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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학박사 김성중
알래스카 눈썰매가 생각나는 계절입니다. 알래스카 원주민들은 수백 년 전부터 개 썰매를 운반수단으로 이용해 왔습니다. 대장 개를 선두로 많은 개들을 일렬로 세우고 썰매에 핸들을 달아 썰매꾼이 썰매를 모는 구조입니다. 대열에서는 대장 개의 줄이 다른 개들보다 더 깁니다. 썰매 개들의 혈관에는 늑대의 야성이 남아 있어서 본능적으로 리더의 자리를 노리며 대장 개에 대한 질투와 시기심이 늘 깔려있다고 합니다. 대장 개의 입장에서는 곤혹스러울 것입니다. 호시탐탐 자기를 노리는 개들에게 뒤돌아서서 반격하고 싶어도 주인이 휘두르는 채찍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앞을 향해 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뒤따르는 개들은 그런 대장 개를 끝없이 추격하면서 그렇게 썰매는 빠르게 전진합니다. 또한, 눈썰매를 끄는 여러 마리의 개 중에서 가장 병약한 개의 줄을 짧게 맵니다. 개들을 빨리 달리게 하고 싶을 때, 짧게 매여 있는 개를 채찍으로 때립니다. 그 병약한 개의 비명이 다른 개들을 더욱 빨리 달리게 합니다. 그 병약한 개가 죽고 나면 나머지 개 중에서 가장 병약한 개가 다시 그 자리에 묶입니다. 화물연대 파업이 일단락됐습니다. 정부의 강공 드라이브에 화물연대가 백기를 들고 항복을 한 형국입니다. 반대로 정부는 전쟁에서 승리한 장수처럼 의기양양한 기세입니다. 이전 정부와 다르게 법과 원칙을 사수했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줬다고 자화자찬까지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뒷맛은 개운치가 않습니다. 국민을 이겼다고, 화물차 운전자들을 상대로 이겼다고 마냥 좋아할 만한 일일까요? 엄밀히 얘기하면 사실 이긴 것도 아닙니다. 화물연대 파업의 원인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면 화물연대 파업 사태를 불러온 근원적 책임이 정부의 정책 실패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화물연대 파업을 가져온 직접적 발단은 ‘안전운임제’입니다. 하지만 상황을 좀 더 자세히 들어다 보면 안전운임제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이 숨어 있습니다. 개인사업자인 화물차주에게 불리한 ‘화물운송업계 운영시스템’이 근본 원인입니다. 윤 대통령은 이들이 "북한의 핵 위협과 마찬가지"라고 했습니다. 사상 처음으로 파업을 재난으로 규정하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설치했습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들의 파업이 "이태원 참사와 똑같이 사회적 재난"이라고 했습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들을 향해 "조폭", "귀족"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윤 대통령은 사문화돼 있던 업무개시명령을 사상 처음 발동했고 대기업들의 갑질과 담합을 막아야 할 공정거래위원회가 전례 없이 나서 이들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곤봉이나 특공대, 헬기, 살수차가 아니라 통례에서 벗어난 법과 행정을 동원한 전방위 진압 작전이었습니다. 보수 언론은 "가장 윤석열다운 순간"이었다고 칭송했습니다. 귀족 조폭들을 때려눕힌 덕분에 지지율이 오른 거라며 자평하고 있습니다. 최장기간 파업에도 화물연대는 최저임금제와 유사한 ‘안전운임제’를 지켜내지 못했습니다. 파업을 철회하자 정부는 기존의 '안전운임제 3년 연장' 약속마저 파기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 ‘안전운임제’도 함께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엄벌을 주장하는 사람은 썰매를 끄는 사람이 아니라 썰매를 모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엄벌이란 병약한 개를 채찍질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썰매를 끄는 사람은 정치인이고 썰매를 모는 사람이 국민일 것입니다. 정치인의 기본자세로 소통과 참여라는 가치관이 전제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소통과 참여는 많은 사람의 잠재력을 높여 주고 사회에 활력을 불러오지만, 엄벌과 공포는 사회를 경직시킵니다. 소통과 참여구조는 자칫 썰매 위의 자리가 침범될 수 있다는 불안감과 사회란 원래 썰매의 위아래가 엄연히 구분되어있는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약한 개를 채찍으로 때려 왔습니다. 법과 정의 그리고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강자의 위선입니다. 정치는 서로 다름을 전제로 하는 인간 활동 중 하나입니다. 사회적 갈등을 완화하려는 게 아니라 어느 한 편에서 상대방에게 굴종을 강요하는 행위는 법치주의의 기본 이상과도 배치됩니다. 강자들도 법 앞에서 평등해야 한다는 게 법치주의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채찍보다는 소통과 참여가 그리운 계절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