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한국예총 익산시회장
김영규 

춥고 꾸무럭한 날씨가 요즈음 우리 사회의 앞날을 보는 것 같아서 더욱 쓸쓸하다. 살벌한 겨울이 온 것이다.

코로나19로 시작된 경자년(2020)도 이제 20여일 후면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니 진정 세월의 빠름과 무상함이 피부에 닿는다.

매일 매시간 일기예보 안내하듯 코로나 신규 확진자의 증감, 지역의 발생내용 발표는 긴장감을 더욱 고조시킨다. 동시에 시도 때도 없이 휴대전화에 전송되는 우리 지역 재난문자는 이제 일상화되었다. 조금은 잠잠하더니 재확산의 추세가 역역하고 심각하게 보인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물리적인 거리두기와 비대면은 기본이며 마스크 착용은 필수가 된 지 오래되었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생활 방식과 형태가 우리의 일상을 변화시키고 있다. ‘코로나 블루(코로나로 인한 우울증)’ ‘언택트(비대면)’ ‘집관(스포츠, 공연, 전시 등을 집에서 관람)’ 등의 신조어는 변화를 단적으로 표현하며 일상화 되어가고 있다.

지난 연말에 어렵게 구한 달력은 이제 달랑 한 장이 남아있다. 그곳에는 가족의 생일이나 기일, 모임과 장소, 만나야 할 사람들의 이름, 일가친척, 가까운 이웃들의 대소사 등 잊어서는 안 될 사연들을 일깨워주던 깨알 같던 내용과 함께 누렇게 변한 채 매달려 있다.

해마다 반복하여 겪는 일이지만 머지않아 또다시 올해를 결별하고 새해를 맞으며 또 한 살의 나이를 더 하여 구질구질한 경력들을 정리, 서둘러 선을 긋고 결국 마감을 하고 마는 것이니... 나이가 어리고 젊은 시절에는 한 해가 무척이나 길었고 멀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해를 거듭하면서 언젠가부터는 적당히 짧아지는가 싶더니 이제는 세월이 쏜살같이 가버린다.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크고 작은 세월의 흐름과 헤어짐에 상당히 익숙해져 있지만, 누군가 아니면 세월이 떠나고 떠나보내는 이별이란 분명 아쉽고 마음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태양은 공평하게 모두에게 따뜻한 빚을 보내고 있지만 세상 모두에게 빚이 닿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장애물이 있어서 또한 스스로 편협하게 덧문을 내려서 햇살의 혜택을 거부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생활에는 순조로운 흐름과 마음의 진행을 가로막는 크고 작은 방해자가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그 마음의 방해자를 제어하면서 열심히 최선을 다할 때 결과가 어느 정도든 그 노력의 기쁨은 내 것일 수 있으리라 믿는다. 해가 바뀌면 한 살 더 많아지는 것은 당연하며 거부할 수 없는 일이기에 그때마다 일어나는 심리적 변화나 수용태세는 인생화를 채색하는 희·비·애·락의 온갖 색채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다만 모든 일이 마음먹기에 달려있다고 하듯이 아쉬움에 연연해 하기보다는 당연한 생을 진지하게 응시하는 시간이 절실하게 필요한 연말인 것이다.

지난 일년동안 도대체 무엇을 했으며 어떻게 살아왔느냐? 하는 자문 앞에 그 대답을 오로지 반성의 두께만 더해 갈 뿐이다. 흘러간 지난 세월의 반성은 인간을 아름답게 해주며 자기 자신을 응시하는 힘이고 자아에 눈을 뜨는 계기이다. 자아를 눈뜨게 함으로써 자신을 아끼고 이웃을 사랑하며 나라를 지탱하게 하는 힘이 아닌가 생각하게 한다.

광복 75년이 지나는 동안 6.25분단, 4.19, 5.16, 광주민주화운동 등 숱한 사건과 사연의 연속이었으나 아직도 불안한 현실은 사라져버린 꽃다운 청춘을 그냥 어둠 속으로 묻혀버리게 했다. 세월 속에 파묻힌 산천은 옛 그대로 보일지 모르나 사람은 옛사람이 아닌 만큼 늙어만 간다. 흐르는 강물처럼 세월은 언제나 쉼 없이 흐르기 마련이다. 한스럽고 안타까운 일들도 세월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누그러진다. 불안과 초조, 피로 얼룩진 시련이 너무나 엄청나서 말문이 막힐 뿐 세월은 무정하게 가기 마련이다. 지난 세월을 탓해서 무엇하겠는가? 세월은 듣지도 보이지도 않은 채 그냥 그대로 흘러갈 뿐 매정하다.

코로나와 함께 누더기 같이 얼룩진 한 해가 거의 가버린 지금 이 추운 계절에 우리는 서로가 부르고 찾으며 도와가면서 얼어붙은 이 땅의 이웃들은 추위를 잠시 잊고 가는 것과 남아있는 것과의 구분을 위해 높고 낮은 곳에서 희망의 종이 울릴 것이다.

이제 경자년의 묵은 마음과 먼지를 걷어내고 미음을 사랑으로 불행을 행복으로 바꿔서 2021년의 맞이하자. 이제는 메모할 여백도 많고, 보기도 아름다운 달력을 여러 개 구하여야 할 터인데 그것이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