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만길/지역농업연구원장

후안은 두꺼운 낯가죽을 뜻하고 무치는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의미다. 한마디로 얼굴이 두꺼워 염치나 체면도 없고 도무지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을 빗대어 후안무치라고 한다.

중국 하나라 계왕의 아들인 태강은 정사는 돌보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던 사냥에만 몰두했다. 왕의 아들이 나라를 돌보지 않으니 결국 나라를 빼앗기고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이 지경이 되자 태강의 다섯 형제는 참담하고 부끄러워 나라를 망친 형을 원망하는 노래를 번갈아 지어 불렀다. 부끄러움, 죄스러움, 서러움, 답답함이 절절하게 묻어 있는 노래를 지어 부르며 태강의 동생들은 피눈물을 쏟았을 것이다.

“모든 백성들이 우리를 원수라고 하니 우리는 장차 누구를 의지할까? 답답하고 서럽구나, 이 마음은 낯이 뜨거워지고 부끄럽기 그지없구나”

서경의 ‘다섯 아들의 노래’편에 실려 있는 태강의 막내 동생이 지어 부른 노래다. 정치를 돌보지 않고 사냥에만 빠져 나라를 빼앗긴 형을 대신해 죄스러움을 참회하는 노래인 셈이다.

막내 동생의 노래에 나오는 안후유치 즉 낯이 뜨거워지고 부끄럽기 그지없음이라는 대목에서 후안이란 말이 나왔고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무치가 덧붙어 후안무치가 된 것이다.

낯가죽이 두껍지 못한 동생들이 형을 대신해 나라를 잃은 죄를 참회하며 한탄하는 고사를 곱씹으면서 나라와 지역의 안위를 생각해 본다.

후안무치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널리 알려진 사자성어다. 그럼에도 새삼 떠올리게 되는 것은 날이 갈수록 후안무치한 사람이 늘어만 가기 때문이다. 사람의 얼굴을 했으나 짐승이나 다름 없는 사람들이 넘쳐나니 인면수심의 세상이 되었다고 한탄 하는 사람들도 많다. 큰 잘못을 저지르고도 가당치 않은 해괴한 논리로 합리화시키는 일들이 너무 많아 견강부회가 보편화되었다며 안타까워하는 사람 또한 많다. 우리 속담에 ‘노래기 찜 쪄 먹는다’는 말이 있다. 염치가 없고 뻔뻔하기 그지없이 얼굴 두꺼운 사람을 빚 댄 속담이다. 냄새가 지독하고 고약하기 이를 데 없는 노래기를 찜 쪄 먹을 정도면 그 비위 좋음이야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이런 일은 정치판이 더욱 심하긴 하나 사회구석구석에 만연한 풍토가 되었다. 그러다보니 권모술수, 사기, 온갖 불법한 행위를 하고도 당연시 하거나 자기합리화에 급급한 세태가 되었다.

대통령이 공약을 지키지 않고도 사과할 줄 모른다. 남북관계가 꼬일대로 꼬여 국민들이 불안해도 정권유지를 위해 남북관계를 더욱 악화시키는 강경정책만을 구사한다. 국제무대에서 외교력은 끝까지 추락했어도 아니라고 우기면 그만이다. 4대강 사업으로 온통 물난리가 나더라도 4대강 공사와 무관하다고 모르쇠로 일관하면 그만이다. 경제가 엉망이고 주식시장이 붕괴 직전이어도 통계를 가지고 장난을 치는 일이 당연시되고 있다. 청년실업이 늘고 가계경제가 추락 할대로 했는데도 가당치 않은 통계로 국민을 속이는 후안무치가 난무하고 있다.

대통령부터 후안무치하니 누구를 탓하랴만 사람을 가리켜 말이라고 속이는 지록위마에 대해 누군가는 ‘아니오’라고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존재이유가 없듯, 사람이 양심과 염치가 없다면 그 사회의 미래를 보장할 수 없음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후안무치에 젖은 세상을 향한 메시지는 지속되어야 한다. 하지만 세태는 적당히 묻어가는 것에 익숙해져만 가고 있다. 자잘한 잘못이나, 자신이 손해 보면 그만인 일이야 문제될 것도 없지만, 나라와 지역을 좀먹는 큰 잘못에도 후안무치로 일관하거나 지켜만 봐선 안 된다. 국민과 시민들이 나서 시시비비를 가릴 줄도 알아야 한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회고록 때문에 불거진 김영삼 전 대통령의 불법 대선자금과 통치자금 사건 역시 국민들이 두 눈 똑바로 뜨고 진실에 접근해야 한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군사쿠데타의 주역이고 무고한 양민을 학살했다는 죄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임기 후 비자금 추징에 임하는 자세나 최근 발간한 회고록을 보면 전두환 전 대통령과 비교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천문학적인 비자금을 조성해 빼돌리고도 29만원밖에 없다며 2,205억원의 추징금 가운데 약 1,700억원을 미납하는 모습은 후안무치의 전형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2,629억원의 추징금 가운데 89%를 납입하고 약 284억원을 미납하고 있으니 그나마 나은 셈이다. 집권 때 물태우라고 불리던 그가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불법 대선자금 3,000억원을 조성해 전달했다는 회고록으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막대한 통치자금도 언급했으니, 불법대선 자금과 통치자금의 규모가 얼마나 컸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다. 흥미로운 대목은 매우 민감한 사안인데다, 자신이 관여한 일임에도 노태우 전 대통령이 회고록에 남겼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김영삼 전대통령측은 사실이 아니라고 펄쩍 뛰면서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양측의 상반된 주장에 대해 대부분의 국민들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회고록을 신뢰하는 것 같다. 격앙된 반응을 보이는 김영삼 전 대통령 측이야 말로 후안무치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사실관계를 떠나 전두환, 김영삼 두 전직 대통령이 보여주는 최근 모습은 후안무치의 극치라는 점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실정을 덮기 위해 언론과 방송을 장악한 후, 모든 것을 잘했다고 하니 이 역시 후안무치가 아닐 수 없다. 전 현직 대통령들의 후안무치와 견강부회한 모습을 지켜보면서 국민들의 혜안이 열리길 기대해본다.

도대체 노래기 찜 쪄 먹는 뻔뻔한 인간들이 누군지, 국민과 시민을 속이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사람들은 누군지 알아보는 지혜의 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