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염이 석자라도 먹어야 양반이란 말은 음식이 중요하다는 걸 뜻하고 있다. 양반이란 사람에 대한 존칭인데 비록 수염이 석자나 되는 품위 있는 자라 할지언정 오로지 먹어서 배가 부른 후에야 가히 존귀하고 귀중함을 지닐 수 있는 것이다」라는 뜻이다.
아무리 인덕(仁德)을 지닌 자라 할지라도 의식주(衣食住)가 해결되지 않으면 역시 불안해 하고 언젠가는 그 인덕을 저버리기가 쉽다. 의식주란 인간의 생활에 필요한 정도가 아니라 생존 그 자체에 달린 문제이니 말이다.
우리 속언에 「금강산도 식후경(食後景)」이니「새남터를 나가도 먹어야 한다」는 말들이 있는데 이는 아무리 좋은 것이 있거나 무슨 일을 당하든지 든든히 먹고 배가 부른 뒤에라야 좋은 줄도 안다는 뜻이다.
사실 자신의 배가 부르면 남 부러울 것이 없다. 내 배 부르니 평양감사가 조카같다는 속언이 아로 이런 점을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인간은 하나의 생물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생물학적 욕구를 충족시켜야 한다. 사람이 빵만으로 사는 존재는 아니지만 빵 없이는 절대로 살아갈 수가 없다. 식(食)이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가치요, 제일차적인 의의(意義)이기 때문이다.
「의식(衣食)이 족해야 예절을 안다」고 고인은 말했다. 이 말은 사람이 의식이 넉넉해야 체면도 차리고 도덕도 실천하고 품위도 지키고 인간다운 면목을 갖출 수 있다는 얘기다.
여기서의 「배가 부르다」는 말은 단순히 먹는 행위 그 자체만을 뜻하는 것이 아닌, 전반적인 부(富)의 의미로 현대적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옛날의 선비들은 청빈을 강조했다. 하지만 오늘날 이 청빈의 윤리는 설득력과 호소력이 약해졌다. 돈이 많으면 교만해지기 쉽지만 반대로 또 돈이 없으면 더욱 비굴해지기 쉽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오늘날 우리는 청빈의 도 보다는 청부(淸富)와 정재(淨財)의 도를 추구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현대의 부에 대한 올바른 윤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義)보다도 이(利)가 존중되고 인격보다도 돈을 앞세울 때 목적과 수단의 가치 질서가 도착되는 커다란 비극이 생김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어디까지나 부 그자체에도 올바른 목적의식과 철학이 필요함은 그 때문이다.
결국 민생안정(民生安定)이라는 것이 경국제민(經國濟民)의 근본이 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렇기에 주민에게 빵을 주지 못하는 정치와 올바른 부의 균배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정치는 아무리 아름다운 이념과 사상을 내세워도 무지개처럼 허황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