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야 뭐라고 하든지 ‘케이크 위에 얹어져 있는 좋아하는 체리만 쏙 집어먹는 행위’를 체리 피킹이라 합니다. 원래는 버찌나무에 매달린 체리 농장 열매 중에 좋은 상품만 골라서 따가는 행위를 말했지만 오늘날 그 의미가 확장되어 '감당하기 어렵거나 별로 중요하다고 여기지 않는 부분은 버리고 자신이 정확하게 원하는 부분만 취하는 행위'를 두루 일컫는 말이 되었으며, 여러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단물만 빨아먹는 기술로’ 그 뜻이 변모해 버린 듯합니다.

물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은 시대와 상관없는 보편적이고 자연스러운 인간의 성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심각한 문제는 이런 성향이 사회의 근간을 위협할 정도로 공적 영역으로 급속히 확산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무엇보다 공적 이익의 보루가 돼야 할 정치와 언론의 체리 피킹 행태는 사회의 갈등과 분노를 부추기고,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에 대한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얼마 전 대통령의 방미성과와 코로나 백신에 대해 정치권은 총체적 진실과는 관계없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부분적 사실만을 내세워 싸움을 벌이며 또 다른 체리 피킹을 부추기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모두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확증편향의 세상인 듯합니다. 많은 이들이 원하는 정보만 자신의 입맛대로 선택적으로 모으거나 필요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서로 상치되는 여러 증거들과 사례들이 앞에 놓여 있을 경우 기존의 내 생각과 관점을 강화시켜주는 것들만을 취사선택하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애써 무시하려 들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내 확신과 편견은 한층 더 강화되고 마는 것은 아닐지, 점차 대화와 소통이 단절되고 서로의 다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가 될까 심각한 우려가 들 때가 많습니다.

언론 또한 양극화 되면서 편향된 시각을 드러내는 게 일상화 된지 오래입니다. 언론들이 자극적인 기사를 쓰기 위해 맘에 들지 않는 일부분으로 전체 뜻을 뒤트는 체리 피킹 수법, ‘악마의 편집’을 서슴지 않기도 합니다. 요즘은 뉴스기사의 제목만 봐도 어느 신문사인지 거의 맞출 수 있을 지경입니다. 그 한가운데는 정치적 양극화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당파적 이익을 위해 편협한 주장과 궤변을 쏟아내는 정치판을 꾸짖고 유권자들이 진실에 다가갈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할 언론이 오히려 체리 피킹에 앞장서고 있는 현실은 더욱 개탄스럽습니다.

물론 폭넓은 표현의 자유나 언론사의 논조를 인정합니다. 그러나 팩트에 대해서만큼은 언론사가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팩트가 의심되거나, 찾아보니 틀렸다면 수정·보완을 요구하고 고치는 것이 신뢰받는 언론의 원칙일 것입니다. 언론이 체리 피킹의 유혹에 쉬 굴복하는 건 미디어 환경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보입니다. 온라인과 SNS 시대에는 ‘장황한 진실’보다 ‘간결한 선동’이 훨씬 더 잘 먹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언론이 대립하는 주장들 속에서 중립적이며 객관적인 시각을 가져야한다는 원칙은 달라질 수 없을 것입니다.

인터넷 세상은 더욱 심각합니다. 쓰레기 가짜뉴스나 허위정보, 사람들의 흥미와 본능을 자극하여 시선을 끄는 황색언론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과거에 믿고 기대를 걸었던 유명인사도 하루아침에 안면몰수하고 거짓정보를 퍼뜨리고 또 이런 가짜뉴스를 대량으로 살포하는 사기기사의 앞잡이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대부분이 명분이나 애국심을 가장하지만 결국 돈 때문임이 확실합니다. 인터넷 클릭 수익을 증가시켜 광고 수익이나 후원금을 편취하고 주목을 끌기위해서 과장되고 자극적인 제목이나 쓰레기 기사를 선동해 오로지 조회 수를 올리기 위한 목적일 뿐입니다.

역사학자인 데이빗 그린버그는 이런 식의 정치권과 언론계 체리피킹이 ‘종말론적 사고’(apocalyptic thinking)를 닮아있다고 비판합니다. 종말론적 사고에 빠지면 최소한의 규범이나 터부조차 사라집니다. 정치는 갈수록 적대적이 되고, 팩트체크의 주체가 돼야 할 언론이 오히려 팩트체크의 대상이 되고 있는 현실은 민주주의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믿습니다. 언론의 책임 방기로 결국 진실에 대한 판단은 뉴스소비자들과 유권자들 몫으로 던져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시사철 체리 피킹이 지속되는 이 시대에 현명한 국민, 깨어있는 시민이 된다는 것은 여간 피곤하고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한복음 8장 31절)는 말씀을 다시 한 번 묵상해 봅니다. 호소력 있는 거짓말들이 결코 어렵게 찾은 진실에 승리하지 못하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것은 우리 각자의 몫입니다. 역사는 지난한 설득과 부단한 투쟁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자리마다 정의와 공평이 강물처럼 흐르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