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와 8년 터울인 9 살 된 늦둥이가 있다 보니 어린이날에서 자유롭지 못할 처지다. 다행히 위에 언니들이 있어 아이가 외롭지는 않지만 이번 어린이날도 우리가 막내아이 눈높이에 맞추느라 하루를 아이에게 투자해야 할 판이다.

 지난 해 어린이날을 맞아 아내가 무심코 던진 말이 떠오른다. “어린이날은 없어도 된다”는 것이다. 차라리 이제는 어버이날을 쉬는 날로 해야 옳다는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참 타당한 생각인 것 같다. 사실 아이들과 하루 한 날 떨어져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아이들한테 소홀히 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굳이 이런 날을 정하여 오늘 하루만큼은 아이들한테 봉사하는 날이라고 쉬게 한다는 것이 괜한 환상을 심어줄 수도 있다.

어린이날은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자 매년 5월 5일을 법정 공휴일로 정했는데 소파(小波) 방정환(方定煥)을 중심으로 어린이들에게 민족의식을 불어넣고자 하는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기 시작해 1923년 5월 1일, 색동회를 중심으로 어린이날을 공포하고 기념행사를 치름으로써 비로소 어린이날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1927년부터 5월 첫째 일요일로 날짜를 바꾸어 계속 행사를 치르다가 1939년 일제의 억압으로 중단된 뒤 1946년 다시 5월 5일을 어린이날로 정하였다. 1957년 대한민국 어린이헌장을 선포하고, 1970년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대통령령 5037호)에 따라 공휴일로 정해진 이래 오늘에 이른다.

많은 어린이들이 최소한 그날만큼은 부모들에게 많은 대접을 받고 있을 때 음지에서 어렵고 소외되어있는 어린이들을 어떻게 치유해야 할까.또한 가정에서도 남모르게 고통에 처해있는 어린이들이 허다하다.

몇 해 전 미국 플로리다주의 한 부부가 입양아를 새장 모양의 우리에 가둬 키워오다 이웃주민의 신고로 경찰에 체포됐다. 비정한 양부모 밑에서 감금생활을 해온 이 17세 소년은 구조될 때 키와 몸무게가 10세 미만 어린이 수준이었다고 한다. 소년의 발육이 이 수준에서 멈췄다면 가혹행위의 강도와 기간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간다.

우리나라에서도 초등학교 6학년 여자 어린이가 10여 일간 방안에 감금된 채 어머니의 체벌을 받다가 탈진해 숨진 사건도 있었다. 말을 잘 듣지 않고 손버릇도 나쁘다는 것이 어머니가 어린 딸을 감금·폭행하고 음식도 제대로 주지 않은 이유였다. 이런 행태도 자식에게 치켜든 ‘엄한 사랑의 매’가 불행한 사태로 이어진 것일까.

이뿐인가. 이른바 ‘나영이 사건’ 으로 어린이 성폭력으로 세상을 들끓게 했던 일도 있었고 모 방송국에서는 ‘SOS24시’라는 프로그램에서도 아이들이 학대당하는 것이 심심치 않게 고발되고 있다.

이런 소식을 접한 일반인들은 “어떻게 인간의 탈을 쓰고...”라며 혀를 끌끌 찼을 것이다. 그러나 사건의 충격은 이내 기억 속에서 지워졌을 것이고 통상 남의 일로 여기기 십상이다.
그러나 유형은 다를지라도 일반인의 통념을 깨는 아동학대가 우리나라 보통의 가정에서도 비일비재한 것이 현실이다. 아동학대행위를 교육적 체벌 정도로 여겨 심각하게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언론에 보도된 지난달의 아동학대 사례만 열거해도 이런데, 세인의 관심거리조차 되지 않고 묻히는 사건들은 얼마나 많을 것인가. 이것이 엄연히 존재하는 한국사회의 그늘진 단면이다.
조사에 의하면 아동학대 행위자의 80% 이상이 부모이고, 이들 대부분은 지극히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아동학대가 결손가정이나 극빈층에서 주로 발생할 것이라는‘상식’을 벗어난 통계다.

요즘은 두 남매도 많다며 외톨이도 많고 아예 아이들 두지 않으려는 젊은 층도 많다
중학교 정도만 되어도 벌써부터 부모와 어울리는 것 보다 자기친구 또래와 어울리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듯이 우리 또한 부모와 떨어져 사는 사람이 다반사일 것이다.
요즘 시대는, 젊은 세대는 먹고살기 바빠서 그렇고 부모세대는 자식들한테 신세지지 않으려는 마음에 자기중심 적에서 더욱 핵가족화 되지 않았는가.
양로원에다 복지회관에서 소일하는 부모를 생각해보자. 자식들도 각자의 생활이 바쁘다는 데는 도리가 없다. 하지만 매일 같이 자기 자식한테 투자하는 마음을 부모한테 일부라도 한다면 어떨까. 매일 같이 집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에게 놀아주라고 공휴일을 만들어주기 보다는 바쁜 탓에 멀리 떨어져있고 찾아뵙기 쉽지 않은 부모님에게 가서 안부도 묻고 정성의 마음을 드리는 시간을 주고자 어버이날을 공휴일로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요즘 또한 부모를 적절한 시점에 요양시설 등으로 보내는 자식이 효도하는 자식이라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어버이날에도 바쁜 일상 때문에 그마저 그냥 넘어가는 사람이 수두록하다.

올해 88회 어린이날이 다가온다. 해마다 5월이 되면 어린이 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까지 줄줄이 이어져 본래 이 날을 선정한 취지와는 다르게 전 국민이 선물 고르기에 모두 바쁘다.
금지옥엽(金枝玉葉)같은 자식사랑은 365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린이날 사흘 뒤에 오는 어버이날이 왠지 쓸쓸하고 한적한 느낌이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의 의미가 바뀐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