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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코드

김영주
익산시 사회복지협의회장
사단법인 삼동인터내셔널 이사장

우리의 삶의 여정엔 무수한 시비가 따라붙는다. 아침 일어나면서부터 저녁 잠자리에 들 때까지 시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옛날에는 조그만 시비엔 서로 ‘됐습니다’ 하고 지나갔지만 요즘 세상엔 어림도 없다. 아주 작은 시비에도 서로 따지고 ‘법대로 하자’로 간다. 왜 그럴까. 그만큼 세상이 삭막해졌기 때문이다. 1도 손해를 안 보려는 이기심이 온몸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법대로 하자는 건 최후의 방법이라는 속설이 무색할 뿐이다.

어느 단체나 사회건 법이 만들어져 있다. 그것은 권리를 보호하고 분쟁을 해결하고 예방하기 위함일 것이다. 그러나 그의 목적은 사회 구성원 다수의 행복과 이익이 실현되는 것이다.

종교도 그렇다. 기독교 불교를 비롯해 각 종교도 계율이 있다. 왜 그럴까? 이 세상은 혼자가 아니기 때문이 아닐까. 종교도 그 구성원들이 서로 비벼대고 살아가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질서가 필요하다.

그런데 예수는 고대 유대인들에 주었던 모세의 율법 613개에 또 하나의 계율을 추가했다. “원수를 사랑하라” (마태복음 5장)

참으로 마음이 뻥 뚫리고 신선한 말씀이다. 그런데 그것이 가능할까? 이 세상에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1도 손해를 안 보려는 세상 사람들에겐 이해하기가 좀 어렵다. 왜? 원수는 원수니까. 내 뺨을 때린 사람을 용서할 수 있을까? 내 가족에게 피해를 준 사람을 용서할 수가 있을까? 솔직히 말해 너무 어려운 말씀이다. 그런데도 예수는 시끄러운 소리 말고 원수를 사랑하라고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원수는 원수니까. 더 미워하지 못해 오히려 오장육부(五臟六腑)가 상하는데, 그런 원수를 사랑하라니. 미치고 팔짝 뛸 일이 아닌가.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자. 예수가 누군가? 별 볼일도 없는 사람이라면 웃어넘길 일이지만, 예수님은 짐승이 거처하는 마구간에서 태어나시고, 구약성서에 한 번도 등장한 적이 없는 시골 변방 나사렛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시고, 가난한 사람들의 배고픔을 함께 아파하며, 외세의 폭정과 착취에 시달리고 핍박받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셨던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성자가 아닌가. 그렇다면 거기에 담긴 말씀을 궁구해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자.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에는 무슨 뜻이 담겨 있을까? 여기에는 ‘마음치유’라는 비밀코드가 숨겨져 있다. 예수는 그 코드의 버튼을 누르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버튼 누르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고, 왜 눌어야 하는지도 모르고 있음이다.

고대 바빌로니아 제1왕조의 제6대 왕인 함무라비왕(재위 BC 1792∼BC 1750)이 그의 만년인 BC 1750년경에 만든 ‘함무라비 법전’이 있었다. 예수가 태어나기 1700년 전에 생겨난 법이다. 이 법이 메소포타미아를 포함한 서아시아 일대, 그러니까 근동 지역에서 통용됐었다. 예수 당시에도 통용이 됐으니까, 무려 1700년 동안 적용되던 형벌법이다. 이 함무라비 법전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이 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사람들은 내가 상처받은 그대로 돌려줘야 직성이 풀린다. 때로는 내가 받은 상처보다 더 갚아줘야 속이 후련해한다.

2008년 한국영화에서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곽경택, 안권태 공동 연출, 한석규, 차승원 주연의 복수의 영화가 흥행했었다.

자신의 자존심을 건드린 상대는 지구 끝까지라도 따라붙어 끝장을 보고야 마는 지독하고 집요한 캐릭터의 전설적인 형사 한석규와, 냉철한 두뇌와 대담한 행동력을 겸비한 천재적 범죄자 차승원이 열연한 영화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는 받은 대로 갚아준다는 것이다. 내가 상대방에게 다섯 대 때렸으면, 상대방도 나에게 다섯 대 때리게 하는 식인 것이다.

인생을 살다 보면 사람마다 원수(怨讐) 하나씩은 다 있다. 그래서 원수만 생각하면 화가 난다. 기분이 불쾌해진다. 원수를 미워할 때 우리는 마음속에서 화살을 쏜다. 원수를 향해 화살을 쏘고 독기를 뿜는다. 그 화살과 그 독기가 날아가서 원수의 가슴에 꽂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자. 원수를 떠올리면 저절로 내 마음에서 독기가 올라온다. 그럼 그 독기가 가장 먼저 어디를 적실까?” 내 마음이다. 내 마음을 먼저 적시는 거다. 그러니까 그 독기의 1차 희생자는 원수가 아니라 나 자신이 된다. 나를 먼저 적신 뒤에 독기가 원수를 향해서 날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 독기가 원수에게 닿을 때보다, 닿지 않을 때가 훨씬 더 많다. 생각으로 미워하는 거니까. 독기가 원수를 때리지 못할 때도, 나 자신은 때리게 돼 있다.

원수를 더 많이 떠올리고, 더 많이 미워할수록 어떻게 될까? 내 가슴에 독화살이 꽂히는 거다. 내 가슴에 독화살이 꽂히면 어떻게 될까? 내 오장육부가 먼저 망가진다. 내가 먼저 다치는 거다. 그래서 예수는 원수를 사랑하고 감사하라고 하신 거다.

사랑은 천국의 마음으로 들어가기 위한 일종의 티켓이다. 다시 말하면 ‘천국의 열쇠’이다. 그러니까 사랑과 감사의 궁극적인 목표는 단순히 원수를 사랑하는 게 아니다. 그걸 통해서 내 마음의 독기를 없애라는 거다. 내 마음의 흉터를 지우라는 거다. 그래야 내 마음과 하늘 마음이 통하게 되니까.
그래서 예수는 ‘원수를 사랑하라’ 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