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학박사

김성중

2000년대 초에 대한민국 검사가 수사 관련 국제회의에 참석하여 면박을 당하는 해프닝이 있었다고 합니다. prosecutor(기소관)이 왜 investigator(수사관) 회의에 참석했냐는 이유였습니다. 세계에서 드물게 기형화된 우리나라 형사사법 절차 덕분이었습니다. 영문이 다른 명함을 따로 만들자는 논의까지 있었다고 하니 한편의 코미디입니다.

주요 선진국은 수사와 기소 업무를 분리하고 있습니다. 원칙적으로 수사는 경찰이, 기소는 검사가 전담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물론, 형사사법 절차의 견제와 균형을 담보하기 위해섭니다. 유형별로는 △수사와 기소를 분리한 미국·영국형 △검사가 제한적으로 수사하는 일본형 △법률상 검사가 수사권과 기소권을 함께 갖지만, 실제 수사는 경찰이 맡는 독일형으로 나뉩니다.

1829년 근대 경찰이 출범한 영국은 당초 수사와 기소를 경찰이 모두 독점했습니다. 하지만 독점의 폐해가 심해지자 1986년 국립기소청(CPS)을 설립하고 수사는 경찰이, 기소와 공소 유지는 검사가 담당하도록 분리했습니다. 2022년 현재, 우리나라 검사가 수사와 기소를 모두 독점하고 있는 상황과는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독일은 검사가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갖고 있어 한국과 외형상 비슷합니다. 하지만 범죄자와 마주치는 어색한 연출을 하는 한국 검사와는 달리, 실제 수사는 경찰이 주로 맡습니다. 독일 검사에겐 우리와는 다르게 수사관조직이 없기 때문입니다. 형사사법 절차의 견제와 균형을 위해서입니다. 놀라운 것은 대한민국의 경우, 검찰 구성원 약 1만 명 중 검찰 수사관은 약 6,000명으로 전체 인력의 60%를 차지합니다.

'수사는 경찰, 기소는 검사'를 틀로 하는 수사권 조정 논의는 제헌헌법이 만들어진 이후 60년 넘게 이어진 해묵은 과제입니다. 1954년 형사소송법을 제정할 당시 제헌국회 속기록을 보면, 엄상섭 의원이나 한격만 검찰총장 등 주도자들은 하나같이 “이론상, 그리고 언젠가는 경찰은 수사, 검사는 기소로 분리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믿을 수 있는 검사에게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부여해야 한다”는 소위 ‘경찰 자질 부족에 따른 시기상조론’을 내세웠습니다. 이 ‘시기상조론’이 지금까지 68년간 지속 되어 왔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검사의 수사권은 검사만의 영장청구권을 헌법에 보장함으로써 우리나라는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됩니다. 유신헌법 이후 국가권력의 거대한 공룡이 탄생하고 말았습니다. 실제로 검사만이 영장신청 주체로 헌법에 들어간 사례는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 같은 영장청구 규정은 1948년 제헌헌법과 1954년 형사소송법에도 존재하지 않았지만, 박정희 유신헌법 이후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검사가 청구 주체로 명시됩니다. 군사정권과 그 정치적 도구로 활용되며 존재감을 키운 검사와의 타협으로 이루어진 결과물입니다.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지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이 생각납니다. 2003년 3월 9일, 노무현 대통령이 평검사들과 공개토론 현장에서 한 말입니다. 이 발언은 지금까지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그 어떤 검사도 70년 가까이 지속 되어 온 자기들만의 전권을 포기하려 하지 않습니다. 제도적인 문제를 자질론, 정치적 음모 등 해괴한 논리로 정당화하려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미국 메릴랜드 주의 멕카시 검사장이 우리나라 언론과 인터뷰에서 한 말입니다. “검사의 기소권은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권력(enormous power)이다. 누군가의 자유를 박탈하고, 그들을 가족들과 분리시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권력을 가진 검사에 대한 직업윤리 교육은 필수적이다.”

‘대한민국 검사의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해야 한다’는 검수완박의 논의는 시작에 불과합니다. 수사권, 기소권, 재판과정에서의 공소 유지권, 형 집행권을 아우르며 형사 사법절차에서 전권을 휘두르는 대한민국 검사에 대한, 보다 폭넓은 견제와 균형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기를 소망합니다.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통 큰 사명감 때문이기도 하지만, 독점된 권력은 반드시 썩기 마련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믿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