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숲교회 담임목사

강남웅

세상이 참 많이 변했습니다. 그러나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기주의와 경제적 욕망으로 가득한 현대 사회에 이미 경고되고 예측된 위기와 변화가 시작된 것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위기를 촉발한 방아쇠는 코로나19의 전염병 충격이지만 그동안 쌓여있던 문제들과 경제적 위험의 폭발과 삶의 불안까지 겹치며 지구촌 전 세계가 팬데믹 상황에까지 이르고 말았습니다.

세상을 탓할 것도 아니고 무작정 세상을 등질 것도 아닙니다. 현실을 직시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분명한 교훈은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 있고 한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입니다. 미로슬라브 볼프는 <광장에 선 기독교>라는 책에서 사람이 세상을 대하는 자세를 세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첫째는, 이의 없이 세상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세상이 제공하는 문명의 이기와 삶의 방식을 따라 사는 것이지요. 둘째로, 신앙의 관점에서 세상의 것들을 변혁, 또는 용도 변경하는 것입니다. 주어진 문화 안에서 다르게 사는 것입니다. 여기서 신앙의 창조성이 요청됩니다. 변화하는 세상에 적합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도 여기에 해당합니다. 마지막은 세상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바람직한 자세일까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톨스토이의 대표적인 단편소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벌로 알몸으로 세상에 내려온 천사 미하엘이 다시 하늘로 올라가기 위해서 세 가지 문제를 풀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는가?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였습니다. 이 세 가지 답을 찾는 과정을 다루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구두장이가 한 농가에 세 들어 아내와 자식을 데리고 살고 있었습니다. 무척 가난해서 아내에게 변변한 외투 하나도 선물할 수 없던 그는 약간의 여유가 생겨 아내의 외투를 마련하기 위해서 도시에 나갔지만, 가진 돈으로 술만 마시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오는데 한 청년이 교회 벽에 기대어 알몸으로 쓰러져 있습니다. 이러한 톨스토이의 묘사에서 당시 교회가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에 눈길을 주지 않았음도 감지할 수 있습니다.

구두장이는 청년에게 다가가서 자신의 외투를 입히고 집으로 데리고 옵니다. 아내는 자신이 갖고 싶었던 외투는 그만두고 어디서 거지같은 청년을 데리고 온 남편을 구박합니다. 하지만 선한 마음씨를 가진 구두장이 부부는 오갈 데 없는 청년을 보살펴주고, 자신들의 구둣방에서 보조하는 일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미하엘이라는 이름을 가진 청년의 솜씨가 보통을 넘습니다. 어려운 구두도 척척 만들고 수선합니다.

하루는 구두를 잘 만든다는 소문을 들은 한 부자가 하인과 함께 찾아왔습니다. 부자는 매우 비싼 가죽으로 까다로운 모양의 구두를 부탁했습니다. 만약에 요구대로 구두를 만들지 못하면 구두장이를 감옥에 넣겠다고 겁을 주었습니다. 미하엘의 솜씨를 믿고 부자의 주문을 받았는데, 미하엘은 그 비싼 가죽으로 구두가 아니라 죽은 사람이나 신을 법한 슬리퍼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구두장이가 당황하는 순간 가게 문이 열리고 부자의 하인이 헐레벌떡 들어오더니 주인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구두 대신 시신이 신는 슬리퍼를 부탁했습니다. 천년만년 살 것 같던 부자가 집에 가는 길에 사고를 당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얼마 후에는 한 부인이 쌍둥이 아이를 데리고 구두를 맞추러 왔습니다. 그런데 한 아이가 다리를 절고 있었습니다. 부인이 자초지종을 얘기해 줍니다. 쌍둥이는 부인의 이웃집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의 아빠가 죽고, 곧이어 엄마도 죽었는데 쓰러지면서 아이의 발을 눌러서 절게 되었답니다. 부인은 졸지에 부모를 잃은 두 아이가 불쌍해서 쌍둥이를 데려다 키웠는데, 그 와중에 자기 아들이 죽고 이제는 두 아이를 친자식처럼 돌보고 있다고 했습니다.

천사 미하엘은 가난한 구두장이가 교회 앞에 쓰러진 자신에게 외투를 벗어주고 구둣방에서 일하게 해 준 것을 보면서 사람의 마음속에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첫 번째 문제를 푼 것입니다. 으름장을 놓으며 구두를 만들어 달라고 명령하던 부자가 집에 가는 길에 죽는 것을 보면서 사람에게는 앞길을 예측할 능력이 없음을 깨닫습니다. 두 번째 문제도 풀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웃집 아이들을 친자식처럼 돌보는 부인을 보면서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야 함을 배웠습니다. 미하엘은 이렇게 하나님께서 내주신 세 문제를 모두 풀고 하늘로 올라갑니다.

오늘날 프랑스 사람들이 자랑스러워하는 역사 속의 인물은 나폴레옹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이 자랑하는 위인은 광견병을 치료하는 백신을 개발한 파스퇴르입니다. 이처럼 코로나19이후 시대에 세워 갈 우리의 모습과 교회는 카리스마 넘치는 영웅적이고 권위적인 것이 아니라 참된 사랑의 공동체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그렇습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변화무쌍하고 야속한 세상이지만 우리 안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성탄절은 사랑으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태어난 날입니다. 그래서 세상에 소망이 시작된 날이기도 합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랑으로 살기 원하며 사랑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고통의 삶에서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