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만길/지역농업연구원장

견토지쟁은 어부지리나 방휼지쟁과 유사한 고사성어다. 어부지리는 서로 싸우는 사이 제 3자가 쉽게 이익을 취한다는, 잘 알려진 고사성어다.

방휼지쟁은 흔히 쓰지는 않으나 이 역시 도요새와 조개가 다투는 사이 어부가 이익을 취했다는 이야기로 어부지리와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 어부지리는 일의 결과를 나타낸 것이고, 방휼지쟁은 도요새와 조개가 싸우는 모습을 담은 같은 뜻의 고사성어다.

견토지쟁은 직역하면 개와 토끼의 다툼으로, 어리석게 다투다 남만 이롭게 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중국 전국시대의 제나라에 순우곤이라는 사람이 고위관직에 있었다. 당시 제나라와 위나라는 서로 대치하고 전쟁을 밥 먹듯 했다. 당시 전쟁이란 것이 피폐한 백성들을 전쟁터로 내모는 일이었으니 백성들의 삶이 얼마나 고달펐을지 지레 짐작이 된다. 허구한 날 전쟁이니 나라살림도 온전할 리는 없었을 것이다.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군사들을 앞세우고 또다시 전쟁을 하게 되었으니, 지혜로운 책사라면 전쟁의 부당함과 모순을 왕에게 아뢰어야 했다.

이 대목에서 순우곤이 견토지쟁을 예로 들며 전쟁이 제나라에 아무런 실익이 없음을 진언하게 된다. 당시에 왕을 모신다는 것은 말 한마디에 죽고 사는 일이었으니, 세치 혀의 무게와, 말의 결과에 대한 책임은 크고 큰 것이었다. 이미 제나라의 왕은 위나라를 치기 위해 전시동원체계를 가동한 채 군사를 대대적으로 일으켜 훈련을 시키고 있었다. 왕의 결심이 만만치 않은 마당에 이를 중단해야 한다고 말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순우곤은 지혜로운 사람이었기에 왕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에둘러 전쟁의 쓸데없음을 말한다.

순우곤이 왕에게 “개와 토끼가 있었습니다. 개의 이름은 한자로 이고 토끼의 이름은 동곽준인데 둘 다 재빠르기가 타의 추종을 불허했습니다. 개는 토끼를 잡아먹기 위해 뒤를 쫓기 시작했는데 수십리나 되는 산기슭을 세 바퀴나 쫓고 쫓기다 둘 다 지쳤습니다. 이런 지경인데도 개는 토끼 쫓아가기를 멈추지 않고 가파른 산꼭대기를 다섯 차례나 더 오르고 내리다 개와 토끼 모두 지쳐 쓰러져 죽었습니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농부가 지쳐 죽은 개와 토끼를 거저 얻었으니 전부(농부)의 횡재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여기에서 견토지쟁이란 말이 생겨났다.

개와 토끼가 주변 정세와 상황도 파악하지 못한 채 목숨을 건 레이스를 펼친 결과 엉뚱한 사람이 이익을 취하게 됨을 이른 것이다. 뒤이어 순우곤은 “왕이시여, 제나라와 위나라는 오랜 전쟁으로 만 백성이 지치고 쇠약해진 상태로 사기가 떨어졌습니다. 이 마당에 또 다시 전쟁을 치르게 되면 제나라와 위나라에는 아무런 실익이 없고, 서쪽에 있는 진나라와 남쪽의 초나라에게만 이익이 될까 두렵습니다. 견토지쟁의 형국입니다”라고 덧붙였다.

제나라의 왕이 순우곤의 이야기를 들은 후 위나라 공격계획을 중단하고 내치와 부국강병에 힘쓴 결과 전국시대를 제패하게 되었다. 춘추전국시대를 주름잡은 춘추 5패 즉, 제, 진, 초, 오, 월에 속하게 된 것이다.

순우곤은 성이 순우이고 이름은 곤이다. 그는 익살과 언변에 뛰어났지만 본래 천한 신분이었고 정통학문을 한 것도 아니었다. 키도 작을 뿐 아니라 제나라에는 데릴사위로 들어온 처지였다. 그럼에도 넘치는 기지와 지략으로 제후와 군주를 섬겨 전국책과 사기의 골계열전에 대표인물로 수록된 뛰어난 인물이었다.

견토지쟁을 통해 우리는 순우곤의 지혜를 배우게 된다.

순우곤은 견토지쟁의 예를 들어 현실을 직시하고 정세를 정확하게 판단하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점을 일깨운다. 토끼를 쫓아가는 개가 자신의 발 빠름만을 과신하고 토끼의 발 빠름은 생각하지 않은 것, 산에 사는 토끼가 도망치기 좋은 지형지세란 점을 간과한 것, 밭 농사짓는 농부가 자신들을 노리고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 등을 짚어주고 있는 것이다.

보수정권인 이명박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극에 달하고 있다. 무능, 부패, 부도덕 등으로 대표되는 이명박 정권의 탄생은 부분적으로 진보의 분열과 갈등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견토지쟁 하는 바람에 서로 힘과 지혜를 모으지 못한 것이다.

야권연대를 위해 국민참여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이 날밤을 새며 대화와 토론을 하고 있다. 시민사회도 가세하고 있다. 민주당도 야권통합 대열에 합류했지만 기득권 고수와 진정성 결여로 민주당까지를 포함하는 대통합은 쉬워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진보세력의 집권을 위해서는 야권통합이 시대적 과제란 점이다. 다만 이를 위해 진정성과 기득권 포기라는 두 가지 자세를 견지하며, 서로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함은 자명하다. 작은 힘을 갖고 견토지쟁하면 결국 화를 자초할 수밖에 없다.

더불어 약자들의 연대와 협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고 힘을 모아야 한다. 한국사회의 보수화와 양극화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치, 사회, 경제 영역에 있어 약자들의 협력과 연대가 절박하다. 특히 진보정당과 정파들의 연대와 협력 없이는 보수 세력의 집권을 저지하기란 쉽지 않다.

또한 지혜롭게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 순우곤은 뭍 신하들이 입을 닫고 있는 상황에서, 왕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견토지쟁의 우를 범하지 않도록 진언했다.

말 한마디 잘못하면 목을 내놓아야 할 판에 왕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지혜로운 혀로 왕을 이해시키고 설득했다. 어쩌면 한국 사회에서 진보가 가져야 할 미덕 가운데 하나가 부드러움과 상대에 대한 넉넉한 이해심, 배려가 아닐까 한다.

오늘도 세상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나는 진보라 하면서 견토지쟁으로 진보의 합창을 망치지나 않는지, 진보의 미래를 말하면서 나만 옳다는 오류에 갇혀있지 않은지 하루 세 번 자신을 돌아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