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애
십 년 전 그 해 봄, 벚꽃이 제 할 일을 다 하고 푸른 잎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을 때였다. 어느 날 아침 우연히 TV를 켜보니 제주도로 가던 여객선이 사고가 나서 배가 침몰하고 수학여행을 가던 학생들이 그 배안에 있다는 뉴스를 듣게 되었다. 순간 나는 심장의 박동수가 빨라지고 있는 것을 느꼈다. 이 나라에 살면서 그동안 무수히 많은 사건과 사고의 소식을 들어왔고 그럴 때마다 솔직히 말해서 이 나라가 재난에 관해서 대처하는 능력만큼은 아직 멀었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안전 불감증이라는 세상에 유례가 없는 사회적 질환도 고스란히 우리의 오명이 될 수밖에 없었다.
뉴스는 하루 종일 이어졌고 아이들의 부모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아이들이 떠난 바닷가에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다가 지쳐 쓰러지기도 했다. 그런데 점점 시간이 흐르고 사고의 내용이 하나씩 밝혀지면서 유가족들은 분노에 치를 떨어야했다. 도대체 이 나라의 재난대응 방식은 정말로 후진국 수준이라고 밖에는 더 이상 표현할 말이 없었다. 배가 침몰하는 상황에서 승객들에게는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방송을 하는가하면 파란지붕에서는 현장의 사진을 보내라는 정말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더 기가 막힌 장면은 내가 굳이 이 소중한 지면을 빌려서 쓰지 않아도 독자들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생때같은 아이들이 다 죽어가는 상황에 올림머리까지 하고 나타나서는 상황파악도 안 되는 말이나 할 것이 아니라 빨리 지시를 내렸으면 한 명이라도 더 구했을 텐데. 머리 따위는 대충 묶고 지체 없이 나와서 컨트롤 타워의 수장답게 행동을 했으면 국민들이 감동을 했을 텐데 말이다.
그렇게 세월호는 소중한 생명들을 싣고 어이없이 바다에 수장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사고가 난 후에도 우리의 기억 속에는 수없이 많은 사건과 사고가 저장되었다. 결국 이 나라는 아무리 대형사고가 나더라도 이다음에 또 같은 결과를 만들어 낸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년이 지나 무능하고 흐트러진 권력 앞에 민중들은 매일 밤 촛불을 들었다. 국내외 전 세계의 외신이 광화문에 집중되었고 그렇게 악어의 눈물은 역사의 단죄를 받았다. 그리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남북 간에 긴장관계가 완화되고 마치 몇 년 안에 통일이라도 이루어질 것 같은 분위기가 되어가는 듯 했으나 아직은 때 이른 기대였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그 사이에 정부는 또다시 바뀌게 되었고 어이없는 대형 참사는 여전히 발생하고 말았다. 왜 하필 이 나라는 참사가 일어날 때마다 그렇게 아까운 청춘들이 목숨을 잃어야 하는 것일까? 세상은 이 나라의 모든 것이 다 부러운 양 따라하면서 한류의 물결이 거침없이 온 세상을 휩쓰는 일들이 지구촌 여기저기에서 나타나고 있지만 정작 이 땅에 발붙이고 사는 우리들은 안전사고에 초동대처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나라에 살고 있다. 죽어간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국민들은 참 많을 것 같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고 그곳에서 부디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라는 말을 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이 렇게 말하고 싶다. 다시 태어난다면 나의 생명과 재산을 오롯이 지켜줄 수 있는 나라에서 태어나라고.
아들이 엄마를 부르며 나타날 때까지 결코 울지 않겠다는 엄마. 죽은 동생을 그리워하며 그림으로 위안을 삼으며 살아온 언니. 딸이 쓰던 방에 유품을 가지런히 모아놓고 아직도 딸이 쓰던 휴대전화를 열어보지 못하는 엄마. 시간은 십 년이 지났지만 그들의 고통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제 나라의 중요한 선거도 끝이 났고 국민의 판단은 여지없이 날카로웠다. 그러나 선거의 판세는 국민의 뜻에 따라 언제든 뒤바뀔 수 있는 것이라서 승패에 희비를 맡길 것이 못된다. 결국은 어떤 집단이 국민을 존중하고 소통하는 정치를 펼치는 가에 따라서 국민은 엄중한 심판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우리들 또한 다시 돌아올 십 년 후에는 우리와 후손들의 미래를 위해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고 자부할 수 있어야한다. 적어도 우리가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국가의 시민으로서의 품위와 태도를 잃지 않았을 때 또다시 다가온 십 년 후에 우리들 스스로의 모습을 뿌듯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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