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사장 / 김경원

자연과 인간이 만나 문화를 낳는다. 우리의 문화유산이 우리 땅과 민족의 숨결을 얼마나 아름답게 담아 왔는가. 또 얼마나 진실한 멋과 맛에 가득 차 있는지, 우리의 삶과 문화유산에 대한 넉넉한 사랑과 밝은 눈길로 우리문화에 눈을 뜨는 광명의 순간을 가져 보는것은 어떨까. 우리 미술과 미의식 그리고 건축물, 불상과 석탑, 금속공예와 청자, 회화는 물론 장독대와 온돌방. 나아가 하늘과 땅, 바람과 산은 우리의 자연에 서려있는 아름다움과 소박함 그리고 그 모든 미와 미의식을 만나기 위해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한다.

매스미디어의 세례를 받고 사는 현대인들 그 중에서도 특히 청소년들은  매스미디어가 초단위로 쏟아내는 대중문화를 만끽하며 지낸다.

훈민정음을 공부할 때도 귀에 꽃은 이어폰에서는 하드락이 울리고, 영어 단어를 외울 때도 몸은 힙합의 리듬으로 이리저리 흔들거린다. 당연히 세종대왕이나 에디슨보다 남성아이돌이나 여자걸그룹을 더 좋아한다.

기성세대들이 대중문화에 대한 경멸과 즐김이라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것과는 달리 그들은 무조건적인 열광과 탐닉이라는 일방적인 태도를 갖기에 문제가 된다. 우리 문화안에 담긴 새로운 지식과 참신한 발상에 고개를 끄덕거린다. 유머와 위트가 빛나는 표현에 즐거워하며, 흥미진진한 스토리 전개에 손에 땀을 쥐며 밤을 새운 반면, 정보혁명이라는 거대한 문명사적 태풍 그 핵에는 인터넷이 있다.

사이버 공간상의 정체성 혼란, 게임과 채팅 중독, 상혼이 판치는 인터넷 문화. 무의식적 일탈과 사회적범죄 그리고 인터넷 실명의 허와실 등은 인터넷 시대의 역기능으로 다뤄지는 대목들이다.

이 음란하고 조잡한 쓰레기장. 그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자본주의 상혼이 판치는 암흑으로 변한다고 해도 각자가 현실의 모순을 객관적이고 구조적으로 직시하고, 통찰하는 분별력으로 우뚝 선다면 여전히 인터넷은 정보사회의 희망임을 알 수 있다.

뿌리 깊은 문화와 창조적인 상상력으로 세상을 아름답고 의미 있게 바꿀 수 있기를 바라는 청소년이라면 꼭 “삼국유사”를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정말 소중하다고 깨닫는 순간부터는 몇 번이고 통독과 정독을 하게 된다.

우리는 우리 시대의 “삼국유사”를 쓸 수 있을까. 우리는 우리를 떠나려 한다. 마음이 있는 세상에서는 가끔  세상이 뿌옇게 보일 때가 있다. 어떤 위로와 격려보다 더 살갑고 도탑게 다가오는 그 따뜻한 기억을 되살린다.

시를 읽다보면 어느새 잔잔하게 삶의 욕구를 지펴준다. 시는 밥이 아니다. 하지만 때로는 밥보다 더 사람을 살린다. 문화를 알면 그런 생각이 더 또렷해진다. “걸리버여행기”는 결코 어린이용 동화가 아니다. 소인국과 거인국 말고도 하늘을 나는 섬나라, 라퓨타와 말들의 나라인 휴이넘이 더해진 모두 인간 비판의 신전이다.

이를테면, 소인국 “릴리퍼트”를 그리면서 명분을 중시하면서도 부패와 부조리에 물든 무리들을 비판하고, 거인국 “브롭딩낵”에서 걸리버의 운명이 완전히 뒤바뀐 현실을 통해 소수자가 배려되지 않은 사회, 외형으로 육박하는 폭력의 회로와 심연을 짚어간다.

인간이란 실제로 얼마나 불합리하고 비합리적이냐고 쿡쿡 찔러온다. 어렸을 때 읽은 동화와 비교하며 무엇이 어떻게 생략되고 과장되었는지 살펴본다면 의도와 표현 사이의 관계를 잘 더듬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추운겨울, 시베리아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하늘을 시퍼렇게 떨게 하고 모든 것을 얼어붙게 한다. 문화를 감지하는 시선에서 우리들은 시베리아의 언 땅 속에서 싹트기를 준비하는 씨앗처럼 바로 그렇게 성장하게 될 것이다. 우리 안에 있는 푸른 싹으로 온 세상을 활짝 뒤덮을 그 문화는 다양하고도 중요하다.

