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리스트

김성중

지금 대한민국은 307명의 사상자를 낸 이태원 참사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관할 구청은 안전관리 계획을 세우지 않았고 경찰·소방 당국에 도로 통제나 보행 동선 관리를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서울시는 행사와 관련하여 상황실도 운영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137명만 사고 현장에 배치한 경찰은 마약 단속을 하는 사복경찰이 더 많았다고 합니다. 행정안전부는 주최자가 없어 재난안전법을 적용받는 축제가 아니라고 방관하고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행정 공백’으로 벌어진 참사입니다.

3년 만에 열린 핼러윈 축제 현장에서 책임 있는 단 한 사람이라도 나와서 안전 문제를 짚었더라면 막을 수 있었던 ‘인재’라고 생각합니다. 탁상행정의 사각지대에서 벌어진 사고인데도 중앙정부나 지방 정부는 책임회피에 급급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슬픔과 책임감만 언급할 뿐, 국정 책임자로서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책임자 처벌도 아직 이루어지고 있지 않습니다. 철저한 수사와 국정조사로 공과를 분명하게 가리기를 촉구합니다.

곡돌사신(曲突徙薪)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굽을 곡, 굴뚝 돌, 옮길 사, 땔나무 신. 굴뚝을 구부리고 땔나무를 옮긴다는 뜻으로 화근을 미리 없애 화를 면한다는 말입니다. 한서 '곽광전편'에서 유래했습니다.

원문은 곡돌사신 무은택 초두난액 위상객 (曲突徙薪 無恩澤 焦頭爛額 爲上客)입니다. 뜻을 풀면 “아궁이 옆에 있는 섶을 옮겨놓고 굴뚝을 수리하여 화재를 예방한 사람에게 감사할 줄 모르고, 머리털을 태우고 이마를 데면서 불 꺼준 사람에게만 은혜를 베푼다.”는 말입니다.

집에 불이 나기 전에 굴뚝을 수리하고 아궁이를 고친 사람의 공로는 알아주지 않고 불 난 뒤에 수염을 그슬려가며 옷섶을 태우면서 뛰어다닌 사람의 공로는 널리 인정한다는 것이지요.

불이 나지 않도록 예방하고 불이 옮겨붙지 않도록 미리 단속하는 사람은 몰라보는 세태를 지적하는 말입니다. 안전불감증이 부른 뼈저린 역사를 잊고 우발적 사고로 치부하는 나라에는 미래가 없습니다. 이제라도 곡돌사신의 교훈을 배워야 할 때입니다.

곡돌사신은 화근을 미리 방지한다는 의미에서는 유비무환과 같은 뜻이지만 느낌이 좀 다릅니다. 유비무환은 미래에 닥칠지 모르는 예측할 수 없는 환란에 대비한다는 뜻이지만 곡돌사신은 손대지 않으면 보이는 화근을 미리 조치한다는 의미가 강합니다. 따라서 유비무환보다 곡돌사신의 교훈을 망각하는 것이 더 어리석은 일이 될 수 있습니다.

돌발적인 상황을 예측하고 현실을 분석하여 대비하기는 무척 어려운 일이며 눈에 쉽게 띄지도 않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의 안전은 이러한 예방 분야에 충실해질 때만이 기초부터 튼튼해질 수 있습니다.

대형 사고가 터질 때마다 특정인에게 책임을 물어 비난하기에 앞서 우리의 일상과 현실을 편견 없이 돌아봐야 합니다. '공공의 적'을 만들어 무작정 비난의 화살을 퍼붓는다면 정작 우리 주변에 숨어 있는 적폐는 놓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정치도 마찬가지입니다. 2,200년 전, 춘추전국시대 법가사상을 주창한 한비자의 망국론을 소개합니다. 한비자가 밝힌 나라의 쇠망을 알려주는 몇 가지 징표입니다.

“첫째, 법을 소홀히 하고 음모와 계략에만 힘쓰며 국내 정치는 어지럽게 두면서 나라 밖 외세만을 의지하거나,

둘째, 군주가 간언하는 자의 벼슬 높고 낮은 것에 근거해서 의견을 듣고 여러 사람 말을 견주어 판단하지 않으며 어느 특정한 사람만 의견을 받아들이거나,

셋째, 군주가 고집이 세 화합할 줄 모르고 간언을 듣지 않고 승부에 집착하며 사직은 돌보지 않고 제멋대로 자신만을 위하거나,

넷째, 군주가 대범하나 뉘우침이 없고 나라가 혼란해도 자신은 재능이 많다고 여기며 나라 안 상황에 어둡고 이웃 적국을 경계하지 않으면 그 나라는 망할 것이다.”

현실을 향한 엄중한 경고입니다. 개인의 일뿐만 아니라 기업과 사회단체, 나랏일에도 곡돌사신의 교훈은 유효합니다. 위험이 뻔히 보이는데도 후환을 과소평가하거나 오만과 게으름, 꾸물거림 때문에 화를 당하는 일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2,200년 전의 가르침을 한자씩 곱씹어볼 필요가 있는 위기의 대한민국은 아닌지 걱정이 앞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