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만길/지역농업연구원장

“무릎 꿇고 쫓기니 근심은 가득하고, 산과 늪을 방황하며, 구릉과 뭍을 오르내려 넓은 하늘을 탓하고, 분하고 답답해 가슴을 쳐대니 근심이 풀어지는 것 같구나”. 굴원의 심정을 묘사한 글이다.

굴원은 중국 전국시대 초나라 사람으로 정치가요, 비극적 삶을 살다간 애국시인이다. 그는 본래 초나라의 왕족으로 태어나 친척이었던 회왕의 신임을 얻어 벼슬길에 나섰으나 진나라에 대항하는 문제로 정적인 상관대부 근상과 충돌하게 된 후 고난의 세월을 살다간 당대 최고의 시인이요, 정치가였다. 회왕은 제나라와 동맹해 진나라에 대항할 것을 주장하는 굴원의 이야기를 묵살하고 진나라와 내통하고 있는 상관대부 근상과 왕의 애첩 말만 듣고 굴원을 파직시켰다. 결국 간신과 애첩의 말만 믿고 제나라와 단교한 후, 진나라에 들어가는 바람에 회왕 자신도 포로가 된 채 살해되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다.

회왕이 죽은 후 그의 큰아들인 경양왕이 왕위에 오르고, 막내아들인 자란이 재상에 오르자 정의감에 불탔던 굴원은 부친인 회왕을 객사하게 만든 자란을 공격했다. 나는 새도 떨어트릴 수 있는 재상이요, 왕의 동생인 자란을 공격하니 굴원이 온전 할리 없었다. 굴원은 또다시 미움을 사서 양쯔강 이남인 강남지역으로 쫓겨나게 되었다.

굴원의 애국심과 충정, 올곧은 양심을 알아주지 못하는 세태와, 간신들과 어울릴 수 없는 자신의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한 작품이 유명한 어부사다. 인생을 달관한 듯한 어부의 물음과,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이 없고자 했던 굴원의 답이 어우러진 작품에서 현실과 동화될 수 없는 굴원의 굳센 의기와 고결한 성품을 읽을 수 있다. “차라리 물속에 뛰어 들어가 물고기 뱃속에서 장사 지낼망정 어찌 희고 깨끗한 내 몸으로 세속의 티끌을 뒤집어 쓸 수 있으리오”라고 주장하는 굴원의 삶이 녹아 있다. 굴원은 결국 어부사에 표현한 것처럼 더럽고 썩은 세상에 대한 환멸과 돌이킬 수 없는 부조리한 세태에 대한 절망감을 어찌할 수 없어 강가를 배회하다 돌을 안은 채 멱라수에 몸을 던져 고결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진흙 속에 뒹굴다 더러워지자 매미가 허물을 벗어내듯 씻어내고, 먼지 쌓인 속세를 헤쳐 나와 세상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았다. 굴원이야말로 진흙 속에 있어도 더러워지지 않은 사람이다. 굴원의 지조야말로 해와 달과 그 빛을 다툴 만하다”고 굴원을 칭송했다. 또한 “굴원은 도리에 맞게 행동하고, 충성과 지혜를 다해 군왕을 섬겼지만 참소하는 사람들의 이간질로 곤궁하게 되었다. 신의를 지켰지만 의심을 받고, 충성을 다했으되 비방을 받게 되면 원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며 굴원의 억울함을 기록했다.

이런 굴원의 이야기에서 나온 고사가 가벽문천이다. 굴원이 억울하게 쫓겨나 답답하고 한스런 마음에, 어느 귀신을 모신 사당에 들어가 벽화를 바라보며, 자신의 울분을 벽에 써서 하늘에 물어 보았다는 데서 유래한 고사다. 억울하고, 안타깝고, 개탄스런 현실 즉, 바른 것이 인정되지 못하고 귀를 막는 불의한 현실이 기가 막혀 벽을 보고 외칠 수밖에 없던 굴원의 마음을 나타낸 고사가 가벽문천인 것이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2,300년 전의 굴원이 다시와도 가벽문천이라며 벽과 하늘을 원망하고 강에 몸을 던질 것 같다. 세상이 더러워질 대로 더러워져 혼탁하기 그지없기 때문이다.
너무나 혼탁하니 본디 세상이 그랬나보다라고 위안하지 않으면 견디기 어려운 세상이다. 정치가 썩었다고 말하는 백성이라도 바르다면 걱정할 일도 아니지만 백성의 눈과 마음이 혼탁하고 흐릿하니 썩고 냄새나는 정치인이 득세하고, 거기에 줄서기 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백성이 두 눈 부릅뜨고 지도자를 선택하는 혜안이 없으면 우리 시대의 굴원은 그 어디에 몸과 마음을 둘 것인가.

그 나마 혼탁하기만 하면 다행이다. 옳지 못하나 옳음을 말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외쳐야 하건만 허언과 거짓이 난무하니 진언과 간언조차 구분하기 어렵게 되었다. 이런 판이니 사람이 사람의 말을 믿지 못하게 된 것이다. 옳음을 말하는 사람이 존경받고 인정받는 풍토가 만들어져야 한다. 옳음을 말하는 사람이 소수이고, 힘이 약하고 가난해도 그에게 큰일을 맡길 줄 알아야 한다.

또한 걱정스런 일은 정치지도자들이 간사함, 약삭빠름, 쉬운 길만을 쫓아간다는 점이다. 애초부터 공천장만 받으면 그만이라는 관행이 자리 잡다보니 지금도 그런 좋지 못한 정치를 하는 지도자들이 비일비재하다. 4년 내내 여의도 언저리에서 공천을 받기 위해 서성거리다가 선거철이 되면 언제나 시민의 곁에 있었던 사람처럼 여론을 호도하는 정치인은 이제 끝낼 때도 됐다. 어렵고 힘든 길은 마다하면서, 간사하고 약삭빠름으로 시민의 마음을 사려하는 지도자들을 퇴출시키는 일은 시민의 몫이니, 시민이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는 시민의식이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속이는 사기와 술수가 가득하고 정도와 진정성을 찾기 어려우니 가벽문천이 아닐 수 없다. 내실을 보지 않고 겉모습만 보니 학력을 속이거나 간판뿐인 대학원을 다니고 있다. 실체를 보지 않고 껍데기만 보니 허위경력을 버젓하게 달고 다니는 정치지도자들이 넘쳐난다. 본질을 보지 않고 현상만 바라보니 인사 한 두 번 나눈 것을 가지고 아무개 유력정치인과 절친한 사이라며 시민을 속이는 게 다반사가 되었다.

이 시대에 억울한 굴원이 나오지 않게 하려면 깨어 있는 시대정신과 시민정신이 요구된다. 권리만큼이나 선택의 책임을 무겁게 여기는 공동체 시민정신이 절실한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음을 깊게 새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