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만길/지역농업연구원장

세상을 살다보면 이래저래 다른 사람의 덕을 보게 되는 일이 많고 도움을 주는 일 또한 적지 않다. 어울려 사는 세상살이란 것이 결국 사람의 숲에서 얽히고 설켜 사는 것이니 희로애락이 모두 사람 때문이요, 험난한 세상을 이겨나가는 일이나 반대로 상처를 입는 것 또한 사람 탓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따라서 사람과의 관계를 어떻게 푸느냐에 따라 순탄한 인생이 있을 터이고 고단한 인생도 있을 터인데, 사람관계가 제일 힘들다는 사람이 많은 것을 보면 그 일이 그리 녹녹한 것은 아닌가 보다. 조구지덕의 지혜를 배워야 할 것 같다.

조구지덕이란 남의 장점을 말하고 칭찬을 하게 되면 서로에게 이익이 될 뿐 아니라 갈등을 푸는 열쇠가 된다는 지혜를 주는 고사다. 사마천의 사기에 실린 계포열전에 나오는 고사인데 요즘같이 상생과 협력이 중요한 거버넌스시대에 새겨 볼만한 이야기임이 분명하다.

계포는 진나라 말기에 살다간 초나라 출신 사람이었다. 계포의 장점이라면 신의가 있고 의협심이 남달라 다른 이 돕는 일에 주저함이 없었다. 그러다보니 본인의 입에서 나온 말이면 하늘이 두 쪽 난다해도 실행하려 했던 모양이다. 그는 본래 항우의 군대가 들어가 장수 노릇을 했다. 항우와 전쟁을 하던 유방의 군대는 계포 때문에 번번이 전투에서 패하게 되었다. 이러니 유방의 입장에서 계포가 살아있는 것은 근심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최종적으로 항우가 패하고 유방이 전쟁에 승리해 한나라를 세우고 1대 황제인 고조가 되었다. 유방은 항우군대와의 전쟁에서 계포에 대한 분노의 칼을 갈았던 모양이다. 계포를 잡기 위해 천금의 현상금을 걸었다. 만약 계포를 숨겨 주는 자가 있다면 삼족을 멸하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평소 신의가 있고 의협심이 강해 남을 돕는 일에 앞장섰던 계포가 숨을 곳은 많았다. 멀리 노나라 땅으로 달아나 숨은 계포의 소식이 유방에게 알려진 것은 계포를 숨겨준 사람이 유방의 친구인 하후영에게 계포의 소식을 전하면서였다. 계포의 사람됨을 전해들은 유방은 계포를 찾아 죽이기는커녕 오히려 계포를 용서한 후 낭중 벼슬에 임명하는 은혜를 베풀었다. 비록 적장이었고 자신의 군대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음에도 계포의 사람 됨됨이를 보고 신하로 발탁하는 유방의 인물됨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계포였음에도 유독 같은 초나라 출신인 조구생을 미워했다. 아마도 말을 잘하는 조구생이 권력자들과 어울리는 모양이 꼴사납게 보였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조구생이 친하게 지내는 벗이 있었는데 황제의 숙부인 두장군이었다. 조구생이 미웠던 계포는 두장군에게 편지를 쓰게 되는데 내용인즉 “조구생은 쓸모없고 믿을만한 자가 못되니 친하게 어울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내용이었다. 이 소식을 접한 조구생은 계포를 찾아가기로 마음먹고 두장군에게 부탁하기를 자신을 계포에게 소개하는 소개장을 써 줄 것을 청했다. 이에 황제의 숙부인 두장군이 이르길 “계포는 당신을 매우 미워하고 있으니 만나지 않는 것이 현명한 처신이다”라고 권고했음에도 조구생은 기어코 계포를 만나기로 작정한 후 계포에게 편지를 써 보냈다. 조구생이 쓴 편지의 내용이 계포를 자극하는 내용이었는지 계포는 머리끝까지 화가 치솟아 가만두지 않겠다며 조구생을 기다리고 있었다.

조구생은 이런 계포에게 말하기를 “모든 초나라 사람들은 황금 백근을 얻는 것보다 계포의 신의와 책임이 담긴 말 한마디를 더욱 소중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제가 천하에 다니면서 장군의 신의 있음과 사람됨을 알린다면 장군의 명성과  인품이 천하에 널리 알려질 것이 자명한데 왜 저를 싫어하시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라고 했다. 계포는 이런 조구생의 말에 감화되고 기뻐, 그를 곁에 머물게 한 후 융숭한 대접과 함께 떠날 때 후한 선물까지 안겨 주었다. 조구생이 곳곳에서 계포의 사람됨을 알리고 다니니 계포의 명성이 천하에 드높게 되었는데 이로 인해 조구지덕이란 말이 나오게 되었다. 이 고사는 조구생이 계포의 인품과 됨됨이를 널리 알리게 됨으로써 뭍사람의 칭송이 자자해진 것처럼 이 시대에 조구지덕의 미덕이 절실함을 교훈해 주고 있다.

세상은 복잡하기 이를 데 없고 변화의 속도는 감지하지 못할 만큼 빠르다. 사람과의 관계도 피할 수 없는 조직사회에서 살고 있다. 혼자서 산속으로 간다 해도 사람의 숲에서 벗어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시대에 상호존중과 상생, 협력의 지혜를 발휘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 역시 만만한 일은 아니다. 직장생활은 물론 어떤 사회생활에서도 조구지덕의 교훈을 새기지 않고는 개인과 조직이 공존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정치 역시 약간의 차이를 뛰어 넘어 상호 신뢰와 협력의 자세를 갖고 국민의 복리를 위해 일해야 한다. 요즘 익산의 정치판을 보면 새삼 조구지덕의 교훈이 가슴에 와 닿는다. 민주당이 원인 제공한 도의원 보궐선거를 놓고 나머지 야권과 시민사회가 상호신뢰와 협력의 지혜를 발휘해야 할 과제를 안게 되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잘못해 치르게 된 보궐선거에서 시민사회의 요구를 묵살한 채 후보를 공천한 일도 그렇고, 민주당의 기득권 유지 태도와 왜곡된 정치문화 혁신을 위해서라도 나머지 야권과 시민사회는 조구지덕의 미덕을 발휘해야 한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경직된 사고나, 나를 중심으로 뭉쳐야만 된다는 패권주의가 자리 잡는 순간 대의는 무너지고 시민들의 지지를 이끌어 낼 수도 없게 될 것이다. 세상살이나 정치나 신의를 갖고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다가서지 않는 한 협치는 난망할 뿐이다.

익산의 정치 현실을 바라보며 새삼 조구지덕의 고사가 가슴을 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