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만길/지역농업연구원장

대학신문은 해마다 올해의 사자성어를 선정한다. 주로 한 해의 정치, 경제, 사회적 현상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한 사자성어를 대학교수 등 지식인들의 의견을 물어 선정하기 때문에 대개 촌철살인의 사자성어가 선택된다.

2011년 올 해의 사자성어는 엄이도종이다. 직역하면 도둑이 자신의 귀를 막은 채 소리가 울리는 종을 훔친다는 뜻이다.

자신이 한 일이 잘못 투성이인데도 남의 비판이나 비난이 싫어 귀를 막는 후안무치한 행동을 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불통정치와 독단, 왜곡과 가식에 대한 냉엄한 심판을 담고 있는 사자성어가 아닐까 한다.

엄이도종에 뒤이어 선택된 사자성어가 여량목양이다.

한 마디로 이리에게 양을 맡겨 기르게 한다는 뜻이니 국민은 양이고 늑대는 지도자로 표현한 것이다. 탐욕스럽고 백성을 쥐어짜는 지도자를 지칭해 쓰는 사자성어라서 식자들은 이명박 정권을 빗댄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부자감세로 시작된 기득권, 수구세력, 재벌위주 정책이 빚어낸 극단적인 사회경제 양극화 현상을 드러내는 사자성어가 여량목양인 셈이다.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의 집권 4년은 강부자, 고소영 내각으로 시작되어 도덕적으로 흠결이 많은 사람들이 요직을 차지한 채 후안무치의 극치를 보여 주었다. 서민을 말하며 복지를 부정하고, 농민을 말하며 한·미 FTA를 날치기 통과시키는가 하면, 양극화가 문제라면서 재벌에게 특혜와 부자 감세에만 목을 매는 모순의 정치가 횡행했다.

언론탄압, 네티즌 핍박, 특혜의 극치인 종합편성채널 허용, 광고주 협박을 일삼으며 표현의 자유가 확장되었다는 이명박, 최시중 식의 언론관과 방송관이 지배한 한 해였다.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고, 도둑에게 곳간열쇠를 맡긴 셈이다.

여량목양은 사마천이 쓴 사기의 혹리열전에 나오는 말이다. 한나라의 황제인 무제가 중형을 선고받아 고향에 머물고 있던 영성이란 자를 태수로 임용하려는데 다른 신하들이 극구 반대하며 그 부당함을 주장한 고사에서 나오는 대목이 여량목양이다.

어사대부 공손홍은 영성의 태수 임용에 극렬 반대하며 아뢰길 “영성이 제남의 도위를 지낼 때 저는 산동의 하급관리로 있었습니다.

그 때 영성이 백성을 다스리는 것을 보았는데 마치 이리가 양떼를 기르는 것처럼 위험하고 가혹하여 영성 같은 관리가 태수가 되는 것은 부당한 일입니다” 라고 했다.

이에 한 무제는 영성의 태수 임용을 철회하고 태수보다 낮은 직급인 함곡관의 관도위로 임용하게 되는데 도위는 화물의 운송과 통관을 담당하고 여객의 왕래를 감찰하는 직책이었다. 개 버릇 남 못준다고 영성은 인정사정 없는 가혹한 수탈과 착취로 날 새는 줄 모르는 가렴주구를 일 삼았다. 영성은 백성과 하급관리를 쥐어 짜 원성이 자자하더니 그가 부임 후 1년 후에는 하급관리와 백성의 입에서 “차라리 새끼 딸린 호랑이를 건드릴지언정 영성의 노여움은 사지 말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가 되었다.

여기에서 여량목양이 나오게 된 것이다. 이리에게 양을 맡겼으니 양들의 삶이 얼마나 고단할지 안 봐도 뻔한 일이 아니겠는가.

엄이도종, 여량목양, 후안무치의 2011년을 보내며 몇 가지 소중한 교훈을 새겼으면 한다.
우선 과연 정치란 무엇인가 짚어 볼일이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파급력이 크며 국민 모두의 삶에 절대적 영향을 끼치는 것이 정치다. 누구도 정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은 정치를 바라보는 시각에 모순을 담고 있다.

못된 정치인의 원인이 크겠지만 나는 정치와 무관하다, 나는 정치를 모른다, 정치 얘기는 하지 마라, 정치인은 모두 도둑놈이다, 나는 정치가 무조건 싫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자신의 뼛속까지 정치와 무관하지 않은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고 스스로 어리석다는 것을 입증하는 말이다.

자신의 삶을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정치를 외면한 채 여량목양하게 되면 엄이도종의 현실과 마주하게 됨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리에게 양을 기르도록 맡겼으니 그 이리가 귀를 막고 양을 잡아먹을 것은 뻔하다. 그래서 정치를 외면하는 일은 가장 부끄럽고 뻔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더불어 정치를 바라보는 가치와 철학에 관한 것이다. 4년 전 이명박 후보를 선택할 때 국민들은 경제 대통령을 기대했다.

사실 노무현 참여정부 시절은 개혁과정에서 보혁갈등은 있었지만 지표상으로 경제상황은 매우 좋은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체감경기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국민들은 경제가 어렵다고 느끼며 이명박 후보를 선택했다.

좀 더 진지하고 학습된 국민들이었다면 냉정하게 정치철학, 경제철학에 대해 심사숙고 했을 텐데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이명박 후보의 경제관, 정치관이 시대정신과 맞지 않고 철학이 없는 토건정치를 예상하고도 그를 선택한 후과로 우리는 엄이도종, 여량목양을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택해야 하는 쓰라린 현실과 마주하고 있다.

천박한 개인주의적 입장에서가 아니라 모두 골고루 잘 살 수 있도록 노력하는 가치를 놓고 투표했다면 그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모름지기 정치란 나만 잘 살자고 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더불어 잘 사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이리에게 양을 맡겨놓고 나와는 상관없다고 외치는 사이에 대학 문턱을 나서는 내 새끼양의 운명도 결정됨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온갖 비리가 진동하고 정권의 부도덕성이 하늘을 찌르는데도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한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이 2011년 올해의 망언으로 뽑혔다니 정치를 외면한 내 탓이지 누구를 탓하랴.
다만 역사의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라며 여량목양, 엄이도종,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과 미련없이 이별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