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광대학교 경찰행정학부 교수, 법학박사 / 장규원

진리란…

진리(眞理)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진리는 영원하다고 한다. 그럴까? 아니 과연 이 세상에 영원불멸한 것이 있는가?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은 없다는 것이 맞지 않을까? 그렇게 따지다 보면 영원불멸한 것은 없다는 것이 곧 진리일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르게 생각해본다면 불멸이기에, 결국 돌고 도는 것이 영원한 진리다.

영원하기에 서두를 까닭이 없다. 모든 일상적인 생각을 비우고 고요히 앉아 우주의 실상을 꿰뚫어 보자. 이것이 묵조선(默照禪)이 아니던가? 그런 영원성에 묻히다보면 그것이 곧 각(覺)이요 오(悟)이니 깨우침이 아니겠는가?

바쁘게 돌아가는 오늘날 언제 그렇게 한가하게 우주의 흐름이나 꿰뚫어보겠다고, 사물의 실상이나 관조하겠다고, 영원한 진리가 있나 없나를 따지고나 있을 시간이 어디 있는가? 영원한 고전인 <도덕경>의 문구를 놓고 맘껏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보니 머리가 빙빙 돌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근본적인 진리를 잊은 채 엄벙덤벙 살아가면 아무리 설치고 부산하게 일을 펼쳐도 그것은 결국 허망한 것이라고 도덕경은 경고한다(不知常 妄作凶). 시간이 남아돌아서가 아니다. 없는 시간 쪼개어 헬스클럽에서 몸을 다지듯, 삶을 삶답게 살려면 필연적으로 영원한 진리라는 것이 있나를, 있다면 무엇인가를 궁구하여야 한다.

영원한 진리를 알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된다는 것일까? 도덕경은 너그러워진다고 한다(知常容). 돌고 도는 세상의 이치를 훤히 알고 있으니 너그러워질 수밖에 더 있겠는가. 옹고집이나 독단은 무지나 단견이나 편견에서 나온다. 진리를 꾀한다면 자연스레 큰 사람이 된다.

영원한 진리는 그렇다면 어떤 모습일까? 단순하고 평범하다고 한다. 담백하여 별 맛이 없단다(淡乎其無味). 배고프면 먹고, 먹고 나면 졸리는 것이고, 졸리면 자는 것이다. 단순하고 평범한 속에 숨 쉬고 있기에 진리는 쉬이 찾을 수 없는가 보다. 그러나 진리는 알고나면 다디달다.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나이다.”(시편 119:103) 궁구하자. 진리가 무엇인가를…

소통의 길

오늘날을 살아가려면 다른 사람의 생각이 내 생각과 같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야 한다. 하나의 지구촌이 되고 온 세계가 인터넷의 그물망으로 촘촘하게 엮어진 지금, 우리는 서로 소통할 수 있지만 같아질 수는 없다. 여기에서 집단지성의 중요성이 높아진다.

‘어디에나 분포하며, 지속적으로 가치 부여되고, 실시간으로 조정되며, 실제로 동원될 수 있는 지성’을 일컬어 집단지성(集團知性, collective inteligence)이라 한다. 다양한 관점과 가치관이 공존하면서 공통의 주제를 논의하는 자유로운 마당을 여는 열린 지성이다. 독창성과 창의성이 마음껏 펼치는 공간이다. 막힘이 없다.

이러한 집단지성, 열린 지성과는 달리 집단의식(集團意識)은 하나의 구심점으로 모든 가치를 모은다. 집단 내의 어느 개인이나 핵심 그룹이 진리를 독점한다. 집단 내의 의사소통을 방해해 한쪽으로 쏠린 의식을 꾀하려고 한다. 그래서 소통하는 집단지성은 수평으로 뻗어나가는 뿌리줄기와 같고, 집단의식은 수직으로 자라며 위계의 질서를 이루는 나무에 비유하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인류 지성의 획기적 전환은 집단지성, 열린 지성에 있었다. 과거 지식 경계를 과감하게 허물고 새로운 지식 추구의 노력으로 역사는 발전해 왔다.

거창하게 문명사(文明史)의 관점에서 오늘의 시대를 구분하고 논한다면, 지금은 누가 뭐라해도 정보시대이다. 옛날도 나름의 정보시대였겠지만 오늘에 비할 바는 아니다. 높은 산봉우리에 횃불을 피워, 연기를 올려 소식을 전하던 봉화대와 단축키로 쿡 눌러 바로 연락이 가능한 스마트폰과는 비교할 수 없다. 정보시대는 단일한 집단의식의 시대가 끝나고 다양한 생각이 다양한 지성이 어울리는 집단지성의 시대가 열렸다는 것을 말한다.

