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학박사

김 성 중

꽃잎이 흩날리는 봄날, 익산의 한 요양병원 앞에 서 있다. 한 달 넘게 면회를 할 수 없어 필요한 물품만 병원 접수대에 두고 돌아서는 길이다. 아버지를 요양병원에 모신지도 어언 5년. 병원에 계신 분이나 그 모습을 보는 자식들 입장이나 돌아보면 참으로 사연이 많은 시간들이다. 그중에서 가장 화가 나고 힘든 것은 병원 관계자들이 돈이나 음식을 훔쳐 가고 환자를 무시한다는 아버지의 속삭임을 듣는 일이다. 물증도 없는 심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처음에는 병원 분들에게 분노의 화살을 돌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확증편향이 아니냐며 아버지에게 화를 내기도 하고 결국에는 이런 환경을 만든 나 자신에게도 분노의 끈을 놓지를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이제는 면회마저 중단되었으니 이런 생각마저 사치가 되어버리고 아버지는 잘 지내고 계신지 걱정이 앞선다.

지난주 어머니 추도식에 참석하기 위하여 남원 누님 댁을 방문하였다. 옛날이야기를 한참 하다가 코로나19 사태로 화제가 돌아섰다.

“요즘은 업무 스트레스가 많아”

남원의 한 요양병원에서 간호사로 계신 누님이 한숨을 쉬시며 말씀하신다.

“어르신들을 모신다는 자체가 원래가 수월한 일은 아니지만, 한 쪽 얘기만 듣고 오해를 하시는 가족분들이 있을 때는 맥이 풀릴 정도야”

가슴이 섬뜩해진다.

“더구나 요즘은 가족들 면회가 안 되니까 환자들의 스트레스가 심해지고 우리에게 모두 화풀이를 하는 형편이라 온몸 구석구석이 아프네”

내 가슴이 먹먹해진다.

모든 해답은 우리 안에 있다. 손가락 열 개가 우리 몸에 공존하듯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의 맘이 이미 우리 안에 살아 있어서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중에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단지 자존심과 욕망으로 우리 마음의 눈을 스스로 가려서 보지 못할 뿐이다.

역지사지. 맹자의 ‘이루편’에 나오는 역지즉개연(易地則皆然)이라는 표현에서 비롯된 말이다.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하라는 뜻으로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중요한 덕목이다. ‘너와 나’의 구분이 선명하고 집단 간 생각의 차이가 뚜렷한 요즘 세상에서 자기중심의 시각이 아니라 상대의 시각에서 헤아려 보라는 알림이 매우 의미 있게 들린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 자신이 속한 집단이 아닌 다른 집단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은 상대에 대한 편견을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21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났다. 투표율이 66.2%로 28년 만에 최고 수치다. 지역구 의석 253석 중 민주당이 163석, 통합당이 84석, 정의당이 1석, 무소속이 5석이다. 민주당의 압승이다. 한마디로 여대야소 정국이다. 영남권은 통합당에 전라권은 민주당에 수도권은 민주당에 민심의 표가 던져졌다. 그 원인이 무엇이든 균형과 조화로움이 아닌 편중된 결과가 이번 선거로 나타났다. 턱걸이 인구에 지역구가 2개인 우리 익산시의 경우에도 균형과 조화로움을 넘어 지지하는 사람 간의 갈등이 골이 깊어질 개연성이 그만큼 높다. 선거기간 중에 악의 없이 내뱉은 말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분노를 자아내게 했다. 자존심과 욕망에 눈이 멀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삶을 살며 누군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로 인해 가슴에 깊은 상처를 입고 마음 아팠던 적이 있지 않은가. 더구나 가장 가까운 이로부터 들은 말 한마디가 오래도록 마음의 상처로 남는다. 또한 그 말 한마디로 인해 십수 년 동안 가꿔온 정이 한순간에 멀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올바른 세상의 모습이 아닌 우리가 작위적으로 만들어 낸 허구일 가능성이 높다. 집단 간 갈등의 피해는 결국 경쟁을 벌인 당사자들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다. 미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집단에 속하지 않은 선의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도 서로의 입장을 공감하고 이해한다면 집단 갈등을 최소화하는 데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정신을 바로하고 깨끗이 흐르는 물에 우리의 눈과 귀를 씻어내야 한다. 가슴이 섬뜩해지고 먹먹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조만간 요양병원에서 근무하시는 분들께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겠다.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