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만길/지역농업연구원장

지긋지긋한 비가 그치고 맑은 날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끝없이 퍼붓던 장대비도 제풀에 지친 모양입니다.

올여름은 내내 비와 더불어 살아야 했습니다. 기후변화로 인해 강수량증가와 국지성 호우가 심해졌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환경을 파괴한 대가를 치른다는 것이지요. 이 가을에 농민과 소비자의 근본을 떠올려 봅니다.

근본을 잘 지켰다면, 밤낮 생명농사라고 여기며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으셨다면, 곡식들도 제일인 양 기쁨에 겨워 하겠지요.

그러고보면 농사란 대충대충이 통하지 않는 일이라고 새삼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뒤돌아보면 세상의 근본인 농사를 업수히 여긴 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듯 해 가슴이 미어집니다.

농업은 사양산업으로 전락해 삶을 영위하는 데 있어 부수적 하위개념으로 인식된 지 오래고 근본과 생명을 다루는 농민들조차 그저 손쉽게, 편하게, 가볍게 농사를 짓지 않았나 반성할 일입니다.

흙과 하늘과 바람과 물과 농민의 신심과 만물의 기운과 소비자의 혜안이 어우러지고 화합하고 얽히고 설키어 농사는 되는 것입니다.

이 근본과, 구차한 변명의 여지도 없는 소중한 가치를 우리 모두 잊지 않았나 합니다. 아니 오히려 적극적으로 외면한 듯도 합니다.

우주 만물이 관여하는 농사야말로 하늘이 주신 최고의 직업이요, 가치임에도 누구하나 올곧게 보듬지 못하고 천덕꾸러기로 낙인찍히는 현실을 목도해야 했습니다.

힘 있는 나라는 WTO를 만들고 FTA를 밀어부치고 농업과 농산물이 생명을 살리는데 이용되기보다는 약자를 억압하는 무기로, 도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정부는 농업을 부담스런 존재로 여기지 않나 걱정스럽습니다.

소비자는 지혜롭지 못해 참먹을거리를 고르지 못할 뿐 아니라 농민들로 하여금 참먹을거리를 가꾸도록 조언하고 협력하는데 인색하기 그지없는 듯합니다.

미국이나 여타 강대국이나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목표이니까 차치하고 우리 정부의 노력은 보다 적극적으로 농업을 살리는 대안마련에 노력했으면 합니다. 특히 소비자와 농민의 자세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농민이 참농사를 지어 참먹을거리를 가꿔내면 소비자는 당연히 참먹을거리를 통해 참살이를 하겠지요. 이제 소비자도 참먹을거리에 깊은 관심을 갖고 농민과 하나라는 생각을 가져야 할 때입니다.

어쩌면 농민보다 농사에 대해, 먹을거리에 대해 더 잘알아야 할 사람들이 소비자인지도 모릅니다.

소비자가 모르는데 어느 농민이 참먹을거리를 가꿔내겠습니까.소비자가 참먹을거리인지, 거짓 먹을거리인지 가려내는 혜안이 없다면, 땀과 정성을 다해 참먹을거리를 가꿔내는 참다운 농민만 바보가 되겠지요.

소비자가 근본에 충실하고 혜안이 있다면 그 어느 농민이 거짓 농사를 지어 거짓 먹을거리를 거짓 시장에 내어놓겠습니까.

이제부터 소비자는 참먹을거리에 대해 배우고, 익히고 알아야 합니다. 벽을 허물어 이웃과 대화를 나누고 참먹을거리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가져야 합니다.

혼자는 어려우니 삼삼오오 짝을 짓고 모임을 만들고 전국적으로 소통해야 할 것입니다.농민들 역시 근본에 충실한 선조들의 농심을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뿌리고 거두는 데까지 어느 한구석조차 거짓이 자리잡지 않는 농사, 생명의 소중함을 보듬는 농사, 함께 일구는 농사를 해야 합니다.

배우고 익히는 자세, 상대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협력하는 자세를 통한 조직화를 이뤄야 할 것입니다. 마을 소모임, 작목반, 영농조합, 농민단체 등 모두가 근본에 천착할 때만이 우리 농업·농촌·농민의 미래가 보장될 것입니다.

자금을 받아내기 위한 모임이라면 걱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위에서 시키니까 수동적으로 만든 모임도 문제가 아닐 수 없겠지요.

자발성과 능동성, 주체성이 있는 자세로 참먹을거리 농사를 하고 참다운 조직화를 통해 온살이가 실현되는 꿈을 키워야겠습니다.

소비자,나 농민이나 내가 근본에 충실하면, 내가 만든 모임도 어찌 근본에 충실하지 않겠습니까.

근본에 충실한 소비자, 근본에 충실한 농민이 넘쳐나는 세상이라면 풍성한 결실은 소리소문 없이 우리곁에 참살이로 다가올 것입니다.

때는 바야흐로 참살이, 온살이를 이야기하고 실천하고 책임져가야 할 때입니다. 너나 할 것 없이 말입니다.   

인간의 오만과 욕심이 자나쳐 파괴된 뭇 생명을 살리기 위한 노력을 더욱 새롭게 할 때입니다.
더불어 살아야 할 때입니다. 다른 생명을 해치고 살기에는 우리의 환경과 자연이 너무나 지쳐 있습니다.

땅, 물, 공기, 동식물 등 세상의 모든존재가 농사와 잇닿아 있고 모든 사람은 먹을거리와 같이 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보듬는 농사, 참 먹을거리를 목숨처럼 여기는 소비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여름내내 질리도록 내리던 장대비를 바라보며 내내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저만의 생각이 아니길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