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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홍의 눈물에 부친다

익산시민 유 성 무

며칠 전 J-TV에서 방송한 <바보 노무현, 그 후 20년>을 봤다. 지역 구도를 깨서 정치 발전을 이루려고 했던 고 노무현 대통령처럼, 4.15 총선에서 지역의 높은 벽에 도전하고 낙선한 후보 5명을 조명한 프로그램이었다. 그중 한 명이 익산에서 출마한 정의당 권태홍 후보였다.

“기회를 주십시오. 제게 단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저는 노회찬처럼 일하고 싶습니다. 서민들의 어려움을 제대로 풀어내는 정치인이 되고 싶습니다. 저 한 번, 일 한 번 시켜주십시오.” 유세차에 올라 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던 권태홍의 모습이 화면에 흘렀다. 그리고 이 말을 하던 권태홍의 얼굴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눈물을 보면서, 삶의 무게에 짓눌려 살고 있는 서민들을 위해 국회의원으로서 일해보고 싶은 권태홍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혹자는 국회의원이 아니더라도 서민들을 위해 일할 수 있는 방법이 많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켜켜이 쌓인 기득권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야인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있겠는가?

십 수 년 동안 방치된 장점 마을 사태의 실마리를 푼 사람이 권태홍이라고 말한다. 권태홍이 지역의 일개 시민운동가였다면 장점 마을 사태를 국회로 가져가서 국가 차원의 역학조사와 배보상에 대한 논의를 이끌어낼 수 없었을 것이다. 그가 정의당 사무총장으로서 문제를 이슈화했고, 이정미 의원이 집중적으로 문제를 다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된다.

부당하게 고통받는 사람들을 제도적으로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모르면, 잘못된 세상을 욕하고 개탄하는 걸로 끝난다. 하지만 그 방법을 잘 알고 있으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치적 권한을 갖지 못하는 사람의 안타까움은 실로 클 것이다. 권태홍의 눈에서 행동하는 지식인의 고뇌가 흘러내렸다.

나는 가끔씩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이야기를 생각해본다. 큰 산 두 개를 오롯이 가족과 후손, 조력자 몇 명의 힘으로 조금씩 부숴나가면 언젠가는 길을 낼 수 있다니, 이 얼마나 황당한 발상인가! 이야기에 나오는 우공은 신의 조화로 몇 년 만에 두 산을 옮겼지만, 우공에 버금가는 도전을 하여 성공한 사람들이 있다.

영화 <마운틴 맨>의 실제 인물인 인도의 다슈라트 만지는 22년 동안 망치와 정만으로 혼자 마을 앞 돌산을 부숴 폭 9m의 길을 만들었다. 중국의 탕밍위도 17년 동안 몇 명과 함께 해발 100m의 돌산을 깨서 길을 내고야 말았다. 인도의 시암 랄은 물 부족으로 고통 받는 마을을 위해 27년 동안 혼자 땅을 파서 넓이 4,047m2, 깊이 4.6m의 호수를 만들었다.

이들이 산과 땅을 파내는 도전을 했다면, 사막과 황무지에 나무를 심어 기적을 만든 사람들도 있다. 중국의 인위쩐은 내몽골 마오우쑤 사막에서 25년 동안 남편과 함께 나무를 심어 여의도 면적의 10배에 이르는 숲을 만들었다. 인도의 자다이 파양은 혼자 힘으로 35년 동안 황무지에 나무를 심어 6km2에 이르는 숲을 일궜다.

이들 모두 주변의 비웃음과 반대를 이겨내고 기적 같은 일들을 이뤄냈다. 산이 아무리 높다 한들 깎여나갈 뿐 높아지지 않으면 언젠가는 없어지게 된다는 우공의 말처럼, 오랜 시간 동안 굴하지 않은 이들은 무모하게 보였던 꿈을 실현했다. 이처럼 30여 년이라는 시간 속에 이어진 한 사람의 집념은 억겁의 세월을 이어온 대자연마저 바꿔 놓는다.

사람의 노력으로 대중의 정치적 선택을 바꾸는 일은 자연을 상대로 한 이들의 도전보다 훨씬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옳고 그름을 떠나 특정 정당이 30년을 독주하는 지역이 적지 않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지역에서 계속 도전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세상은 이런 사람들 때문에 조금씩 바뀐다.

<바보 노무현, 그 후 20년>에 나온 5명 중 3명은 20여 년 가까이 경상도에서 민주당 후보로 나와 네 다섯 번씩 낙선한 사람들이다. 그 세월 동안 숱한 눈물과 좌절 속에서 긁어모은 표가 34~45%였으니, 정치적 험지에서 당선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 수 있다. 이번에 7.5%를 얻은 권태홍의 눈물이 더 안타까운 이유다.

정치적 험지는 누군가 계속 깎아나가면 언젠가는 평평해질 산이 아닌 것 같다. 하류의 바닥을 아무리 파내도 상류에서 내려오는 토사가 금방 쌓여버리는 강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20년 이상 죽어라고 강바닥을 파내면서 표심을 모으든지, 상류에 댐을 만드는 것 같은 특단의 정치 환경이 조성돼야 변화가 가능하리라고 보인다.

<바보 노무현, 그 후 20년>에서는 선거법 개선 방향을 짚었다. 중대선거구제나 석패율제, 권역별 비례대표제 등을 도입해 승자독식으로 민의를 왜곡하고 지역 구도를 고착시키는 현 선거제도를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나 또한 제도 개선을 통한 정치 환경 변화만이 지역 구도를 타파하고 다양한 정치적 스펙트럼을 국회에 담을 수 있는 방법이라는 데 동의한다.

고 김대중 대통령은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는 말을 남겼다. 세상을 바람직하게 바꾸려고 도전하는 사람들 때문에 인생은 아름답고, 그들의 도전이 모여 역사가 나아간다는 소회인 듯하다. 약자들의 친구였던 노회찬처럼 일하고 싶다는 권태홍의 도전에 더 많은 시민들이 따뜻한 관심과 성원을 보내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