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사람들 > 나의 참회와 선공후사(先公後私)

나의 참회와 선공후사(先公後私)

국제NGO 삼동인터내셔널 이사장

김 영 주

정치인들이 국민들로부터 자꾸 신뢰를 잃어 가고 있다. 검찰도 언론도 그렇다. 국가를 선도해 나가고 국민의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쇠약해 판단이 흐려지고 권력의 맛만 바라보는 욕망의 철로를 걷기 때문이다.

더불어 인간도 자연으로부터 침해당하고 있다. 그동안 인간이 자연을 어떻게 했는지에 대한 보복이라 할 수 있다. 자연을 침략하면 재앙적 보복이 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를 인과보응의 이치라 한다.

필자는 어느 순간 나 자신의 성찰을 생각했다. 정치인, 검찰, 언론 등만 신뢰를 잃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도 사회로부터 신뢰를 잃고 잊지 않는지 말이다.

옛날, 읽었던 고전 하나가 생각났다.

그때 당시도 그 고전을 읽으면서 무척 부끄러운 생각을 가진 일이 있다.

오늘, 그 이야기를 소개하려 한다.

중국 전국시대에 있었던 이야기이다.

많은 나라 중에 강대국 진나라의 위력을 피한 유일한 나라가 조나라였다. 당시 조나라엔 인상여(藺相如)와 염파(廉頗)라는 두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상여는 完璧(완벽)이라는 말의 어원이 된 인물이다. 어느 때 진나라의 소양왕은 조나라의 혜문왕이 가지고 있는 ‘화씨(和氏)의 벽(壁)’이라는 진귀한 보물을 가지고 싶었다. 그래서 조나라에 “그 보물과 진나라의 15개성과 교환하고 싶다”고하였다. 이때 조나라의 사자로 진나라에 간 사람이 인상여다.

진나라 소양왕을 알현한 인상여는 소양왕의 오만한 태도를 보고 성을 내주지 않고 ‘벽’을 손에 넣으려는 것을 간파하여 기백 있는 논쟁으로 무사히 보물을 가지고 돌아왔다. 여기에서 ‘벽을 지켜냈다’하여 <완벽>이란 말이 유래했던 것이다.

인상여는 이 공적으로 조나라의 대신이 되었다.

그 후 또 진나라 소양왕이 조나라 혜문왕에게 우호를 위한 연회를 제안했다. 진나라의 위세에 겁이 난 혜문왕이 가기를 꺼려 하는데 명장인 염파가 “가지 않으면 조나라가 약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인상여로 하여금 수행하도록 하여 보냈다. 진나라 왕이 조나라 왕에게 악기를 연주시키는 등 치욕을 당할 뻔하였는데 인상여가 용맹과 기지를 발휘하여 무사히 회담을 마치고 돌아왔다. 인상여의 공을 인정한 혜문왕은 그를 재상으로 삼았고 이에 지위가 염파보다 높아졌다.

그런 인상여를 언짢게 생각하는 장군이 염파였다.

그는 기원전 283년 제나라를 공격할 때 양진(陽晋)을 함락시켜 상경(上卿)이 되어 용장으로써 이름이 알려진 인물이다.

그래서 염파는 “저런 입만으로 사는 인물이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 자기보다 출세하는 게 말이 되는가? 만나면 치욕을 안기겠다.”라고 공언하는 등 무례를 서슴지 않았다.

이것을 안 인상여는 염파와 얼굴을 마주치지 않도록 조정의 회의에는 병을 핑계로 결석하고 외출 때에는 염파를 멀리서부터 보면 수레를 후퇴시켜 숨는 등 철저하게 염파를 피해 다녔다.

이런 모습을 부하들이 어처구니없다고 말하자, 인상여는 부하에게 물었다.

“염 장군은 진나라 왕의 군대보다 강하다고 생각하느냐?” 이 질문에 어림없다고 부하가 대답하자 인상여는 “그 진나라 소양왕을 궁정에서 질책한 내가 염파장군을 두려워할 리가 없지 않느냐. 지금 진나라가 조나라에 전쟁을 걸어오지 않는 것이 나와 염파장군이 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싸우면 어느 쪽이던 죽으리라. 내가 염파장군을 피하는 것은 국사를 우선하고 사원(私怨)을 뒤로하기 때문이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 말을 들은 염파는 자신의 좁은 생각을 부끄럽게 여기며 옷을 벗고 가시나무의 채찍을 등에 메고 육단부형(肉袒負荊 : 윗옷 한쪽을 벗고 등에 형장을 지고 간다는 뜻으로, 이 매를 맞고 사죄하겠다는 뜻을 이르는 말)의 모습으로 인상여 앞으로 찾아가 엎드려 사죄했다.

이후 두 사람은 ‘문경(刎頸)의 우정’을 맺었다. 문경이란 목을 치는 것으로 함께 죽는 것을 의미한다.

이리하여 굳게 결합된 두 사람이 건재하게 되어 진 나라는 조를 공격해 오지 않았다고 한다.

필자는 이 고전을 생각하면서 진상여와 염파의 처사에 감탄치 않을 수 없었다. 국가를 위하는 선공후사(先公後私) 정신의 모델이다.

필자는 선공후사의 모델인 진상여와 염파가 혹 나의 가슴에도 존재해 있는가 생각해 보았다. 아무리 찾아도 진상여와 염파는 없다.

갑자기 부끄러움이 또 찾아왔다. 과거 이 고전을 읽었을 때의 부끄러움보다 더 강한 부끄러움이다. 소위 ‘자력이 없는 장애인들을 위한 사회복지사업’과 ‘하나의 세상을 지향하는 NGO 사업’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부끄러움이었기 때문이다.

선공후사는 공익정신이다.

세상은 과학문명이 눈 코 뜰 새 없이 발달해가고 있다. 따라서 인간의 지식이 축적되어 지적 능력이 강해져 간다. 하지만 지적 능력이 강해지면 자기를 중심으로 하는 사상이 형성되고, 자기를 중심으로 생각하면 다른 사람을 생각할 여유가 없어지며, 곧 자기중심의 개인주의·이기주의가 되는 것이다. 한 개인이 다른 사람을 생각할 여유가 없이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을 자기가 가지려고만 하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이나 독립투사같이 나라를 위해 생명을 바친 것은 보다 많은 사람이 함께 잘 살게 하려는 공익심에서 출발했다. 논어 ‘위령공편’에서 “이 몸을 죽여 어짐을 이룬다(殺身成仁)”고 했다. 어짐을 이룬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함께 잘 살게 하는 것이다. 공익의 입장에 서서 모든 사람과 함께 잘 살면 나의 생명은 모든 사람으로 확장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