《여씨춘추》(呂氏春秋)란 책이 있다. 중국 진(秦) 나라 시절 여불위(呂不韋)라는 사람이 편찬했다. 여불위는 본래 장사꾼이다. 뛰어난 책략과 정치력으로 진시황 아버지인 자초(子楚)를 왕으로 추대하고, 자신은 진나라의 재상에까지 오른다. 그는 변방에 치우친 진나라가 다른 나라들보다 학문이 뒤떨어졌음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많은 학자들을 후하게 초빙한다. 그래 그의 주위에는 3천 명에 달하는 인재들이 모였다.

이렇게 편찬한 책을 수도 셴양(咸陽)의 저자거리에 내 걸고, 책의 내용을 한 글자라도 더하거나 빼는 자에게 상금을 준다고 했다. 여불위는 그들로 하여금 각자 아는 바를 기록하게 하고, 그 내용을 집대성해 여씨춘추를 편찬한 것이다. 그 많은 돈을 무덤에 수직으로 가져가지 아니하고, 온 세상에 수평으로 펼쳐버렸다.

누구나 여씨춘추가 게시된 장소를 찾아와 요샛말로 댓글을 붙일 수 있고, 선택된 댓글이 반영되어 내용이 끊임없이 조정될 가능성을 열어 놓은 것이다. 이렇게 완성한 여씨춘추는 제자백가의 여러 학설은 물론 천문, 역법, 수리, 기술 등의 성과들이 총망라되었다. 오늘날 위키 백과(Wikipedia)를 떠오르게 한다. 진리가 어느 한 두 사람에 독점되지 않았으며, 열린 지성의 마당에 참여한 사람들이 함께 진리를 이야기한 것이다.

열린 지성, 집단지성 또한 나름의 문제는 분명히 있다. 외우고 있는 전화번호가 손가락으로 꼽힐 정도이고, 암산한 값을 확신하지 못해 계산기로 다시 두들겨보고, 길을 찾기 위해서는 내비게이션이 필요하다. 정보시대에 디지털 기기에 지나치게 의존한 나머지 우리는 멍청해진다. 기억력과 계산 능력이 예전 같지 않은 것이다.

이에 대하여 린다 스톤(Linda Stone)이란 사람은 ‘끊임없는 작은 집중’(continuos parial attention)의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고 한다. 이제 정보는 기억하는 것이 아니고 찾는 것이 되었다. 곧 뇌의 능력은 점점 기억하는 뇌가 아닌 필요한 정보를 빨리 찾는 뇌로 바뀌어가고 있는 것이다. 집단지성의 현상은 이러한 전이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몇몇 정보보다는 (내가 이 분야 전문가라고 치더라도) 다른 사람이 갖고 있는 모든 정보를 모아놓은 것이 정보로써 훨씬 더 가치가 있는 듯하다. 나만의 정보를 잘 기억하는 사람보다는 여기 저기 놓여 있는 정보를 효과적으로 잘 찾는 사람의 능력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사회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진리의 길

전통이니, 관습이니, 상식이니, 원칙이니, ‘그런 법'이라느니, 뭐니 뭐니 해서 움직일 수 없는 만고불변의 진리처럼, 숙명처럼 믿어오던 것을, 떠받들던 것을 이제 당연한 것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다시 한 번 두드려보는 마음, 뒤집어보는 태도, 이것이 곧 참된 진리, 실재의 더욱 깊은 더욱 높은 차원을 향한 열린 마음이라 할 것이다.

모든 것을 다 당연하다고, 또는 다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만 여기며 살 수는 없다. 쉰밥을 먹으면 배탈이 난다는 것을 꼭 먹어보고 알아야 하겠는가.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야 한다며 그 하나하나 두드리며 어물쩍거리다가는 해가 지기 전에 어찌 그 개울을 다 건널 수 있겠는가.

진리를 꾀한다는 것은 산에 오르는 것과도 같다. 산에 오르기 전에는 내 눈에 들어오는 몇 그루의 나무와 풀만이 전부인 줄 알고 그것만을 주장하지만, 점점 높이 올라가면 갈수록 시야는 점점 넓어져서 저 너머 강이 있다는 것과 호수가 있는 것과 더 멀리 바다가 있는 것도 섬이 있는 것까지도 알게 된다.

시간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시각에서 어떤 시각까지의 사이라고 한다. 우리의 시간이 모두 다르다 하여도 엄연히 시간은 멈추지 아니하고 흘러 누구엔가는 끝으로, 다른 누구에게는 시작으로 자리할 것이다. 높은 산을 올라가 바다를 보고자 한다면 여유롭게 준비하고 소나무의 기상을 닮아버린 가사어(袈裟魚)와 같이 올곧게 생각하며 힘써 실천하는 모습을 갖춰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