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일어나 우연히 상자 속에 갈무리해 두었던 깊은 침묵은 아무도 살 수 없는 분열된 머릿속에 갇힌 존재였고, 꿈 언저리에서 거칠 것 없는 말들을 쏟아 부었다. 출렁이는 물결 위에 그림자처럼 떠 있는 그 기운은 눈 내리는 호수처럼 차가웠고, 한 여름의 불타는 열기처럼 뜨거웠다.
침묵과 공허로 채워진 보잘 것 없는 우주였다고 생각하면 그건 오산이다. 우주는 움직임과 친근함, 동맹관계, 장엄한 화려함, 찰나의 기쁨들, 그리고 맹렬하게 저 높은 곳을 향해 솟구치는 관성들로 가득 찬 역동적인 우주였다.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이리저리 움직인다. 침묵을 무거움이라 생각 한 건 잘못이었다. 세상이라는 무거운 짐에 맞서 가볍게 균형을 잡아 주는 중력이었다. 새벽이 되면 아침의 괴물들은 기지개를 켜며 하품을 하고, 잔잔한 호수면을 깨뜨린다는 건 사물들의 온전한 정신을 깨닫는 것이다. 꿈은 빗속의 천둥처럼 내리친다. 우리의 절망은 굶주린 독수리들처럼 하늘을 채울 수 있다. 그것은 거대한 허무이고, 저 깊은 땅 속의 균열이다. 한결같아야 할 행동은 아래위로 일정함이 없고, 엎치락뒤치락 동일하지 않다. 사발을 엎어 놓은 것처럼 안정되고, 뿌리를 깊이 박고 있듯 견고하여, 사물이나 사람에 의해 흔들리거나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그 본성의 참모습을 지킬 수 있으면, 참으로 즐겁지 않겠는가. 나의 기운을 막는 것은 공기가 통하지 않음과 같은 원리다. 상대방은 나의 따스한 공기를 향해 다가오는 것이고, 호흡을 통하여 살아가게 된다. 서로 바탕이 되어 의지하는 것이 경계 따라 서로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가를 발견해야 한다. 감정에 끌려 마음을 거느리지 못하면 조절력이 떨어지게 된다. 이치에 어긋남이 불합리라고 했던가? 아무런 생각 없이 하면 일의 순서가 뒤바뀌니 상황전도가 된다. 만물의 변태가 형태에 처한 사람에 따라서 길한 일도 흉이 되는 것이니 묶일 것이 없어 보인다. 이렇듯 이러한 이치를 모르고 살면 바쁘고 얽매여서 생각이 좁고 초조하기만 할 것이다. 세상에 엽기적인 일이 참 많지만 가장 엽기적인 일은 엽기적인 일을 엽기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다. 자기가 믿는 것을 믿지 않으면 선의의 인간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자기와 똑같이 생각하지 않는 모두에게 냉혹한 저주를 내리는 불관용의 전형에는, 부족한 실력으로 열심히만 하는 그 조직과 사회가 그리 밝게 보이지만은 않는다.
인구 중 65%가 가톨릭이고, 2%가 개신교도로 구성원의 다수가 하느님을 믿는 프랑스는 잘 사는 나라에 속한다. 그들이 가장 존경했던 아베 피에르 신부는 “사람을 굳이 둘로 나누어야 한다면 믿는 사람과 믿지 않은 사람으로 나누어지는 게 아니라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누어진다”고 말했다. 몰상식은 불관용을 낳고, 불관용은 제어되지 않을 때 거침없이 폭력으로 나아간다. 이 사회에서는 차이를 용인하지 않는 몰상식이 용인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 볼테르의 말처럼 “우리들의 부싯돌은 부딪혀야 빛이 난다.” 서로 다른 견해가 표현되어 부딪힐 때 진리가 스스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나와 다른 견해를 다르다는 이유로 없애려고 하는 것은 내 견해의 정당성을 밝히기 위해서도 옳지 못한 행위이다. 그러나 사회 구성원들의 성찰 이성이 성숙되지 않고, 긍정적 가치를 공유하지 못할 때 다름의 관계는 부정하는 관계로만 설정하게 된다.
공익과 진실이라는 목표를 놓고 서로 다른 의견이 합리적 논거를 통해 경쟁하는 대신, 서로가 서로를 극복해야 하는 부정의 관계로 설정되는 것이다. 상대방을 용인하는 경쟁대상은 설 자리가 없고, 내 편이 아닌 모든 사람이 극복 대상이 된다. 다름이 경쟁 대상이 되지 않고, 오직 극복대상으로 되는 사회, 이런 사회에서 약자와 소수자는 항시 인권침해에 대상이 될 위험에 처하기 십상이다. 17세기 인문주의자인 바나주 드 보발은 “견해의 대립을 통해 이성을 눈뜨게 하지 않으면 인간을 오류와 무지로 몰아가는 자연적 성향이 지체 없이 진리를 이기게 된다”고 했다. 우리 사회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아닐 수 없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