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만길/지역농업연구원장

 「분노하라」 스테판 에셀이 지은 소책자의 제목이다. 지난 해 프랑스에서 출간된 이후 국내에 출판되어 화제가 된 책이다. 사실 책이라고 하기에는 원서는 겨우 34쪽짜리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3세의 노인이 쓴 이 소책자가 화제가 된 것은 세계 경제와 국제사회가 정의를 상실한 채 분노하지 않을 수 없는 비극적 행보를 가속화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스테판 에셀은 독일 출생으로 7세 때 부모와 함께 프랑스로 이주해 파리고등사범학교를 중퇴하고 자유프랑스의 일원으로 레지스탕스 활동을 전개했다.

그 와중에 파리에서 연합군의 상륙작전을 돕다 체포되어 유대인 강제수용소에 수용된 후 사형선고까지 받았지만 극적인 탈출을 감행한 전력이 있는 정의롭고 열정적인 인물이다.

그는 전쟁이 끝난 뒤 외교관이 되어 1948년에 유엔 「세계인권선언문」 초안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고 유엔 주재 프랑스 대사, 유엔인권위원회 프랑스 대표 등을 역임했다. 그는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갖고 사회운동가로서 노년을 보내고 있다.

인권, 환경 등 국제사회가 풀어야 될 과제에 대해 지속적인 사회활동을 전개하던 93세의 그가 세상 돌아가는 꼴이 부조리와 모순 덩어리라는 사실에 분노하라고 외친 것이다.

스테판 에셀은 분노할 때 분노하고, 기뻐할 때 기뻐하라고 말한다.  그는 도덕적 규범이 항상 정의롭다고 이해하지 않는다.

도덕과 윤리란 것은 완성된 것이 아니고 인류의 진지한 성찰과 고민에 의해 완성되는 과정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강요된 규범과 강자의 횡포, 불의 및 부조리가 용인되는 것은 사회가 멍들어 가 돌이킬 수 없는 내상을 입게 되는 악몽 같은 일이라고 여긴다.

불의와 압제에 대해 분노하고 저항하지 않으면 독재정권, 경제권력, 금융권력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음을 강조한다. 철저하게 탈선을 향해 달려가는 인류라는 폭주기관차가 멈추기 위해 누군가 나서지 않으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스테판 에셀의 분노는 그런 의미에서 제 3세계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이자 세계 금융자본의 횡포에 맞선 경제정의 실천활동이요, 잘못된 정권을 심판하는 적극적인 참여와 투표행위인 동시에 환경 및 인권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깨어 있는 시민의 활동을 의미한다.

이런 정의롭고 양심에 따른 행동이 창조적인 비폭력 저항 활동으로 이어질 때 인류가 직면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그런 의미에서 스테판 에셀이 지적한 분노는 오늘 날 인류가 풀어야 할 불평등과 양극화, 인권침해, 환경파괴, 금융자본의 횡포, 과도한 탐욕, 언론의 권력화, 이기주의와 패배주의, 종교의 타락, 강요된 도덕에 맞서는 깨어있는 시민의 저항이라고 할 수 있다.

협동하는 시민,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화된 힘으로 정치, 사회, 경제적 부조리에 당당히 맞서는 창조적인 참여를 요구하는 셈이다.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는 외침과 맥을 같이하는 고사가 당랑거철이다.

당랑거철은 한시외전 제8권에 나오는 고사로 사마귀가 수레를 막는다는 말이다. 사마귀가 수레를 막아선다는 것은 오늘날 달리는 자동차에 뛰어들어 로드킬을 당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한마디로 자기 힘이나 역량을 모른 채 막강한 상대에게 덤빈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당랑거철의 고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오히려 아무리 강한 상대라 할지라도 막는 것이 옳은 일이라면 용기를 내 나서야 함을 일깨우는 고사로 받아들이는 것이 바른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날 제나라의 장공이 수레에 타고 사냥을 하러 나서게 되었다. 가는 길에 웬 벌레가 몸을 곧추세운 채 수레바퀴를 막아서는 것을 보고 장공이 수행하는 자에게 참 맹랑한 벌레라며 “저 벌레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수행하던 부하가 대답하길 “저 벌레는 사마귀라는 놈으로 앞으로 전진할 줄만 알고 물러 설 줄 모르며 제 힘도 모른 채 강적에게 마구 덤벼드는 벌레입니다.”라고 답했다. 장공의 부하들은 대단히 부정적이고 어리석다는 시각에서 사마귀의 행동을 평가했다. 하지만 장공의 평가는 달랐다.

장공이 말하길 “만약 저 사마귀가 사람이었다면 반드시 천하무적의 용맹한 장수가 되었을 것이다. 비록 하찮은 곤충이지만 그 용기야말로 가상하기 이를 데 없으니 수레방향을 틀어 비켜가도록 하라”고 명했다.

그렇게 보면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는 의미와 수레바퀴에 당당히 맞서는 사마귀의 행동에 대한 장공의 해석은 일치하는 셈이다. 자신들의 앞가림하기도 바쁜 소시민이 넘쳐나는 세상에 당랑거철의 고사를 되새기며 불의에 맞서 분노하고, 도전정신을 갖고 살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인류역사는 분노하는 백성의 용기 없이 이뤄진 것이 단 한 가지도 없었다. 누군가 앞장서 불의에 맞서 싸운 결과 그 대가로 정의와 인권이 바로서고 보다 더 나은 인류문명의 공유가 가능했다.

자본의 모순과 횡포가 갈수록 정당화되는 사회에서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는 비폭력 저항정신이 없이 우리 앞에 찬란한 미래가 보장될 것이라는 환상은 걷어 치워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당랑거철은 가장 아름답고 용기 있는 행동이 아닐 수 없다. 모두 다 쉬운 일만 쫓는 세상, 정치권에는 약삭빠른 사람과  겉포장만 하는 기회주의자들이 넘쳐나는 판에 잘못된 것을 바꿔 보겠다고 용기 있게 나서는 당랑거철이 그리워지는 세상이다. 분노하지 않으면 결코 행복은 저절로 찾아오지 않는다. 자본과 권력이 스스로 행복을 나눠 준적이 있는가? 분노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