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숲교회 담임목사

강남웅

몇 년 전, 책을 함께 읽는 목회자 모임에서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를 발제하고 , 『소년이 온다』를 읽을 도서로 강하게 추천했습니다. 발제 이유로 영국 맨부커상 인터내셔널부문을 수상한 작가의 책이며, 추천의 변으로 우리 시대에 한 번쯤은 읽어볼 만한 내용이라고 에둘러서 말했습니다. 군종장교로 소령까지 했던 목사가 이런 책을 추천하면 시선들의 오해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내심 있었기 때문입니다.

『채식주의자』는 어린 시절 폭력의 트라우마로 육식을 거부하며 가족과 갈등을 빚는 여성이 주인공입니다. 여전히 뿌리 깊게 가부장적이고 종종 여성 혐오적인 한국 문화에 대한 저항의 한 형태로, 금식을 통해 동물성을 벗어 던지고 차라리 나무가 되기를 꿈꾸는 내용입니다. 억압받는 여성에 대한 사적인 폭력을 기록한 한강 작가의 대표작인 책입니다. 그런데도 맨부커상 수상작이니 한번 읽어보자는 표현으로 스스로 자기 검열을 한 것이라 기억합니다.

2014년 발표한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는 광주 5.18 민주화운동을, 2012년에 낸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 사건을 다루면서, 국가 폭력이 개인에게 남긴 상처를 서정적인 문체로 형상화한 책입니다. 그 역사적 진실에 개인적으로 아직도 정확하게 다가서지는 못했습니다. 단지 늘 엄중하게 가슴 아픈 역사로 기억하며 빚진 자의 심정으로 살아왔다고 여겼지만, 『소년이 온다』를 소개하며 한 번쯤은 읽어볼 만한 내용이라 연약하게 소개하던 슬픈 기억도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지난 10월 10일 스웨덴 한림원은 한강 작가를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발표하며 "역사의 트라우마에 맞서는 동시에 인간 삶의 연약함을 직시하고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을 선보였다"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습니다. 이러한 노벨문학상 소식에 모처럼 온 국민이 기뻐하고 있습니다. 수상 소식에 책을 사려고 곧장 서점으로 달려간 시민들이 있는가 하면, 온라인서점은 책 주문이 폭주해 사이트가 마비되기도 했습니다.

요즘 지하철에서 책 읽는 사람 찾기가 힘들어졌고 동네서점은 계속 사라져 가는 중이었습니다. 지난해 성인 10명 중 6명은 책을 한 권도 안 읽었다는 문화체육관광부 조사 결과도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이번에 찾아온 독서 열풍 조짐이 일시적 현상으로 그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마침 독서의 계절이 찾아왔고, 이참에 책 읽기 바람이 지속해서 불 수 있도록 지원도 이어져서 스마트폰에 납치됐던 독서의 시간을 되찾아 올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무엇보다 저에게는,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며 인간 삶의 연약함을 직시한 시적 산문”이라는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가 큰 위로가 되고 있습니다. 역사와 시대와의 불화에 지쳐있던, 가슴 속에 꽉 막혔던 응어리가 한 번에 뻥 뚫려진 느낌입니다. 그동안 신학도라는 의복 뒤에 숨어, 군종장교라는 군복에 감추고, 그리고 지난 30년간 하나님의 일을 먼저 생각하는 목회자로 살아가며 애써 마주하지 않으려던 역사적 트라우마와 인간의 연약함에 대해 깊이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한강 작가는 여성이란 성별과 많지 않은 나이, 그리고 겹겹의 차별을 넘어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노벨상을 받은 최초의 한국인이자 아시아 여성이 되었습니다. 아울러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은 한국 문화의 막강한 소프트파워를 다시 한번 입증하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신앙에는 국경이 없지만 신앙인에게는 국경이 있다”라는 격언이 생각납니다. 한국인으로서 모두가 너무나도 기쁘고 참으로 축하할 일입니다.

〈뉴욕타임스〉는 2000년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받은 노벨평화상처럼 이번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도 한반도 분단, 전쟁, 군사독재, 민주화운동 등 한국의 파란만장한 현대사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분석하면서 한강 작가가 꾸준히 광범위한 주제의 폭력을 다뤄왔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인간 존엄이 힘의 논리로 무시되는 순간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사회적 고통에 손 놓지 않고 어떤 세상을 살아가고 만들어야 하는지를 치열한 문제의식으로 쓴 한강의 작품을 통해 광주와 제주의 비극이 세계에 바르게 조명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군에서 전역하면서 고향으로 내려왔습니다. 이곳에서 하나님께 이웃들에게 작은 도움과 따뜻한 동행이 되길 소망하는 마음을 늘 잊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호남과 광주는 차별과 편견을 겪었고, 잔혹한 독재를 견뎌내며 어려운 시기에 한국 민주주의를 지키는 데 중요한 역사적 역할을 했습니다. 한강 작가도 김대중 전 대통령처럼 한국현대사의 고통과 차별을 표현하고 우리가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용기를 보여주기를 응원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강 작가님의 책을 마음 놓고 추천할 기회와 용기를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더욱 강건하길 바랍니다. 애독자로서 기억하며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