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NGO 삼동인터네셔널 이사장,

익산시 사회복지협의회 회장

김영주

세상 살다 보면 따분한 일이 많다. 자신으로부터 직장·사회·국가·민족 더 나아가 전 인류에 관한 일까지 틈새 없이 다가오는 경계 때문이다.

사람들은 힘들고 어려움이 올 때 망상을 자주 한다.

「돈도 많이 벌고 사회적 지위도 높으면 좋겠고 아름다운 아내나 멋진 남편을 거느리고 공부 잘 하고 똑똑한 자녀를 두어 남들이 부러워하는 생활을 해 보았으면……」하고 말이다.

실현 불가능한 일인 줄 알지만 자기 위안이 아닐까.

한 번 따져보자. 돈을 많이 벌려면 탁월한 경제적인 수완이 있어야 하겠고, 지위를 높이려면 출중한 지도 역량이 있어야 하겠고, 예쁜 아내나 멋진 남자를 거느리려면 인연작복(因緣作福)을 잘 해야 할 것이고, 똑똑하고 훌륭한 자녀를 두려면 자녀의 양육과 교육에 온 힘을 다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사회적으로 선망의 대상이 되려면 자기중심의 이기적인 생활이 아닌 이타적 생활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자기중심적 생활은 자칫 원망의 대상이 될 수가 있기에서이다.

사람은 홀로 살 수 없다. 사회 속에서 자기를 키워간다. 그러기 때문에 나만이 아닌 남과의 관계를 통해서 모든 일이 행해지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편안한 생활을 원한다면 우선 남을 편안하게 해야 할 것이고, 내가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우선 남의 행복한 생활이 영위되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내가 하기 싫은 것을 남이 해주기를 바란다면 거기엔 낭패만 따를 뿐이다. 우선 가까운 인류 관계로 맺어진 가정에서 보자. 부자, 형제, 부부 관계에서만 제대로 해야지 제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가족에게도 미움을 받는다. 여기서 제 노릇이라 함은 저와 관계있는 다른 사람에 대한 의무이다.

세상 살아가는데 따분한 일들도 어느 누군가가 제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은 데서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기 때문에 진정한 지도자는 모두가 제 할 일을 제대로 하게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러한 것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때에는 자기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관철시키는 그런 사람이 지도자이다.

석가모니의 전신이 조달의 전신인 범마달(梵摩達)과 같이 녹야원에서 사슴 임금 노릇을 했을 때의 일이다. 그때 그 나라 임금은 날마다 식용으로 사슴 한 마리씩을 바칠 것을 명해서 그대로 이행해오던 어느 날이었다. 한 새끼 벤 사슴의 차례가 되었다. 그런데 그 사슴이 임금을 찾아와서 하는 말이 내가 죽는 것이 싫어서가 아니고 지금 내 뱃속에 새끼가 들었으니 그 새끼를 낳고 난 뒤에 죽게 해달라고 애원하는 것이었다. 범마달은 한 말로 거절해 버렸으나 석가모니는 그 딱한 사정을 듣고 차마 강행할 수 없어 그리하기를 약속하고 자기가 대신 죽으러 들어갔다.

그 나라 왕은 녹왕(鹿王)이 들어온 사유를 알고 이에 감복하여 그 뒤부터는 고기를 안 먹겠다고 하고 사슴 바치는 일을 거두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얼마나 가슴을 울리는 이야기인가.

참다운 지도자란 이타적이며 자기희생적인 녹왕(鹿王)과 같은 그런 사람이다.

자리이타라는 말이 있다. ‘내가 너를 돕는 것이 나한테는 좋다’라는 뜻이다. 좋은 말인 듯한데 세상의 현실에서는 어려운 이야기이다. 내 실속 차리기도 바쁜데 꼭 다른 사람을 도와야 할까?

이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남도 괴롭히고 자기도 괴로운 사람, 착하다는 소리 듣는데 자신은 괴로운 사람,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이익을 주는 사람이다.

친구 간에도 자기 실속만 챙기다 보면 원망의 소리를 듣게 된다. 다른 친구들이 그 친구와 만나기 싫어한다. 남을 위해서 희생하는 친구가 있으면 그 친구는 힘이 들어 괴롭게 보이지만 모든 친구들이 그를 좋아하게 되고 나중에는 그 친구를 위해 도와주게 된다.

세상은 남을 돕는 일을 해도 좋고, 안 해도 그만이다. 세상 살면서 꼭 도와주면서 살지 않아도 된다. 누가 도와주지 않는다고 시비 걸 사람 없다. 그러나 그 일이 나에게 좋고 남에게도 좋으면 근본적으로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자리이타의 이치이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고, 하루를 살더라도 편안하고 의젓하게 살아야 한다.

이 세상을 조금 더 정의롭고 아름답게 만드는 일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 나를 희생하는 것이 아니다. 남의 것을 빼앗으며 사는 것보다는 도움을 주는 삶이 나에게 보람이 된다.

그런데 자기 자신을 하찮게 여기면 남의 도움을 얻고 남에게 의지해서 살아가게 된다. 내가 무엇이 부족해서 남의 도움을 얻고 남의 것을 뺏어서 살아야 하나.

내가 왜 내 인생을 스스로 자립해서 살아가지 못할까. 세상의 미물도 모두 자기 삶을 자립해서 살아가고 있다. 조금이라도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사는 사람이 성인(聖人)이다.

어디에 가서 거창한 일을 하고 이름을 남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워주고, 물이 필요한 자에게 물 한 잔 떠주고, 다른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삶을 살 때 나 자신에게도 보람이 생기는 거다.

내가 어떻게 사는 것이 나에게 보람이 되는 삶인가를 생각해 보고 내가 결정하는 거다.