기에 연합하지 않고 자기과시를 하지 않는 여성 지도자 특유의 포용력이 빛을 발휘하기도 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한 대표 역시 여러 세력이 한곳에 모인 연합군 성격의 민주통합당을 당직 인선을 계기로 화
적 결합을 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 대표는 노동계 배려 차원에서 이용득 한국노총 총연맹 위원장, 여성계 몫으로 남윤인순 ‘내가꿈꾸는나라’ 공동대표를 지명직 최고 위원으로 임명했다.
민주통합당 최고위원 8명 가운데 3명이 여성이다. 우리나라 정당 사상 유력 정당 지도부에 과반수에 가까운 여성이 최고위원을 맡은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4.11 총선 전국에 들어서면서
여야 할 것 없이 공천 태풍이 세차게 몰아치고 있다.
여성 당수시대를 연 박근혜, 한명숙 두 여성 지도자가 앞으로 구태 정치판 날리는데 어떤 새 정치를 펼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정치의 봄’은 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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