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함해국 대표

유은미

코로나19로 일상이 매우 지치고 힘든 나날들이 이어져 가고 있다. 맘 놓고 숨 쉴 공간이 없으며, 친근한 이들과도 따뜻한 온정을 나누기가 어렵다. 밖에 마음껏 나갈 수 없으니 예전 우리지역 ‘이병기 생가’를 방문 한 후 기록해 놓은 글을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이병기 선생이 기거하던 곳은 수우재(守遇齋)라고 불리 운다. 이 뜻은 ‘어리석음을 지킨다.’는 것으로 곧은 이병기 선생의 성품이 느껴지는 곳이다.

몇 년 전 방문하여 마루에 걸터앉아 선선한 바람을 맞으니 이병기 선생의 생전으로 돌아간 듯 한 느낌이 들었다. 입술에서는 나도 모르게 이병기 선생의 ‘별’을 흥얼거리고 있었다.

「바람이 서늘도 하여 뜰 앞에 나섰더니

서산(西山) 머리에 하늘은 구름을 벗어나고

산뜻한 초사흘 달이 별과 함께 나오더라

달은 넘어가고 별만 서로 반짝인다

저 별은 뉘별이며 내 별 또한 어느 게오

잠자코 호올로 서서 별을 헤어 보노라」

비록 이병기 선생은 없지만 그의 일생을 묵묵히 지켜본 수우재(守遇齋)는 그 때나 지금이나 어김없이 우리를 반가이 맞이해주고 있다.

『 매일 낯선 이들이 이리 기웃, 저리 기웃 거린다.

하나같이 그를 기억하거나 기리는 이들이다.

비록 나 홀로 남겨져 있지만 그의 흔적과 내음은 고스란히 배어있다.

나의 몸체는 작고 여리나 낮은 단위에 지건하게 자리 잡고 있다. 내 앞에는 곰상스러운 연못이 있고 철따라 피는 화초들이 바람에 따라 서로 향기를 지저귄다.

모난 곳 없는 승운정을 따라 그의 손때 묻은 책방을 지나면 그가 지내던 나의 몸체가 나온다. 어리석음은 깊은 다락에 숨기고 난으로 기품을, 술로 호방함을 대신하였다.

중문으로 이어지는 심곡은 뒷산의 아늑함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작은 툇마루에 앉아 넓은 세상 보며, 만물소생의 깊이를 담은 곳이다. 작지만 깊은 그의 마음속 공간이었다. 마음의 고향이었다.

그 때가 바로 어제 일만 같다.

첫 울음을 떼던 날이.

또랑 또랑 천자문을 곱씹던 날이.

그리고 별을 헤며 해맑게 웃으며 손짓 하던 날이.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그대로인데 나에게 기대 술잔을 기울이던 그는 없다.

그 날을 생각하니 바람을 타고 어디선가 난꽃 향이 내 몸을 따라 흐른다.

헛헛함이 흐른다.

나는 수우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