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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산 육군부사관학교 가는 길

채수훈(왕궁면장, 영등1동민)

일요일 아침에 일찍 눈을 떴다. 창밖은 뿌연 안개 속에 잔뜩 흐려 있었다. 날씨 탓인지 몸이 찌뿌듯했다. 자가용을 타고 왕궁 원경사로 향했다. 자비 스님과 군종 상사 자가용으로 갈아타고 여산 육군부사관학교로 다시 떠났다. 첫 방문이다. 사전 예약한 터라서 위병소를 쉽게 통과했다. 대신 신분증과 출입증을 바꾸어야 했다. 돌아갈 때는 반대로 하면 되겠지. 군부대 방문은 11사단 복무와 예비군 훈련 이후 처음이지만 왠지 낯설지는 않았다.

사실 이 학교를 방문한 진짜 이유는 법회보다 도서관 관람에 있었다. 도서관이 매우 잘 건축되었다고 소문을 들었다. 제사보다 제삿밥에 관심이 있다고 할까.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육군부사관학교 군종 법회에 참석하는 자비 스님을 따라나섰다.

군종 상사가 차로 부대를 안내하였다. 11사단 사령부에서 군 복무해서 그런지 부대 풍경이 낯설지 않았다. 반듯한 도로 주변에 건물과 연병장이 질서정연하다. 휴일이라서 군인들은 보이지 않고 고요하다. 마치 텅 빈 부대 같다. 한 바퀴를 돌아 법당 요사채에 도착하였다. 군종 스님과 차 한잔을 나누며 군대와 관련한 담소를 나누었다. 10시 30분경에 군 법당에 들어서자 정중앙 부처님을 중심으로 양쪽에 훈련생 169명이 꽉 차 있었다. 여군도 남군 사이에 한 1/4정도 되어 보였다. 예전 금남의 집에서 생활한 군시절과 다른 낯선 풍경이었다.

스님의 설교 후 요사채에서 점심 공양이 있었다. 배웅받으며 나오는 길에 마지막 목적지 학록도서관으로 향했다. 스님은 차 안에 계시고 군종 상사의 안내로 도서관에 들어갔다. 도서관은 도서실, 영화관, 세미나실, 휴게실을 겸비한 최첨단 3층 건물이다. 외형은 볼품이 없었다. 1.5층과 2층 한 공간 속에 도서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보는 순간 ‘와아'하는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성냥갑 같은 구조가 아닌 개방형 건물로 이어져 있다. 익산 군부대에 이 같은 도서관이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익산시립도서관보다 실내 디자인과 공간 배치가 한 수 위였다.

발걸음은 계단을 따라서 2층으로 옮겨졌다. 2층 중앙 열린 사무실에 직원 한 명뿐이었다. 이 도서관의 특징은 서재 높이에서 찾을 수 있었다. 사람 키보다 두 배쯤 커 보이는 서재가 복도식으로 진열돼있다. 책을 읽는 즐거움 못지않게 보는 즐거움도 더 해주었다. 제일 먼저 마주한 책 분야는 전쟁?군사였다. 역시 군부대다웠다. 이순신, 한국전쟁, 마오쩌둥 ?????. 군사학의 고전인 손자병법은 어디에 숨어있는지 눈에 띄지 않았다.

2층 벽면의 서재를 따라 걸어 들어갔다. 복도 끝 벽면 안쪽은 자유 열람실로 책상이 빼곡하다. 오른쪽은 3층으로 향하는 목조 계단과 그 옆에 계단식 의자가 놓여있다. 열린 공간이라서 시원스럽다. 문화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좋은 공간이다. 산뜻한 나무계단을 밟고 3층으로 향했다. 시청각실, 영화관이 있다. 유리문이 잠겼다. 아쉬웠다. 다시 왔던 길을 따라서 1층으로 내려왔다. 카페와 넓은 휴식 공간이 펼쳐져 있다. 유리면 밖의 경치도 덩달아 따라 들어온다.

어린이 도서가 어디에 있는지 궁금했다. 휴게소 옆에 바로 있었다. 바닥에는 안전을 위해 푹신푹신한 매트리스가 깔려있었다. 아마도 부모들이 차를 마시며 대화를 즐기면서 자녀들을 지켜볼 수 있는 공간에 어린이도서 코너를 만든 것 같다. 차 한잔 마시며 도서관 분위기를 만끽하고 싶었지만 자동차 안에 스님이 계셔서 마음뿐이었다.

왜 학록도서관일까. 학록은 풍산 그룹을 창업한 고 류찬우 회장의 호이다. 평소 "사명감을 가지고 국가와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을 제공해야 하는 것이 기업이다.”라고 했다. 그 호를 따서 명명됐다. 풍산은 군 산업체이다. 군에서 얻은 경제이익을 착하게 사회 공헌한 셈이다. 그 정신과 씀씀이가 감동스럽다.

부대를 빠져나오는 발걸음은 왠지 가볍지 않았다. 귀가하여 도서관 개관식 기사를 찾아봤다. 김준성 주임원사는 "육군부사관학교 간부 모두가 인성 함양과 전문성을 갖춘 간부로 육성하고, 지역주민들의 문화공간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힘쓰겠다.”라고 말했다. 또한, 박우동 풍산그룹 사장은“학록도서관은 21세기형 복합문화공간의 면모를 갖췄다. 지식 함양과 함께 문화공간으로서 소통과 가족의 만남, 지역사회 교류의 장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했다.

이 현대적 도서관을 지역사회와 문화교류의 장으로 확장할 수 없을까. 아무래도 도서관이 영내에 있으면 주민들의 이용이 불편하다. 출입 절차도 걸쳐야 한다. 사회공헌의 취지에도 벗어나 있다. 도서관 활용의 효과성과 효율성도 낮아질 수밖에 없다. 해결방안이 없을까. 도서관 주변 영내에는 담을 치고 바깥담을 허물어 군과 주민이 자유스럽게 출입할 수 있도록 공동 공간을 확보하면 괜찮을듯하다. 군인은 영내 출입문으로 주민은 영외 출입문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면 공유가 가능하다.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공동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앞으로 익산시와 육군부사관학교가 상호 협력하여 지역주민을 위한 상생협력 방안을 찾아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