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성장포럼 대표

前 익산경찰서장

김 성 중

중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신문을 배달하고 있는 신문사 소장님이 학교 측에 이야기해서 장학금을 주겠다고 하셨다. 나는 뛸 듯이 기뻤다. 어렸지만 어려운 시간들에 대한 보상인 것 같아서 감사했다. 장학금 수여식 날. 강당에 걸린 현수막을 보고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불우학생 장학금 수여식’
가난이 나를 불우하게 만들고 있지 않다고 수없이 다짐했건만 어린 다짐이 현수막 하나로 한순간에 무너졌다. 온 세상이 나만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아 견딜 수 없이 창피했다.
그 이후로 사회에 나와서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게 되는 일을 할 때마다 절대로 그런 식의 현수막을 걸지 못하게 한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된 그 사건 때문이다. 도움을 필요한 곳에 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중요한 일이지만, 그들의 삶이 전시행정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전시행정’이라는 단어가 생성되었다는 것, 그 자체가 보여주기식 일들이 성행하고 있다는 근거가 된다. 대부분 조직에서 이러한 전시행정이 존재하는 것은 겉으로 조직이 잘 운영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의 믿음도 얻지 못하고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하는 이러한 보여주기식 문화는 우리 사회에서 다음과 같은 행태로 나타나고 있다.
첫째, 집중 호우로 인한 수해 피해가 전국으로 발생하면서 정치인들의 구설도 끊이지 않고 있다. 재해 때마다 반복되는 보여주기식 정치 행보부터 예민해진 민심을 읽지 못한 데 대한 비판까지 다양하다. 근본적으로 정치인들이 정책이나 실력으로 다가오지 않고 이미지로만 다가오고 있다 보니 보여주기식 행보가 여전히 이어지는 것이다. 유권자들 스스로가 국민을 위한 정치인이 누구인지를 보고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인의 이미지나 정당만으로 선택하면서 이러한 이미지 정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이 존재한다.
둘째, 우리 사회에 보여주기식 기부가 생각보다 많다. 연말연시 복지시설에서 기부  는 품은 특정 물품에 쏠린다. 특히 연탄 같은 경우, 저소득층에도 도시가스가 대중화가 되었음에도 단순히 그림이 좋아 연탄을 선호한다고 한다. 1년 동안 들어오는 물품의 70%가 12월과 1월에 집중된다. 기부자 중에도 상당수가 가시적이고 보여주기 좋은 일회성 기부를 하고 있다고 한다. 더욱이 강제적으로 하게 하는 것은 보여주기식 봉사를 조장하는 것과 같다. 물론 보여주기식이라도 기부가 필요한 곳이 많은 것이 현실이지만 어떤 것이든 ‘보여주기 위한’ 활동이 주류가 되면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에게 득이 되지 않는다고 확신한다.
셋째, 일반인 대부분은 친구를 맺고 자신의 소식을 전하고 정서적 교류를 하고 싶어서 SNS를 한다. 근사한 순간들을 계속 기억하고 싶어서 사진들을 올린다. 그러면 지인들이 보고 ‘좋아요’를 눌러주거나 댓글을 남기면서 경험을 공유하고 소통한다. 하지만 이러한 순기능이 역기능이 되어 우리를 박탈감과 열등감에 빠지게 할 수도 있다. 사진을 음미하며 누리고 싶어서가 아니라 행복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 올리는 현상이 벌어진다. 이러한 불편한 보여주기식의 행복은 행복 부담감을 낳고 심지어 강박적 행복을 갖게 한다. 나는 우울하지 말아야 하고, 나는 행복해야 한다는 억지스러운 부담감에 빠져서 진정한 내 모습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남에게 보여주지 않고도 스스로 만족하고 행복감을 느끼는 삶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보여주기식 일을 이제는 버려야 한다.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사는지, '남'을 위해 사는지 '나'를 위해 사는지를 사회적 차원에서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일이 아닌 스스로가 떳떳한 일을 찾아 실천해야 할 때가 왔다.
일을 진행하다 보면 분명히 내 의지와 상관없이 보여주기식 일을 가끔은 행하게 된다. 그때마다 우리는 그 일이 얼마나 낭비인지를 깨달아야 하고 실제 행하는 일로 바꾸는 방법을 끝없이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권한이 주어진다면 과감히 조직 업무를 재편할 수 있도록 우리는 늘 깨어 있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