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만길/지역농업연구원장

순망치한이란 말이 있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잘 알려진 고사성어다. 보차상의 역시 순망치한과 함께 서로 힘을 모아 의지하는 관계의 중요성을 말하는 고사다.

상호의존하고 협력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약자들에게 주는 경고인 셈이다. 보차상의는 수레와 수레위에 덧댄 판자는 서로 의지하고 있기 때문에 한 몸이나 다름없어 어느 한 쪽이 없으면 지탱할 수 없음을 뜻한다.

순망치한이나 보차상의는 결국 약자들이 힘과 지혜를 모아 협력해야 함을 가르치는 셈이다.
중국 춘추시대, 진나라 왕인 헌공은 괵나라를 치려 했다. 진나라가 괵나라를 치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나라 땅을 통과해야 했기 때문에 우나라 왕인 우공에게 길을 내줄 것을 청했다.

이 때 진나라 왕 헌공은 우나라 왕인 우공의 마음을 사기 위해 진귀한 선물을 보내고 온갖 환심을 사 결국 우나라 땅을 통과해도 된다는 답을 얻어냈다. 과거에도 진나라의 선물을 받고 길을 내준 적이 있었던 우공은 진귀한 선물과 감언이설에 넘어가 길을 터주고 만 것이다.

진나라 왕인 헌공은 괵나라를 징벌하고 돌아오는 길에 우나라까지 완전히 점령할 속셈이었다. 이런 속셈을 간파하지 못한 채 길을 내주려는 우공에게 순망치한과 보차상의를 예로 들며 진언한 사람은 상 대부 궁지기였다.

궁지기는 진나라 왕인 헌공의 속셈을 알아채고 결코 길을 터 줘서는 안 된다며 극력 반대했다. 약소국인 우나라와 괵나라의 처지가 비슷해 순망치한이요, 보차상의니 서로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라며 왕을 설득하려 했다.

하지만 뇌물과 감언이설에 혹한 우공은 진나라에 길을 터주는 바람에 결국 괵나라를 친 진나라에게 망하고 말았다.

궁지기는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임을 깨닫고 괵나라가 망하게 되면 우나라도 존립할 수 없다며 운명이 다 했다고 말했다. 궁지기의 우려처럼 괵나라를 복속시킨 진나라는 돌아오는 길에 우나라까지 점령했다.

괵나라와 힘을 합쳐도 나라의 미래를 알 수 없는데 우나라 왕 우공은 한치 앞의 운명도 내다보지 못한 채 충신의 말을 외면해 나라를 잃고 말았다.

세상과 시절이 어수선하고 신뢰는 땅에 떨어진 마당에 보차상의를 떠올리는 것은 정치의 혼돈, 사회양극화 고착, 경제위기 심화, 강자의 횡포가 만연하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권은 보수 기득권 세력의 장기집권에 목을 맨 채, 있는 자들의 대한민국을 지향하며 언론장악과 가진 자 위주의 정책을 줄곧 밀어 부쳤다.

야권과의 소통과 대화는 사라지고 일방통행식 정치가 횡행한 것도 이명박 정권의 커다란 과오가 아닐 수 없다.

한나라당, 민주당이 동서를 분할해 기득권을 유지하는 것도 여전하다.

정치발전 없이 경제나 사회의 건강한 발전을 기대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 이런 시국에 정권교체, 정치혁신, 진보통합이 주요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이명박 정권의 독선과 오만의 정치를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야권통합을 해야 한다는 데는 민주당, 참여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의 정당과 시민사회의 견해가 일치하고 있다.

다만 민주당이 통합 논의에 늦게 뛰어들고 진정성을 보이지 못해 민주당 중심의 대통합은 힘을 잃고 말았다. 참여당, 민노당, 진보신당과 시민사회는 현 시점에서 대통합이 어렵다고 보면서 진정성을 보이는 작은 정당과 시민사회가 통합하는 소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소통합을 추진하는 야 3당과 시민사회는 그 동안 수백 번이 넘는 접촉과 토론의 과정을 거치면서 온갖 우여곡절을 뛰어넘는 노력을 다 했다.

정권교체와 함께 극단적인 지역주의 정치의 종식을 위해서는 진정성을 보인 정당과 시민사회가 통합진보정당을 출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사실 민주당은 지난 재보선 이후 참여당을 굴복시키고 민노당과 진보신당을 적절하게 이끌고 가는 구도를 취하려 했다. 한마디로 힘의 논리로 다른 야당을 흡수하거나 굴복시키려 한 셈이다. 이 때문에 참여당, 민노당, 진보신당, 시민사회가 민주당을 신뢰하지 못하게 되었고 결국 민주당 중심의 대통합이 힘을 잃고 말았다.

현재의 민주당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폭압적인 한나라당이나 이명박 정권과는 국가운영방식과 민생, 외교·안보·통일 등 주요 분야에서 정책의 차별성을 갖고 있으나 정당 운영방식 등의 정당문화와 당내 민주화는 갈 길이 멀다.

또한 지역주의에 기대다 보니 “호남의 민주당은 영남의 한나라당이나 다름없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영남의 기득권·토호세력은 모두 한나라당에 가 있고 호남의 기득권·토호세력은 민주당에 기생한다”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민주당은 민주당 중심의 정권교체에만 관심이 있고 다른 야당과 시민사회는 정권교체와 함께 지역주의 극복 및 정당민주화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호남에서는 막대기를 내세워도 민주당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었다. 하지만 민주당의 오만과 독선은 시민들로 하여금 등을 돌리게 했다. 익산에서 민주당이 보여주고 있는 작금의 현실을 지켜보며 다른 야당과 시민사회가 보차상의란 고사를 깊게 새겼으면 한다.

익산에서 벌어지고 있는 민주당의 행태에 대해 비난이나 비판을 넘어 정치개혁, 정당 민주화, 지역주의 혁파를 이루려면 서로 힘을 모아야 한다. 건강한 작은 세력들이 서로 인정하고 신뢰해야 한다.

진정성을 갖고 10.26 보궐선거에서 호남의 한나라당이라는 비판에 직면해 있는 민주당과 맞서야 한다. 서로 헐뜯다 보면 민주당 중심의 익산정치를 새롭게 혁신하기란 쉽지 않다. 남 탓보다는 작은 세력들끼리 지혜를 모으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