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주
익산시 사회복지협의 회장
국제 NGO 삼동인터내셔널 이사장

갈릴래아 호수 둘레는 약 50km다. 헤르몬산에서 발원한 물이 북쪽에서 흘러들어 온 뒤 요르단강을 통해 사해로 빠져나간다. 예수는 제자들과 함께 호수의 이쪽과 저쪽을 오갈 때 종종 배를 이용했다.

그날도 예수는 제자들과 배를 탔다. 그런데 그들이 항해하던 중에 광풍이 불었다. 배가 흔들리고 배에 물이 가득 찼다. 제자들은 갑작스러운 광풍과 물이 들이치는 상황에 너무도 겁을 먹고 마치 죽을 것 같은 공포를 느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배의 고물을 베개 삼아 태연하게 잠을 자고 계셨다. 그러자 제자들은 다급해서 예수님을 깨웠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 태연하게 잠자고 있는 예수님의 모습에 어찌 저러실 수 있나 하는 생각을 했을 수 있을 것이다.

“주님, 구해주십시오. 저희가 죽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예수는 오히려 호들갑 떠는 제자들을 나무랐다.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자리에서 일어선 예수는 바람과 호수를 향해 소리쳤다.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그랬더니 파도가 고요해졌다. (마가복음4:35~41)
소태산 대종사(원불교 창시자)도 그랬다. 1911년 가을, 길룡리(소태산 대종사 탄생 마을, 전남 영광군 백수면) 일행 네 사람(소태산, 이순순, 유 건, 이원화)은 돛이 달린 목선 하나 빌려 타리섬(전남 신안군 임자도에 딸린 작은 섬) 으로 파시(波市) 행차를 다녀오는 길이었다.

뱃길이 칠산바다로 접어들자 바람은 더욱 커지고 풍랑이 거세어졌다. 초가을의 거친 해풍에 집채만 한 파도가 너울거린다. 사나운 서북풍과 성난 파도가 마치 무너지는 산채 같았다. 노련한 어부 둘과 총각 하나, 거기에 몸을 맡긴 열 명 남짓 배에 탄 사람들은 공포에 떨고 있었다. 그때 돌도구통이 배 안을 마구 돌아다녔다. 거기에 여러 사람들이 머리를 찧어서 돌도구통에 피의 얼룩이 생겼다. 배가 표류하게 되었을 때 바다는 죽음의 공간이 된다. 배는 나무접시처럼 기우뚱거린다. 산더미 같은 파도 하나가 뱃머리에 부딪히자 배는 물결 따라 크게 한 번 기우뚱하더니 뱃장 안에 실었던 짐들이 우르르 한 곳으로 몰린다. 배 안 사람 모두가 정신을 놓았다. 소태산 대종사 뒤에 숨어 있던 ‘이원화’ 조차 혼절하여 뱃장 안에 쓰러졌다. 사공도 아주 단념한 듯이 한편에서 엉엉 울 뿐, 이제 바다는 오도 가도 못할 커다란 공간이 되었다.

이때 소태산 대종사가 움직였다. 사공의 따귀를 때렸다.
“이놈아, 죽게 된 마당에 정신까지 잃을 게 뭐냐”
그리고 하늘을 향해 소리쳤다.
“여보시오, 왜 겁을 주는 거요? 벌을 주려거든 당신께 대든 내게 줘야지”
그러자 이상하게도 그의 호통 소리와 함께 바람이 잦아들고 물결이 잔잔해졌다. (소태산평전 김영수著)

파도는 어디에서 생겨날까. 그렇다. 바다에서 생겨난다. 그래서 바다와 파도, 둘의 속성이 하나다. 그런데 바다에서 툭 떨어져 공중으로 솟구친 파도는 바다를 잊어버린다. 자신이 어디에서 생겨났고 자신의 정체가 무엇인지 망각한다.

예수와 소태산의 눈에는 그 이유가 빤히 보인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호통을 쳤다. 파도가 ‘자기 안의 바다’를 깨닫지 못하듯이 제자들도 자기 안의 속성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내면의 속성을 보지 않고 산다. 그래서 늘 파도처럼 거친 해풍처럼 아우성 지르고 거칠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거대한 고요 즉 바다의 삶이 아니다. 파도가 자기 안의 바다를 볼 때 비로소 ‘거대한 고요’가 밀려오듯이 우리가 자기 안의 바다를 볼 때 비로소 파도와 바다가 하나가 되고 ‘거대한 고요’가 드러난다. 그때 우리 삶도 잠잠해진다.

심청전의 서사(敍事)도 그렇다.
공양미 삼백 석에 팔려간 심청은 배를 탔다. 배는 서해로 떠났다. 아니나 다를까. 풍랑이 몰아쳤다. 집채만 한 파도가 몰려와 뱃전을 ‘탕! 탕!’ 친다. 큰 배가 휘청휘청한다. 폭풍은 으르렁거리며 달려든다.

심청의 마음이 요동치고 덩달아 파도도 출렁인다. 심청과 파도가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자 뱃사람이 외친다.

“여보시오, 심 낭자! 얼른 물에 드시오!”

때가 왔다. 파도가 자신을 허물 때가 왔다.
심청은 두 눈을 딱 감는다. 그리고 뱃머리로 달려간다. 심청은 발을 뗀다. ‘풍덩!’ 하고 심청이 물에 빠진다.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하늘을 삼킬 듯이 몰아치던 폭풍, 바다를 삼킬 듯이 달려들던 파도가 일시에 가라앉는다.

왜 그럴까. 파도가 바다를 만났기 때문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파도가 ‘자기 안의 바다’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일상, 우리의 생활, 우리의 삶이 바로 갈릴리 호수이고 칠산바다이고 서해이다.

파도가 자기 안의 바다를 보려면 어찌해야 할까. ‘나는 파도다’라는 자기 정체성을 허물어야 한다. 우리의 일상은 수시로 돌풍이 불고 파도가 친다. 배가 뒤집힐 듯 기우뚱한다. 갑판으로 파도가 덮칠 때는 죽을 것만 같다. 그때마다 예수와 소태산은 우리에게 묻는다.

“네가 보는 것은 무엇인가. 파도인가, 아니면 바다인가.”

어둠 속에는 언제든지 빛이 있다. 인간이 아무리 슬프고, 괴롭고, 고통스럽고, 아플 때도 우리 안에는 ‘빛의 속성’이 깃들어 있다. 다만, 우리가 보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