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한국예총 익산지회장

김 영 규

생물학의 원로이며 대부로 인정받는 하버드 대학의 ‘에드워드 윌슨’ 교수에 의하면 오리나 거위와 같은 조류들의 성격에는 각인효과라는 것이 있어서 알에서 깨어난 후 처음으로 목격한 대상을 자신의 어머니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그와 같이 사람도 새로운 분야에서 접하는 첫 번째 단어가 그 영역의 아이콘 역할을 하게 된다. 첫사랑이 잊히지 않는 것은 사랑이라는 개념 공간에 첫 번째로 자리한 이름이기 때문인 것이다.

최초의 우주인은 구 소련의 ‘유리가가린’이었지만 두 번째 우주인이 누군지는 잘 알지 못한다. ‘가가린’은 1961년 4월 12일 ‘보스토크 1호’를 타고 108분 동안 우주에 머무르다 귀환, 일약 세계적인 명사가 되었었다. 두 번째 우주인은 역시 소련의 티토프였으며 그는 가가린보다 4개월 후 1961년 8월 6일에 우주선 보스토크 2호를 타고 25시간 18분 동안 지구를 선회하는 대기록을 세운 사람이지만 첫 번째 우주인 가가린에 가려져 기억에서 사라졌다.

달나라에 첫 발을 디딘 닐 암스트롱의 이름은 모두가 생생하게 기억하지만 두 번째로 발을 디딘 버즈 올드린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더구나 달까지 함께 갔지만 달에 발을 딛지 못한 아폴로 11호의 사령선 조종사 마이클코린스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 또한 거의 없다. 콜린스는 후일 <Fly to the moon>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달까지 우주선을 조종했던 자신이 잊혀져버린 것에 대한 억울함과 서운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올림픽 경기 중 최고의 꽃은 100m 달리기이다. 1등과 2등의 차이는 0.01초 그야말로 종이 한 장 차이다. 그 작은 차이가 1등은 영웅이지만 다른 한 사람 2등은 기억에서 사라지게 만든다. 메이저리그 야구에서 12번 타석에 들어서 3번의 안타를 치면 0.25의 타율이지만 4번을 치면 0.333의 타율로 올라간다. 그러나 안타 하나의 차이는 연봉에서는 10~20배의 차이가 난다.

민주 사회는 평등사회이긴 하지만 살벌한 경쟁 사회를 전제로 한다. 특히나 최고만을 지향하는 한국인의 열망은 최고 1등만을 인정하고 기억하며 위해주는 잘못된 세상이라고 불평하면서도 타고난 국민성, 신체적 정신적 기질과 배짱, 그리고 승부사적 근성으로 최고의 자리에 서기까지 끈임 없는 도전을 통하여 결국 성공의 자리 1등의 결과를 얻고 마는 것이다.

‘배짱으로 삽시다’라는 이시형 박사의 저서는 19080년대 초반에 출간 3년 동안 베스트셀러에 올라 오늘날까지도 꾸준히 구독자가 있으니 2주 된 내용은 한국인의 무의식 속에 잠재된 소심함과 열등감, 체면 의식을 지목하고 배짱으로 이를 물리치자는 내용이다.

한국인의 무의식 밑바닥에는 진정 두둑한 배짱이 있나 보다. 우리는 자주 ‘맨땅에 헤딩’, ‘달걀로 바위 치기’라는 말을 사용한다. 무모한 도전의 의미이기에 그렇게 좋은 말은 아닌 듯하나, 이 말이 유독 우리에게 그럴듯한 뉘앙스로 다가오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아마도 무모하고 어리석은 엉뚱함이 아니라 과감하고 두둑한 도적적인 배짱이라는 긍정적인 의미로 해석, 공감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모 아니면 도 등 한국인의 위와 같은 배짱은 남들은 엄두도 못 냈을 일임에도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7전 8기의 의지로 해냈다.

1등만을 위해주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불평하면서도 1등 한국을 만드는 원동력은 곳곳에 있으니 한국인 특유의 섬세함이 그중 하나가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가 최고인 분야는 극도의 섬세함을 요구하는 분야가 대다수다. 정교하고 깔끔함을 요하는 외과 수술은 한국 의사들을 따라올 나라가 없다고 말한다. 더욱이나 성형외과 수술은 세계 최고다. 일찍이 한국에서 조선업이 발달한 것도 정밀한 용접 능력에 기인한다. 배가 크다고 용접을 대충 하는 게 아니다. 충돌한 배가 바다에 떠있는 상태에서 용접하는 특수 기술은 한국이 독보적이다. 올림픽에서 확실한 금메달 종목은 양궁이며 그 종목은 지극히 섬세함을 요구하는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근자에 골프에서 한국의 선수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것도 퍼팅의 섬세한 때문이 아니었을까 한다.

무엇이든 최고를 원하고 인정하는 한국인, 그러나 타인의 최고에 대하여는 냉정하다. 더 나아가 타인의 성공을 긍정적으로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와 같은 심리는 타인의 우월성과 성취, 소유를 의식하면서 느끼는 열등감과 분노로 인한 질투심에서 기인한다. 반대로 상대방의 불행에는 보상감을 느낀다. 어릴 때부터 경쟁을 중요시하는 요즘의 교육 환경에서 자란 젊은 세대들에게 이와 같은 성향은 더욱 뚜렷하다.

이제는 1등이 되고 싶은 2,3등도 인정해 주어야 한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최고가 되고 싶어 하는 최하도 인정하며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타인의 최고에 박수를, 타인의 성공에 진심으로 축하를 보낼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