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중 범죄학박사

1909년 10월,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뒤 순국한 안중근 의사가 거사를 준비하고 죽음을 맞이하던 순간까지 마지막 1년을 그린 영화 <영웅>이 누적 관객수 300만 명을 기록하며 한국영화 박스오피스 상위권을 차지하였습니다.

뮤지컬 '영웅' 역시 공연 중입니다. 영화 덕분에 뮤지컬 공연장을 찾는 일반 관객들도 늘어났다고 합니다. 한국 문화계에 주목할 만한 변화입니다.

일본 네티즌들은 영화 ‘영웅’을 두고 “테러리스트 영화”라며 폄하하고 있다고 합니다.

영화 상영 소식이 알려지자 일본의 ‘넷우익’들은 안중근의 의거를 테러 행위로 깎아내리며 영화를 비난하고 있습니다. 현지 커뮤니티 등에는 “테러리스트를 영웅 취급한다.” “테러리스트를 영화화한 한국.” “이란이 오사마 빈 라덴을 영웅시하며 9·11테러 예찬 영화를 만든 것과 같다.” “정부에 항의하자.” 등의 글이 올라와 있습니다.

이외에도 안중근 의사를 아베 전 총리를 사제 총으로 쏴 숨지게 한 사람에 빗대는 글도 다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일본 우익은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로 여깁니다. 2014년 하얼빈역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 개관할 당시 일본 관방장관이 “우리나라의 초대 총리를 살해하고 사형 판결을 받은 테러리스트”라고 말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 조선총독부 통감을 향해 권총 방아쇠를 당긴 서른 살 청년, 그는 저격에 성공한 후 하늘을 향해 '꼬레아 우라'(대한독립만세)를 세 번 외친 후 순순히 체포됐습니다.

하얼빈 총영사관에서 일본 검사와 마주 앉은 안중근은 만국공법을 주장하며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15가지 이유를 막힘없이 말합니다.

하나, 대한의 국모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
둘, 대한의 황제를 폭력으로 폐위시킨 죄
셋, 을사늑약과 정미늑약을 강제로 체결케 한 죄
넷, 무고한 대한의 사람들을 대량 학살한 죄
다섯, 조선의 토지와 광산과 산림을 빼앗은 죄
여섯, 제일은행권 화폐를 강제로 사용하게 한 죄
일곱, 보호를 핑계로 대한의 군대를 강제 무장 해제시킨 죄
여덟, 교과서를 빼앗아 불태우고 교육을 방해한 죄
아홉, 한국인들의 외교권을 빼앗고 유학을 금지한 죄
열, 신문사를 강제로 철폐하고 언론을 장악한 죄
열하나, 대한의 사법권을 동의없이 강제로 장악 유린한 죄
열둘, 정권을 폭력으로 찬탈하고 대한의 독립을 파괴한 죄
열셋, 대한제국이 일본인의 보호를 받고자 원하다며 세계인을 농락한 죄
열넷, 현재 대한이 태평 무사한 것처럼 천황과 세계사람들을 모두 속인 죄
열다섯, 동양의 평화를 철저히 파괴한 죄입니다.

학계에서는 안중근이 만국공법을 주장한 이유를 두 가지로 봅니다.

첫째는 의병이 국제사회에서 정규군으로 공인받기를 원해서입니다. 의병이 정규군이라면 한국 또한 독립국으로서 지위를 인정받아야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그것이 올바른 덕목, 즉 인(仁)의 정신 구현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인'의 덕을 지키면 지금 당장은 손해 볼 수 있으나 멀리 보면 국가 간의 평화를 보장하는 질서로 나아가는 길이다.”라고 그는 확신하였습니다.

안중근은 일제 법정 재판과정에서 자신의 신분을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이라고 밝혔습니다. 하얼빈 거사는 개인적인 원한이 아니라 대한의군 참모 중장의 자격으로 저격했으며 한국의 독립과 동양 평화를 위한 독립전쟁의 일환이었다고 일관되게 진술하였습니다. 
 
2010년 3월, 국방부는 안중근의 장군 예우를 발표하였습니다. 육군은 안중근의 유휘로 알려진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을 슬로건으로 채택하였으며 계룡대 육군본부의 회의실을 '안중근 장군실'로 개명하였습니다.

영웅을 단순한 테러리스트로 간주하는 일본의 우익은 일본이 저지른 침략전쟁의 오류를 제대로 인식하기를 바랍니다. 테러는 파괴와 살인이고 전쟁은 평화와 정의라는 논리가 바로 강자의 위선입니다. 테러가 약자의 전쟁이라면 전쟁은 강자의 테러입니다.

인류 역사에서 강대국의 침략은 끊임없이 반복되어왔습니다. 그런 연유로 수직적 통합을 피한 나라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지금도 긴장을 늦춰선 안 됩니다. 우리 눈에 선명하게 보일 만큼, 곳곳에서 제국주의의 망령이 꿈틀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안중근 장군이 더욱 빛을 발하는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