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숲교회 담임목사

강남웅

<윤스테이>란 프로그램에서 70대의 한국인 여성배우가 외국인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며 “어라? 저 할머니 영어가 되는데!”하면서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 시대 어르신의 뜻밖의 발견이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그 배우가 <미나리>란 영화로 최고권위의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고 수상소감을 영어로 얘기했다는 말을 듣고 새삼 그 일이 생각났습니다. 그 배우의 이름은 윤여정입니다. 우리 나이로 일흔 넷, 노년의 배우에게서 우리는 뭔가 낯설지만 그래서 더 멋진, 또 그래서 더 반가운 어른의 모습을 찾아내고 있습니다.

영어로 말한 수상소감은 곧바로 윤여정 말투로 번역돼 퍼졌고, 직설적이면서도 친근한 말투를 놓고 사람들은 '휴먼여정체'란 이름까지 붙었습니다. 휴먼여정체란, 직설적인 듯 시원시원하면서 친근한 윤여정 특유의 어투를 휴먼명조체, 휴먼고딕체 등 한글 폰트에 패러디한 것입니다. 예컨대 최근 날씨가 갑자기 더워지자  "어우 나 증말 미쳐. 얘~ 너무 더운 거 아니니?" 이런 식입니다.

친근해서 낯선, 윤여정 배우의 솔직한 말투는 유행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과거 발언까지 조명 받고 있습니다. 그녀의 말투는 늘 겸손함에 유머를 실었고 때로는 권위마저 내려놓습니다. 일흔이 넘어서도 새로운 것에 계속 도전하고 베테랑 배우로서 훈계나 조언보다는 솔직하게 다가가며 공감을 삽니다. 남북통일도 중요하지만 세대 간 소통이 더 시급하다는 윤여정 배우에게, 젊은 세대까지 이미 열광하고 있습니다.

배우 윤여정은 우리가 참으로 오랫동안 브라운관과 스크린에서 만났던 사람입니다. 일반적으로 예쁘고 아름답다는 기준과는 조금 다른 외모, 여성이면서도 허스키한 목소리, 때론 정겹고, 때론 살벌하고, 때론 유머스러운 역할을 모두를 소화해 내던 국민배우 중 한 사람입니다. 마침내 기념비적인 자리에 오른 그녀는 50년 이상을 연기에 매진한 이유에 대해 그야말로 “먹고 살기 위해서”란 말로 대답했습니다. 한국인 최초의 아카데미상 수상자가 자신의 연기를 생계형으로 묘사했다는 점에서, 한 우물을 꾸준히 판 칠십 대의 배우의 연기 원동력이 바로 한국 어머니의 책임감이란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100세 시대, 에이지리스(Ageless) 시대라고 말합니다. 과거와 달리 영양공급도 충분하고 삶이 넉넉해져 수명이 연장되다보니 이제는 칠순잔치도 손님을 초대하기 민망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만큼 복잡한 시대가 되었고 그에 따라 과거보다 더 다양한 문제들로 인해 첨예하게 갈등을 일으키는 시대가 되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더불어 얼마나 오랫동안 젊음과 외모를 유지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아름답게 나이를 들어가는가, 얼마나 멋있게 인격을 숙성시키는 삶을 사는가에 대한 성찰도 요구되고 있습니다. 그 동안 온 세상이 죄다 젊음과 아름다움을 위한 멍석이라 생각되었지만 근래 제대로 주목받지 못한 어르신의 삶과 내면의 이야기들이 다루어지거나 광고모델로 노인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생계형 트렌드가 대세라는 말도 들립니다. 

배우로서 스포트라이트만 받아온 것도 아니었고, 개인적인 삶이 탄탄대로였다고 말하기도 힘들건만 윤 여정 배우의 화법에는 특이점이 있습니다. 말이 짧습니다. 그러나 길게 말하지 않아도 그 안에 하고 싶은 말이 다 담겨있습니다.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자신을 비하하지 않습니다. 쓸 데 없는 말을 하지 않고 정확히 과녁을 맞추는 말을 합니다. 자신의 인생을 있는 그대로 살아내는 담담한 모습이 굴절되지 않고 그대로 그의 연기를 보는 우리에게 전달되었기에 우리가 그녀를 좋아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가정의 달’ 5월을 맞으며 우리 시대의 어르신들을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 라고 물어보십니다. 그리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가는 모두가 나의 가족이라 일깨워 주십니다. 물론 윤여정 배우가 우리의 답안지는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고 있었지만 지금도 오롯이 자신의 삶을 짊어지고 살아가시는 어르신들께 감사하며 그 지혜와 멋짐을 다시금 배우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