세상은 봄을 지나 여름의 문턱인데 슈베르트의 가곡 “겨울 나그네”가 흘러나온다. 성문 앞 우물 곁에 서 있는 보리수, 그 그늘 아래 단꿈을 꾸는 젊은 영혼들. 생의 독한 상처를 끌어안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순결한 한 가지를 내 마음에 두지 않으면 안될것이다. 이제 문화는 가치의 의미를 생산하는 새로운 창조적 영역으로 부상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인간이 도구에 의해 부려지는 도착된 관계를 바로잡는 비판적 영역으로 새롭게 인식되고 있다.

우리의 문화영역은 전반적으로 천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면서, 폭발적인 문화수요를 충족시키는 데 분명한 한계를 보이고 있다. 성찰이 암묵적으로 이어지는 언어만이 가능한 진실의 드러남이 이루어질 것이다. “진실” 그것에 대한 헌신의 표현은 이따금 문학보다 “문학바깥”을 중시할 것을 촉구해간다.

그 시절에 대한 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어떤 순간들을 언어로 채집해서 한 장의  사진처럼 가둬놓으려는 것이 옳은 것과 희망을 향해 가는 곳에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게 된다. 현재성을 오래 생각해 본다.

너무 속도가 빨라 노래 하나도 따라 부르기 힘든 지금, 우리가 붙들 현재란 무엇인가? 그러나 문화정책이 하나의 완벽한 문화를 지향한다면 거기에는 아이러니가 있다.

왜냐하면 현대의 문화상황은 이미 ‘마이클 릴이 대량소통문화로 표현한 것처럼 이전까지의 전통적인 문화유형 구분인 민속,통속,고급의 3분법 또는 민중,통속,대중,고급의 4분법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는 무차별 문화상황의 양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현재 매체상황의 발전이 앞으로 문화에 대한 접근성과 문화의 다양성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문화는 세부적으로 나뉘게 되어있다. 접근성과 다양성, 총체성으로서의 문화, 그러한 미래를 보는 이 순간. 현재 우리의 문화상황에 대하여 좀 더 철저한 이해가 요구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문화의 시대라는 유토피아를 현실화 할 수 있는지 아닌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차피 유토피아나 문화나 예술이 모두 북극성과 같은 개념들이다. 완벽한 현실화라는 별빛을 따라 우리는 그것을 바라고 지향해 갈 뿐이다. 어느 방향에서도 북극성은 북극 위의 한 지점에서 빛나고 있다.

어떤 사회의 문화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한 더 이상 독자적인 한 개인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삶의 세계관과 가치관에 비추어서 한 개인이 되어 가는 것이다. 대중문화에 대한 미학적 접근의 한 경우로 해석무제한주의는 소통의 고통으로서의 역사를 소통의 즐거움으로서의 역사로 바꾸어 놓는다. 무언가 근거 있는 과잉 해석의 즐거움은 일상적인 해석에 비해 몇 곱절의 기쁨을 추가해준다. 근거 있는 모든 과잉 해석은 정당한 것이다.

여전히 밑바탕에 남아 있는 좋은 문화란 무엇인가의 문제영역은 화두가 아닐수 없다. 탁월한 정치적 감각을 갖고서 보통은 변덕스럽게 정책을 바꾸는 나약한 그들은, 사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확실이 알고 있다. 핀처럼 날카롭고, 면도날처럼 정제되어 있으며 바다 거품처럼 믿을 수 없는 걷치레 전략이 아니어야 한다.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후기 자본주의 단계에 들어선 자본의 급격한 팽창과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달로 인한 대중민주주의의 형성과 발전이라고 할수있다. 진지함을 잃은 대중문화는 우중문화가 되기 쉬우며 대중의 문화와 예술 또한 그런 우중을 위한다는 허울 아래 자본의 상업주의 논리를 관철 시키는 자극적인 쾌락으로 전락하기 쉽다.

개인의 삶이 사회와 관련된 것은 당연한 사실이지만 구체적인 역사와 문화에 얼마만큼 맞물렸는가 하는 정도 차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숨은 의미를 끄집어 낼 것인가 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게 되었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멀뚱히 쳐다 볼 것이 아니라, 달을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