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복순/윤약국 약사

남편이 기분 좋은 얼굴로 낮에 약국에 나왔다. 평소엔 문 닫을 때나 나와 문을 닫고 같이 들어간다.

왜 그리 기분이 좋으냐고 물으니 휴대폰을 보여준다. 뭐라 글자들이 쓱 올라가다 사라졌다. 너무 빨라서 다 읽지도 못했다. 나는 휴대폰이 없다.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고 한다. 남편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며칠 전이다. 아침 운동을 하는데 남편 휴대폰에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음성이 나왔다. 신혼여행간 며느리에게서 온 것이었다.

“저희들은 잘 먹고 잘 놀고 있습니다. 많은 이야기는 돌아가서 해 드릴께요.”

아들이 잘 도착했다고 나에게 전화 하면서 전화 요금이 비싸니 아빠께는 따로 전화 드리지 않겠다고 했었다. 그래서 평소에 안 하던 문자를 보낸 것 같다.

남편은 그 문자 한 통으로 들떠서 운동도 제대로 못했다. 어서 집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남편은 문자 보내는 것 할 줄 모른다. 며느리에게 문자를 보내야 할 텐데 마음이 급한 모양이다.

나는 딸에게 전화해 대신 보내주라고 하자고 했다. 싫단다. 시아버지가 문자도 보낼 줄 모른다는 게 구식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딸 휴대폰으로 보내면 딸 번호가 뜬다며 기어이 배워서 직접 보내겠단다.

하고 싶은 얘기는 썼는데 어디를 눌러야 보내는지 몰라 하루해를 보냈다.

저녁때 퇴근한 딸과 통화를 해 겨우 보냈다. 문장이 길어 끊어지고 말았다고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다시 세 통화로 나누어 보냈단다.

아들이 4년 넘게 교제하다 결혼했다. 아들과 며느리는 입사 동기다. 신입사원 연수기간부터 사귀어 왔다.

연애 기간이 길다보니 우리 집에도 가끔 내려왔다. 우리 부부랑 허물없고 친해졌을 때다.

“oo아 손 한번 잡아 봐도 되니?” 하며 남편은 예비 며느리에게 호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해외여행을 다녀올 때였다. 남편이 면세점에서 한 핸드백이 맘에 든다며 사자고 했다.

뉴요커들이 들고 다니는 비싼 거라고 해도 예비 며느리 주고 싶어 주위를 맴돌았다. 그런 백은 나도 들어 보지 못했다. 보통 사람 한 달 봉급보다 더 비싸다.

사려면 두 개 사야 한다, 딸 것도 사야지 어떻게  oo이 것만 사냐며 설득 했다. 망설임 없이 두 개 사라고 했다.

이런 저런 대화 끝에 사지 않았다. 남편은 여행 때마다 면세점을 둘러보며 며느리감에게 뭣인가 사 주고 싶어 야단이다.

아들이 과장 진급 시험에 합격했을 때도 아들에게는 “애썼다” 한 마디하고는 예비 며느리에게는 “네가 더 애썼다. 고맙다”하면서 모든 공을 그 애에게 다 돌렸다. 그 애의 친가가 서울이다.
아들 결혼식 날 폐백 받을 때도 나는 ‘둘이 맘 맞추고 잘 살아라, 오늘이 중요하니까 항상 오늘 행복 할 수 있도록 노력해’라고 말 해줬다.

남편은 아들과 며느리에게 미리 써 놓은 편지를 덕담으로 내놓았다. 신혼여행 가서 읽어 보라며.

아들이 7박8일의 신혼여행을 마치고 오늘 인사를 왔다.

나가서 점심을 먹어도 되련만, 살림 못하는 나를 표낼 일 있는지 남편이 직접 몇 가지 음식을 준비 했다.

외국에서 얼마나 집 밥이 먹고 싶었겠냐는 것이 이유다. 기쁜 마음으로 만들었는지 맛이 좋았다.

꿈에서 현실로 돌아온 애들은 내일부터 근무를 해야 한다. 하루 밤도 못 자고 점심만 먹고 서울로 올라갔다. 어버이날 전 주말에 다시 내려오겠단다. 남편은 점심 때 애들이 잘 먹은 반찬을 싸주라고 한다.

며느리 사랑 하면 이황 퇴계선생도 빼놓을 수 없다. 둘 째 며느리가 사별하고 혼자 지냈는데, 허수아비를 만들어 아들 옷을 입혀놓고 살아있는 것처럼 도란도란 얘기하는 것을 듣고는 친정으로 돌려보냈다고 했다.

며느리 사랑하는 마음이 절절하지 않았다면 그 당시로는 법도에 어긋나면서까지 돌려보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시아버지의 며느리 사랑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가보다.

며느리가 올라가는 차 안에서 문자를 보냈단다. “아버님 어머님이랑 가족이 되어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행복해요.” 남편은 이 문자를 받고 기분이 좋아 약국에 나온 것이다.

나보고 어서 읽어보라며 다시 휴대폰을 켜 준다. 이러는 남편 모습이 귀엽다. 아마도 남편은 며느리 바보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